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사람이 부지런한 척 하려고 찍은 사진들
휴일인데 뭐 하세요, 작가님?
그러게요. 할 게 없습니다. 프리랜서였으면 사실 휴일 없이 뭐라도 했는데 직장인이 되고 나서부터는 의욕이 많이 없어졌다. 블로그도 열심히 해야지- 하는데 글 쓸 것도 없고, 무엇보다 매일 같은 일상이니 찍을 것도 없고. 매너리즘에 빠진 하루하루.
그렇게 시간을 낭비하다가 트위터를 봤는데(사실 이것도 인생의 낭비), 어느 작가님께서 매일 출근길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닌다고 한다. 찍을 게 없어도 일단 들고나가서 뭐라도 찍어보려 한다고. 그 트윗을 보니 '나는 뭐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랜만에 생각 없이 사진이 찍고 싶었다. 그래서 오래간만에 카페에 가서 사진 보정도 할 겸 가는 길에 일본감성사진을 찍어 보고 싶어서 카메라를 들고나갔다.
그렇게 가방에 맥북과 충전기를 챙겨서 거리로 나왔는데, 나의 뜨거운 열정과 반대로 하늘에는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예전에 카메라를 들고 비 오는 날 찍으러 나갔다가 고장 났던 적이 있어서 많이 못 찍고 바로 삿포로역 카페로 향해서 글을 적었다. 마음먹자마자 이런 일이 터지다니. 이날 결국 사진은 많이 못 찍었지만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며칠 후. 해가 떴다.
일본감성사진을 찍으러 나오기 전, 해외 유튜버의 영상을 봤는데 그 유튜버가 말하길 '스트릿 포토를 찍을 때에는 허리 높이에서 찍어라!'라고 했다. 눈 높이에서 찍는 것보다 허리 높이에서 찍는 게 좀 더 현장감 있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나. 그의 영상들을 보고 사진들을 보니 매우 맞는 말인 것 같아서 허리 높이에서 찍고 다녔다.
다행히 내가 들고 다니는 후지필름 x pro 3는 스위블 스크린이라 허리 높이에서도 충분히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확실히 사진을 찍을 때는 눈 높이도 좋지만, 허리 높이가 맞다고 이 자전거 사진을 찍으면서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내가 아무리 키가 작다지만 평소랑 다른 눈높이와 앵글이여서일까? 좀 더 낮은 곳에서 본 일본의 풍경은 매일 보던 풍경이지만 조금 다른 느낌을 주는 데 충분했다. 역시 구도는 다양하게 찍어야 제맛이라니깐!
이날은 집 근처에서 출발해서 삿포로 역과 오도리 공원을 지나 스스키노 전 까지 가 볼 예정이다. 그렇다고 오도리공원에서 죽치고 찍기엔 너무 뻔한 사진들이 나올 것 같고. 스스키노까지 가기엔 너무 머니, 딱 그전까지만!! 평소 같으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거리이지만 가벼운 백팩만 챙기고 열심히 걸으며 셔터를 눌렀다.
나는 평소에 풍경사진을 찍으면, 아니 사진을 찍으면 세로로 찍는 버릇이 있다. 아무래도 사진의 주 업로드 처가 인스타다보니 세로로 많이 찍어서 그런데, 이날은 대부분 가로로 사진을 찍었다. 처음에는 진짜 옛날 필름처럼 정방형을 찍을까 했지만, 예전에 찍어본 바 뭐랄까.. 이제는 어디에 업로드하기에? 인화하는 거 아니면 참 애매한 사이즈라 그냥 가로로 찍어봤다. 가로 사진이 재밌기도 하고.
삿포로가 시원하냐고 물어보면,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글을 적는 시점은 최고 온도가 27도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삿포로도 32도까지 올라가는 더운 날씨가 계속되었다. 여행 가이드 일을 나가다 보니 그 뜨거운 햇빛을 직빵으로 많이 받았는데, 만나는 손님들마다 '홋카이도도 이렇게 더워요?'하고 나에게 물어봤다.
