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일해
이번에도 한국에 올 예정은 없지?
코로나와 군대를 빼면 여행업에 몸을 담근 지 어언 7년.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추석이 다가왔다. 남들은 즐거운 휴가계획과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날 고향방문계획을 세우지만, 일본에서 가이드일을 하는 나는 다른 계획을 세운다. ‘어떻게 해야 이 많은 인원과 긴 기간 동안 문제없이, 즐길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을까?’ 그렇다. 나는(혹은 우리는) 명절이 바쁘다.
올해도 어김없이, 명절에도 일하러 나온 김시옷. 평소보다 많아진 대가족단위 손님들을 보며 명절이 온 것을 실감하며 입은 쉬지 않고, 손님들에게 여행 팁을 뱉어냈다. 관광지에 도착해서 손님들을 안내하고, 버스로 돌아가는 길. 9월의 유후인은 가을이 온 지도 모른 채 햇빛으로 내 정수리를 때리고 있었고 앞머리로 가린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 주변에 손님이 없는 걸 확인한 입은 비속어를 섞어가며 태양을 욕했다.
그러다가 뒷주머니의 핸드폰이 울려서 손님인가 확인해 보니, 익숙한 얼굴 사진이 화면에 보였다. 한국의 부모님으로부터 온 전화였다. 전화를 받으니 다정한 부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수화기 너머로는 간간히 3살 터울의 동생의 귀찮아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목소리만으로 나는 얼굴에 편안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 한국에 올 예정은 없냐고 물어보셨다.
“어무이..유감스럽게도 아들은 이때가 바쁩니다..”
“그래, 그럴 것 같아서 전화했다!”
성인 되고 나서는 쭉 집에서 나와서 살았기에, 이제는 부모님도 익숙한 듯하셨다.
집에는 별일 없는지, 아빠는 뭐하는지, 형은 방에서 뭐하는지, 똥개(내가 부르는 우리 집 개 애칭이다)는 건강한지. 간단한 안부인사를 나누었고 더 길게 통화를 하고 싶었지만 버스는 슬슬 출발할 시간이 되어서, 나는 “미안해요- 일하는 중이라 나중에 전화할게요-“하고 빨간색 통화종료 버튼을 누르며 버스에 오르는 가족손님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와 마찬가지로 더운 햇빛 아래에 있던 손님들 이마에도 땀방울이 맺혀있었다. 그럼에도 얼굴에는 짜증 하나 없이 웃음꽃이 가득하다. 나이 지긋한 부모님과 온 가족도, 장거리여행에 울지도 않는 의젓한 꼬마친구와 함께 온 가족도. 모두 이 순간이 즐겁다는 듯 재잘재잘 떠들며 버스에 올랐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고향인 대전에 내려가는 ‘김 씨 집안의 둘째’라는 타이틀보다 ‘해외사업팀의 직원이자 막내’라는 타이틀이 더 중요해 명절당직을 자진해서 했었고, 일본에 와서는 휴가를 맞아 놀러 온 손님들의 추억을 만들어줘야 했기에, 막상 명절기간에 휴가를 가져본 적이 없었다. 너무 오랫동안 명절과 먼 삶을 살았기에, 평소 같으면 올해도 여느 때와 같이 투어를 진행했을 터지만 잠깐의 사이에 부모님의 목소리를 들어서일까? 가이드 생활하면서 처음으로 손님들이 부러워졌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한 시간. 비록 그 시간에 주어가 ‘나’가 아니라 살짝 우울하지만, 그 시간을 만들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기에.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여러분 즐거운 시간 보내셨나요-?!”
“네-!”
목청 큰 손님들의 대답소리에 우울함도 버스 뒤편으로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