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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옷작가 Sep 11. 2024

이게 질리네.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자유도 질릴 수 있나요?

홋카이도의 나의 안식처

 홋카이도에 도착하고 2주일이 지난 시점. 나는 자유가 되었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가이드 일을 나가는 투어가 오픈까지 일주일정도 남았지만 미리 와서 공부를 해둔 덕에 일 시작 전까지는 꽤나 여유로운 시간이 생긴 것이다. 사진촬영 일을 나갈 때도 비교적 자유로운 시간이 많았지만, 재택근무를 하는 여자친구와 함께 살았기에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나에게 황금같은 일주일이 떨어졌다. 후쿠오카에서 촬영과 가이드일로 모아둔 돈도 꽤 있었고, 투어 일이 시작되면 많이 바빠질 것을 알기에 이 일주일을 말그대로 낭비 하고 싶었다. 물론 이 남은 일주일도 ‘아직 부족해! 좀 더 공부를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부담감이 있었지만..가이드 일에 대한 나름의 자신감, 백세인생에서 일주일 정도는 놀아도 되지 않을까하는 게으름이 내 안의 죄책감을 눌러버렸다. 


 이번 일주일, 정말 최선을 다해 낭비를 할 계획을 세웠다. 밤 늦게까지 게임과 유튜브, 웹서핑을 하다가 잠들고, 느즈막히 눈이 떠지면 침대에서 다시 웹서핑 하다가 배고프면 대충 입고 근처 슈퍼가서 점심이랑 저녁반찬까지 사 오고. 다시 집에 와서는 도파민의 세계에 다이빙을 한 다음, 늦은 저녁시간이 되면 낮에 샀던 맥주로 반주를 즐겼다. 이걸 무한 반복.  돈 많은 백수가 있다면 바로 나요, 내가 바로 한량이오, 하는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뒹굴거렸다. 아마 인생에서 처음으로 마음 먹고 낭비한 나날인 것 같다.


 그렇게 4일차쯤 되었을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낭비루틴에 이상(?)이 생겼다. 매일 보던 웹사이트의 글이 재미없어지며, 게임 속 세상도 오래 못 빠져들고, 유튜브의 내용이 머리 속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는데.. 문제는 이게 아니다. 분명 재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들여다 보게 되는 것이다. 알맹이가 없는 릴스 영상을 계속 보고, 이제는 할 게 없는 게임 속 세상을 의미없이 돌아다니고, 영양가가 없는 웹서핑을 계속 하는 것이었다. ‘잠깐만’으로 시작해서 ‘이것까지만’으로 이어지는 패턴. 나름 통제한다고 했는데, 결국 나에게도 다가온 현대사회의 질병(?). 그렇다. 도파민 중독에 걸린 것이다. 젠장! 바라던 인생의 낭비를 실시간으로 진행 중에 있었지만, 내가 바란 낭비는 그저 소비만이 아닌 재미를 추구했기에, 이런식의 낭비는 바라지 않았다. 자유롭긴 하나 재미가 없다니! 정말 무의미한 것 같았다.


 우선 이 의미없는 도파민 분출을 막기 위해 핸드폰 어플에 락을 걸었다. 유튜브에 30분, 인터넷에 30분. 쉽게 해제할 수 있지만 적어도 나에게 ‘너 재미도 없는거 왜 자꾸 들어오니?’라는 자각은 주고 싶었다. 그리고 자극만이 아닌 정제된 것을 보라는 어느 웹툰 주인공의 대사가 떠올라 책을 읽고, 내 생각을 글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이 도파민의 폭동은 초기진압이 잘 되어서 괜찮지만 한가지 깨달았다. 


 ‘아, 자유도 과하면 질리는 구나.’


 사람은 자극을 찾는 생물이라고 한다. 그런 생물이 4일동안 자유라는 이름 안에 별다른 외부의 자극 없이, 계속 혼자 게임하고 웹서핑을 했으니 질리지 않을리가 없지! 힘든 일 마치고 마시는 맥주가 맛있는 것처럼, 자유로운 시간도 부자유한 시간이 있기에 더욱 달콤했던게 아닌가 싶다. 비록 이 일주일동안, 내가 바라던 즐거운 자유는 즐기지는 못했지만 큰 깨달음을 하나 얻었으니  나쁘지않은 장사인 것 같다. 아니면 내가 나이를 먹어서 게임이나 웹서핑에 흥미를 못 느끼게 된걸지도(웃음). 아무튼. 뭐든지 과하면 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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