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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작가 Aug 21. 2024

시옷은 [     ]의 시옷입니다.

뭐든 될 수 있는 만능이름이지만 오리진은.

그 이름 좀 바꾸면 안 돼?

 코로나가 터지면서 더 늦기 전, 취미가 아닌 정말 전업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 마음에 일본에서의 여행사 직원 생활을 접고, 한국에 들어왔다. 시작이 반이고 중요하다는 성격으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할지 고민을 하던 찰나, 같이 살던 친구가 우선 작가이름부터 바꾸라 했다. 


 "왜? 내 닉네임 [특수감성범]이 어때서?"

 "어감도 이상하고, 길고, 의미도 별로야. 네가 손님이면 그런 작가에게 예약하고 싶겠어?"


 상업적으로 도가 튼 친구의 말이여서일까? 듣고 보니 다 맞는 말이라 뼈가 아프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나의 부캐(?) 이름 고민. 어떤 이름으로 할지 며칠 동안 끙끙댔지만 결국 정하지 못했다. 막막한 생각을 전환할 겸 사진학 관련 서적을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지만 ISO가 어떻다느니, 조리개 값이 어떻다느니. 난 분명 사진을 찍고 싶었는데 감성이면 충분할 줄 알았던 사진은 전문서적을 통해 나에게 큰 벽을 느끼게 했고, 사진의 '사'자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때 번쩍 든 생각. 이거다.


"왜 그런 이름으로 했어?"

"사진을 공부하면 '사'까지 알기 어려우니 적어도 'ㅅ'까지는 알자는 마음으로 지었어. 사진은 공부하면 더 깊고 어려우니 조금이라도 더 알자!라는 느낌으로."


 그렇게 나는 시옷은 사진의 시옷, 사진작가 시옷이 되었고 그로부터 4년의 시간이 지났다. 지금의 나는 한국에서의 생활을 다시 접고 일본에 들어와 사진작가 활동을 하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다시 여행사에 들어와 가이드 일을 하기 위해 홋카이도에 와 있다. 돈은 많이 못 벌었지만 꿈이 있었고, 그 꿈을 위해 했던 노력이 모여 꽃봉오리를 맺을 때쯤 접게 되어서 미련이 많이 남은 상태. 좋아하는 것만 하며 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술이 조금 좋아지기도 했고. 하지만 언제까지 미련 속에서 헤엄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무언가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싶었다. 한창 도파민 중독에 빠진 것 같아 이것도 게워내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어 서적을 구하기 어려워서 어플을 통해 E북 서비스에 가입을 해, 일이 없는 날 아침에는 책을 읽었다. 평소에는 접근하기 쉬운 에세이를 읽던 나날 중 어느 날. 글쓰기와 관련된 책이 눈에 들어왔다.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던 그 책은 사진작가 활동을 했을 때 나에게 손님들이 하던 말이 떠오르게 되었다.


 "더 늦기 전에 지금의 제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두려고요."


 그 당시에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손님에게 농담조로 "혹시 연세가..?" 하면서 웃어넘겼지만 책을 읽으니 그 마음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기록. 나라는 사람이 여기 있었다는 기록. 비록 유명하거나 큰 사람은 아닐지라도 내가 이 드넓은 우주에 '나 여기 있어요-'라는 흔적을 남기는 과정. 나는 사진으로 누군가의 그 과정을 남겼었지만 지금은 잠시 접게 되었다. '그럼 이 참에 나를 남겨볼까?'. 그러면서 멋들어진 풍경이 아닌 하루의 풍경을 찍기 시작했고, 손님이나 멋진 모델이 아닌 주변사람을 찍기 시작하며 사진에만 한정된 게 아닌 '시옷'을 남기기 위해 글도 적고 유튜브도 시작했다. 


 물론 이 모든 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지친 사회생활로 사진 찍고, 영상편집도, 글쓰기도 소원해질 수 있다. 실제로 나는 블로그를 몇 년 동안 몇 번이나 갈아엎었으니... 그래도 사진의 시옷을 시작했던 그때처럼, 포스팅의 시옷, 영상의 시옷, 글쓰기의 시옷을 틈틈이 키워봐야지. 비록 사진의 시옷이 아니더라도 시옷을 남기는 이 과정은 오래오래 즐기면서 해봐야지. 


그때까지 그렇게 특별한 글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별 것 아닌 게 아닌 글을 적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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