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미워하지 못해 나를 미워했습니다.
최근에 읽은 책 '레슨 인 케미스트리(Lessons in Chemistry)'에 사적인 이야기와 비밀이 어떻게 다른지 소개하는 부분이 있었다.
사적인 이야기는 영어로 ‘private’ 또는 'personal’ 이라고 표현하는데 상대방과의 친밀감에 따라 공유가 가능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반면,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친밀도와는 상관없이 창피해서 누구에게도 쉽게 공유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의미하는데 '창피함'이라는 감정을 동반한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비밀이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비밀의 유무 또한 사적인 이야기로 간주하는 사람이거나 허세가 있거나, 혹은 최악의 경우 염치가 아주 없어서 일 수도 있다. 나는 후자를 정신질환자라 생각한다. - 사람은 염치가 있어야 한다 - 고로 정상의 범주에 속하는 우리 모두는 비밀을 가지고 있고 나에게도 적잖은 비밀이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불편한 감정을 동반한 ’비밀‘은 방치 해 둘 경우 자연스레 치유되거나 사라지거나 하지 아니하고 부패하고 타락해서 스스로를 좀 먹는다는 것. 나의 경우에는 혼자 힘으로는 그 마음이 도저히 정리되지 않는 것 같아서 남편과 정말 많은 시간을 상의했고, 전문의를 만나 이야기해보기도 했다. 의사는 항상 "미워해도 됩니다." 라고 말했지만 미워한다는 감정을 밀어내는 것보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욱더 고통스러웠다. ‘미워해도 된다고?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해진다고??’ 불결한 마음이었다. 죄를 짓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마음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들은) 변하지 않을 겁니다.”
“네??? 그 걸 어떻게 확신 하세요?“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그 의사를 찾아가지 않았다.
Y를 만나면 털어놔야지 하고 계획했던 건 아니었다. 그저 빨간 고추가 잔뜩 들어간 신라면에 갓김치를 얹혀 먹는 황홀경에 시원하고 달달한 띤또 데 베라노를 몇 잔 했을 뿐이고 내 옆엔 친구가 있을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이 이야기 저 이야기가 툭툭 나오는 게 참 신기했다.
친구는 그런 일들이 있었냐며 놀라기도 했고, 백 퍼센트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일지라도 내 마음이 아팠다는 그 하나만으로 두 눈썹이 거의 직각을 이룰 정도로 슬퍼해줬다. / . \ 중간중간 발게진 볼따귀를 더욱 붉히며 눈깔이 뒤짚힐 듯 화를 내기도 했다. 왜 그렇게 사느냐 했다.
“네가 무슨 신이라도 되는 줄 아니?” (희번득)
참고로 Y는 크리스쳔이다.
맞다. 내가 해 줄 수 없고 해낼 수 없는 것들을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이 나를 힘들게 했다. 그게 좌절될 때마다 나를 미워했다. 물론 지금도 내 마음이 이렇게 힘들었노라, 그만큼 스스로를 미워했노라 고백할 수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이해받지 못하는 마음이다.
다만, Y와 이야기하며 정리된 마음 하나는 나는 더 이상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하라고 하는 것을 따르는 학생이 아니라는 것이다. 중간고사 기말고사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며칠 밤을 지새우며 스스로를 학대할 필요가 없다. 성인으로서, “그건 아니에요.”, “안됩니다.”, “할 수 없습니다.”, “하고 싶지 않습니다.” 죄책감 없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정이 넘어 이불을 덮었다. 3월의 마드리드는 아직 많이 추웠으므로 전기장판을 켜고 핸드폰에 오늘의 일들을 정리했다. Y와 나누었던 이야기에는 “나는 신이 아니다.”를 강조해 두었다.
‘하아….’
전기장판이 정말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혹시나 전기세가 많이 나오진 않을까 (유럽 유틸리티 비용 혹. 독. 함) 몸을 이리로 저리로 비벼서 달군 후 전원을 껐다.
‘나는 신이 아니다.’
'나는 신이 아니다.'
'나는 신이 아니다.'
‘고맙다, 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