시벨레스 광장과 레티로 공원 입구
시벨레스 광장 (Plaza de Cibeles)
광장에는 '레알 마드리드 분수'라고도 불리는 시벨레스 분수가 있다. 두 마리의 사자가 이끄는 마차 위에 다산의 상징인 시벨레스 여신이 올라 타 있는데 레알 마드리드 축구팀이 2015-2016 챔스 우승을 하고, 결승골을 터뜨린 라모스가 여신의 목에 클럽 휘장과 목도리를 두르는 것으로 유명한 장소다.
“야, 확실히 유럽은 유럽이다아”
3월의 한국과는 달리 마드리드의 6 p.m. 은 태양이 한참 열일하며 빛줄기를 쏟아내고 있어 감히 저녁이라 부를 수 없는 시간이다. 덕분에 ‘낮’이라고 부르는 시간이 길어져 씨에스타(오후의 낮잠)를 즐기고도 여유롭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고 음식점의 디너타임은 8시가 넘어야 시작된다. 아침잠이 많아 저녁 시간을 길게 즐기고 싶은 올빼미들에게 스페인은 그야말로 최상의 환경인 것이다.
사력을 다해 3초 간 이민에 대해 생각해 봤다.
꿈 깨야지.
“K 집이나 한 번 가 볼까?”
밖에서 저녁을 먹기엔 이르고 집으로 돌아가기에는 아쉬웠는지 친구는 K의 집에 초대받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사실 나는 비행 피로가 한꺼번에 몰아치고 근육량 제로의 내 닭다리도 더 이상은 걸을 수 없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기에 누구 집이든 '집'이라는 곳에 얼른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농담을 가장한 진심 어린 물음과 K의 당혹스러운 표정 사이에서 아주 약간의 불편한 공기가 아주아주 사알짝 만들어 질 조짐이 보였다.
“야 K님 너무 당혹스럽겠다. 갑자기 사람 두 명을 어떻게 초대하니. 말이 되니? “
아쉬운 마음은 죄 없는 친구를 탓했고, 덕분에 시간을 번 K는 다음에 제대로 준비해서 꼭 초대하겠노라 약속 해주었지만 친구는 이미 입이 한 다발 나와서는 섭섭한 마음을 한 껏 담아 세상 헐렁하게 '아디오스'를 고했다. 덕분에 K는 친구의 등판을 완벽히 다 보고서야 천근 같은 발걸음을 돌리는 것을 나는 목격했다.
그 때였다.
‘헉.’
신호가 왔다.
작은 것이 아닌 큰 것의 느낌이었다.
굴직하고 무겁다.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들어가서 실례 좀 할게요 물어봐 줘야 하는 것도 친구의 몫이고 언제인지 모를 마무리를 기다려줘야 하는 것도 친구의 몫이라는 사실이 이상할 정도로 미안해졌다.
K 집에 초대받지 못해 샐쭉해진 친구의 표정 때문이었을까. 휴일에 쉬는 것보다 친구와 추억을 만드는 걸 더 좋아할 거라는 확신은 12시간도 채 안되어 사라지고 없었다.
하루종일 운전하고 가이드해주면서 사실 누구보다 피곤할 텐데 내 대변장소까지 알아 봐 줘야 한다면 기겁할 것만 같은 것이다. 정신이 혼미해 지고 내 닭다리는 비명을 지르다 이미 실신해 있는 상태였으므로 이제 믿을 건 내 엉덩이와 직장 근육 뿐이었다.
'밀어 넣어. 옳지. 더 더 밀어 넣어보자.'
긴장을 풀지 말고 힘 빡 주고 게이트를 지키다 보면 분명 더 후퇴 할 것이다. 뱃 속이 꿀렁인다. 분명 몇 시간 전엔 세상 행복한 사람이었는데 순식간에 천벌 받는 이 느낌은 무엇인가. 식은 땀이 흐른다.
귀신처럼 두둥실 뜬 느낌으로 10억 년 쯤 걸었을까. 두터운 태양줄기 하나가 쭉 뻗어 내 고개를 들어 올린다. 눈 앞에는 레티로 공원(El Retiro Park)이 펼쳐져 있다.
(다음 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