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옷작가 Sep 07. 2024

겉바속촉

그것은 치킨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거 좀 드세요.


오잉? 예상치도 못한 호의에 순간 당황스러웠다.


 구름이 끼기 시작한 홋카이도의 비에이. 나는 일일 버스투어 가이드 일을 나왔다. 광활한 홋카이도의 자연 풍경을 보는 코스였기에 날씨가 중요한데, 하늘은 이런 내 맘을 모른 채 기어코 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니면 내 눈물인가? 그럼에도 나는 나의 일을 해야지. 손님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텐션이 떨어지지 않도록, 재미난 이야기를 섞어가며 지역과 관광지에 대한 설명을 했다. 마이크를 잡고 앞에 서면 손님들 얼굴이 보이는데(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학생들 다 보인다고 하는데 그거 맞다), 다행히 우중충한 버스의 분위기 속에서 하나둘씩 얼굴이 피기 시작했다. 


 거기서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으면 내가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악플보다는 무플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가이드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 것 중 하나가 바로 무반응이다. 계속 눈은 마주치지만 어째 반응이 하나도 없는 한 팀이 있었다. 그 팀은 할아버지 할머니부터, 중년의 부부, 고등학생 아들의 구성으로 3대로 이루어진 가족여행 팀. 나름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를 하나둘씩 풀어도 반응이 없어서 투어 중간중간 식사는 하셨는지-, 홋카이도에서 어디 가봤는지 등 나름 살갑게 여쭈어봤지만 돌아온 대답들은 대부분 단답형이었다. 결국 나는 투어 내내 버스에서 마이크를 잡아도, 죄지은 것도 없는데 그분들의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리고 여행 코스의 막바지 무렵. 나는 빗속에서 핸드폰으로 손님들의 사진을 찍어 드리다가, 얼추 다 찍은 것 같아서 가까운 매점으로 비를 피해 들어갔다. 으악! 무반응의 가족들. 비를 피하려고 들어갔다가 마주쳐버렸다. 


“으아- 비가 많이 오네요.”


 어색함을 깨 보기 위해 던진 말이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니- 사람은 많은데 왜 한 명도 대답하지 않는 거야-?’라고 나 홀로 속으로 외치며, 빗방울에 젖어가는 꽃밭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3대 중 2대. 그러니깐 아버님이 나에게 이거 좀 드시라며, 나에게 방금 막 나온 따뜻한 감자 고로케를 건네주셨다. 예상치도 못한 호의에 어버버 하고 있자니, 중년의 아버님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거 아버지랑 어머니가 가이드님 드시라고 산 거예요. 비도 오는데 고생 많아요.”


 손님 상대하는 일을 10년 정도 했다. 말을 걸었을 때 반응을 보면, 대강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다며 나 자신을 믿고 있었다. 그런데 역시나, 가장 믿으면 안 되는 건 손님의 표정이 아닌 나의 생각이었다. 겉으로는 너무 바삭해서 마음도 그럴 줄 알았는데 사실은 세상 촉촉한 가족들. 나는 그분들이 얼마나 따뜻한 분들인지 모른 채, 몇 마디 나눈 대화와 표정을 보고 ‘아- 투어가 마음에 안 드나 보다. 괜히 말 걸면 싫어하겠지? 피해야겠다.’라며 생각했었다. 


 자칫하면 나에겐 정말 힘들었던 손님들로 기억될 뻔한 하루. 앞으로 10년 후에도, 손님을 상대하는 일을 하고 있다면 똑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겠지만 그분들이 건네준 감자 고로케 덕에 나는 다시 표정이 안 좋은 손님에게도 말 걸 용기가 생겼다. 손님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고 피하지 말고, 그런 분일수록 더욱 다가가야지. 그러면 적어도 나의 노력은 알아주시겠지. 감자고로케 잘 먹겠앗뜨거.


이전 05화 당신의 하루는 얼마인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