그나마 다행인 건.. 습하지 않다. 오사카에서 온 가이드님에게 들어봤고, 후쿠오카에서 일하는 친구에게 들었는데 다른 일본 지역은 나가면 찜질방이라고 한다. 홋카이도는 햇빛만 뜨겁지 그늘로 들어가면 바람도 적당히 솔솔 불어서 그나마 살 것 같다. 일단 나도 집에서 에어컨 안 틀고 베란다와 창문만 열면 살만하니. 역시 홋카이도는 홋카이도인가 보다.
삿포로역 앞으로 넘어왔다. 일본에 오면 우리나라랑 비슷한 듯 보이지만 다른 것들이 몇 개 있다. 간판도 그렇지만 나는 택시와 자전거를 뽑고 싶다. 우리나라의 주황 택시나 조금 현대적인 차가 다니는 반면, 일본은 아직도 아날로그함이 묻어나는 택시가 많고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분들이 많다. 그래서 언제는, 자전거 타고 다니는 분들만 찍어서 모을까 했는데.. 사진 색감의 통일감을 주기가 너무 힘들어서 포기했다. 나중에 기회 되면 다시 도전해 봐야지.
도로밖에 나와서 한참을 서성이기에 뭐 하는 건가 싶어서 봤는데 택시를 잡으려는 거였다. 우리나라랑 마찬가지로, 일본도 택시 잡기가 어렵나? 큐슈의 유후인이라면 모를까 삿포로는 택시 잡기 수월한 것 같은데. 위험하게 도로 밖에 나와있는 사람의 모습을 보고, 일본이든 한국이든 급한 사람은 급하고, 매너 없는 사람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역시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아.
스트릿 포토는 그 시대를 나타내는 사진이라고 한다. 그래서 길거리의 사람들의 생활을 담는, 전반적인 모습을 담는 것이라고 해서 최대한 그런 느낌이 들게 찍어봤다. 삿포로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하지만 뭐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이 다 비슷하듯 찍을수록 특별한 건 없어 보이지만.. 특히 여름이라 그런지 더욱. 겨울이면 눈 치우는 거라도 담을 수 있었지 않았을까? 다음엔 겨울의 삿포로를 스트릿 포토로 담아보고 싶다.
드디어 오도리공원까지 걸어왔다. 삿포로를 계획도시로 지정할 때 만들어진 오도리공원은 삿포로의 랜드마크로서 시민들의 쉼터 겸 약속 장소, 축제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벤치에 좀 앉아서 쉬고 싶었지만 이미 그늘진 벤치에는 사람들이 다 자리를 잡고 있어서 마저 걸어 다녔다.
아마 이 사진들을 찍을 때, 맥주축제를 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왜 그걸 안 찍었지? 나는 참 바보야..
사진을 올릴 때마다 글을 적지만 항상 부족함을 느낀다. 뭐라 해야 할까. 좀 더 잘 적을 수 있는데. 좀 더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이 적은 여행기를 보면서 난 왜 이런 글을 못 적을까 생각이 든다. 항상 마음이 간드러워지는 그런 글들을 적어 보고 싶은데.. 그런 글들을 간드럽다고 생각해서인가? 적으려 하면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사진가는 사진으로 말해야지! 란 생각이 들면서 적었던 문장을 지우게 된다. 글쓰기, 너란 녀석. 참으로 어렵구나.
그렇게 한껏 삿포로에서 일본감성사진의 스트릿 포토를 찍고 백업 및 보정을 하러 카페에 들렀다. 창밖에는 오도리공원의 풍경이 보였고 그중,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학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삼삼오오 모여서 한 손엔 아이스크림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 모습을 보자니 학창 시절의 내가 생각이 난다. 나름 만족스러운 학창 시절을 보냈지만, 친구들과 좀 더 추억을 쌓았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만 한 것도, 놀기만 한 것도 아닌 어중간한 학창생활. 나쁘지는 않지만 저들의 청춘을 보니 부러움이 조금 샘솟았다. 그래도 그때가 있었기에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는 거지. 그런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