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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양 Mar 11. 2024

백화점 C 양 체험판_37

37화_내겐 너무 어려운 그녀

-본문은 이해를 돕기 위한 약간의, 아-주 약간의 픽션이 들어간 faction이며 구독자 분들의 흥미를 얻기 위해 없었던 일을 꾸며내지 않습니다.  


이번 주는 제가 휴무가 자주 껴있는 주라 시간이 참 빨리 가기도 하고 저의 개인점검도 잘 이루어진 주 같았어요.

쉴 틈 없이 빙글빙글 돌아가는 하루 끝에는 나를 위로해 주는 음악과, 내 손으로 지어먹는 간단한 저녁밥, 나를 다듬어 주는 일기장 속 몇 구절까지.

여러분들의 별것 아니지만 나를 재생시켜 주는 것들은 무엇이 있나요?

사람 사는 것 다 비슷비슷하다지만 이런 것은 생각할수록 궁금하고 긍정적인 것들은 닮아가고 싶어요.

이번 주도 행복하셔야겠죠?

출근을 함께 해봅시다.



37화_내겐 너무 어려운 그녀


어느 한적한 평일.

듣는 이 하나 없는 음악은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지나는 고객도 없어서 직원들은 모두 다 각자의 매장에서 소위 멍 때리기를 시전 중입니다.

저녁을 먹고 돌아와서 그런가 눈이 자꾸만 감기고 애석하게도 노래도 잔잔하니 거의 눈을 뜨고 자는 지경이네요.

마감 시간이 다  되어갈 때쯤, 에스컬레이터에서부터 발랄함을 풍기며 다가오는 저 여성분은 분명 저희 매장을 바라보며 오고 있어요.

저희 고객이에요. 저 고객과 저는 오늘 어떤 에피소드가 생길까요?


"환영합니다 고객님."


"언니! 제가 뿌릴 건데 제 이미지랑 어울리는 거 추천 좀 해줘요!!"


말투에도 느낌표가 한가득 붙은 이 고객은 졸려 죽겠는 저에게 레몬 10개를 한입에 넣는듯한 기분입니다.


발랄하고 깜찍한 느낌이지만 40대 중후반으로 보이기에 발랄, 깜찍으로 응대할 순 없어요. '소녀스러움'이라는 키워드로 밀고 가봅니다.


"고객님께서는 굉장히 소녀스럽고 기분 좋은 에너지를 가지셨어요. 상큼한 시트러스 계열들이 참 잘 어울리실 것 같은데요?"


제가 이 고객님의 취향을 바로 저격해 버린 건지, 이 고객이 리액션이 좋으신 건지, 추천해 드리는 제품마다 환호성을 내지르시는 이 고객 덕분에 다른 직원들의 시선들이 신기하단 듯이 하나 둘 꽂힙니다.


그녀는 모든 환호성을 다 써버린 게 아닐까 싶을 때에 여러 가지 향수들 중 하나를 들어 요리조리 살핀 뒤 가방을 뒤적이며 수다스럽게 말합니다.


"이걸로 줘요 언니 샘플 많이!"

"네 고객님 잠시 앉아계시겠습니까?"

"언니 그런데 손톱 너무 예쁘다 샵 어디 다녀요?"


고객의 텐션에 바로바로 맞추는 것도 저의 특기입니다.


"저 요 동네 다녀요! 거기 디자인도 다양하고 예쁜데 전 심플한 게 좋아서 이런 것만 해요!"


"언니는 아트 없어도 손이 예뻐서 이런 것도 잘 어울린다~"


"감사합니다"


헤헤 실없는 웃음을 말 사이사이에 섞어가며 말하다 보니 얼굴에 살짝 경련이 옵니다. 이제 결제하고 보내드려야겠어요.


"언니의 너무 친절한 응대에 감동받았어요. 제가 실은 여기 점장님이랑 친해요. 골프도 같이 다니고. 제가 점장님께 말해놓을게요."


명찰을 유심히 보고 제 이름을 곱씹던 그 고객과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오늘 하루는 끝이 났습니다.


약 2주 뒤

이 고객과 저는 꽤나 친해진 것 같습니다. 별 다른 에피소드 없었지만, 고객님이 저를 편하게 느끼신 것 같아요.

"언니 피부과  어디 다녀? 내가 선크림 추천 하나 해줄까? 내가 강남에 피부과 다니는데 그 선생님 예약이 꽉 차서 진료 예약을 못 잡거든? 근데 내가  오늘 다녀왔어. 수첩 없어? 여기 내가 적어줄게. 근데 언니 선물 받았어? 내가 점장님한테 말했는데? 백화점에서 직원 시상 같은 거 하잖아~"


고객님 특유의 <대답은 듣지 않는 화법>이 조금은 피곤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또 1주 뒤


"언니 저 매장 언니들은 왜 저래? 눈길이 너무 차가워서 뭘 살 수가 없어~ 내가 저기서 몇백만 원을 사는데~ 모든 직원들이 언니 같았다면 나 맨날 이 백화점만 올 텐데 참 저런 언니들이 물 흐린다니까. 언니  그나저나 내가 그때 말하고 나서 아무 일 없었어?"


또 며칠 뒤,

분위기가 심상찮아요. 옆 옆 매장에 그 여자분이 오셨다는 말을 듣고 유심히 보는데 싸움의 조짐이 보입니다. 매번 말하셨던 차가운 눈빛을 가진 매장이라 혹시 컴플레인이라도 거는 건가 싶어서 자꾸만 곁눈질로 상황을 살폈어요. 이런... 점장님과 친하다 하시더니 정말 그녀의 옆에는 여러 명의 백화점 직원들과 점장님이 있어요. 천군만마를 거느린듯한 그림에 얼굴을 붉히고 있는 그녀는 왠지 화나보입니다.


마감 때 즈음 아까 그 매장 매니저님이 저희 매장으로 와서 그 고객을 물어봤습니다.


“아까 그 고객 어때요? 많이 사요? 여기서 언니 얘기하면서 친하다고 많이 산다고 하시길래….. 우리 매장에서는 구매 없이 매번 와서 앉아만 계시거든요.”


알고 보니 그 고객은 매장에서 아무것도 구매하지 않고, 응대 테이블에 앉아 몇 시간 동안 수다를 떨곤 해서 다른 고객을 맞이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직원과 친분 쌓기를 즐겨하시는 고객님이셨고, 뭐라도 구매하는  날에는 며칠뒤 다시 환불을 하는 고객이어서 직원들이 은근히 피하는 고객이었습니다.

물론, 점장님과 친하지도 않았고, VIP고객도 아니었죠.

그런데 매장에 어떻게 직원들과 점장님을 불러냈느냐, 하니 서비스에 대해 클레임을 걸었고, 직원을 통하여 내선번호로 전화를 걸게 만들어 한 명 두 명씩 매장으로 부른 것입니다, 그렇게 내려온 직원에게 점장님이 나오지 않으면 물러서지 않겠다와 동시에 “일단 내려와서 보면 알 것 아니냐. 내 친구다.” 식이었고, 점장님은 본인과 친하다고 전해 들었으니 누군가 해서 내려와 본 것이었죠.

그분은 어떠한 결핍과 어떠한 사연으로 모든 직원에게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일까요?

<오늘의 퇴근길>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과, 될 수 없는 것에 대한 갈망이 나 자신을 갉아먹을 때 왜 나는 이것밖에 되지 못한 사람인지, 왜 난 내가 생각하는 기준치에 부합하지 못하는 건지 한없이 속상한 날들이 있습니다. 부딪혀도 보고, 깨져도 보고, 남몰래 울기도 하고, 괴로워했던 시간들을 지나 아직 손에 쥐고 있지 못하였을 때 자신이 너무 슬퍼 보이고 초라해 보였죠.

하지만 문득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이런 시간들로 인해 더 값진 다른 것들을 얻었으니 그것으로 된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동안 나를 너무나 아프게 했던 곪아버린 염증 같은 것들을 보내줄 때 해방감을 느끼며 새로운 길을 보게 된 것 같았습니다.

가끔 나를 너무 병들게 하는 것들을 놓아보는 것이 아주 큰 슬픔과 상실이겠지만, 그와 동시에 큰 용기임을.

아파하고 있는 저 자신을 위해 말해주고 싶네요. 물론 쉽지 않겠지만….


나를 너무 아프게 한다면
보기 좋게 보내줘 보자.
나는 나를 아프게 하면 안 되기에.
행복해질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지만,
나를 책임질 방법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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