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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혁 Nov 11. 2021

제주로 이사를 왔습니다

[분투기 #1] 진지 구축

 


제주도로 이사를 왔다. 집 앞에 지하철역 대신 바다가 있는 일상을 원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창밖으로 파도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위치에 작은 옥탑방을 구했다. 침실에는 제주항을 걸어두었고 서쪽 베란다에 별도봉을 놓았다. 제주올레길 18코스를 오가는 순례자들의 보조개도 보이는 곳에서 잠 보다 긴 꿈을 꾸며 지낸다.



 지난 7월 29일, 서울 자취방의 짐을 정리하고 김포공항으로 향하던 밤에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잠시 찾았었다. 한여름이었지만 차가운 무언가가 마음 한 편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스무 살 재수생으로 상경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대학로였다. 공짜로 거리의 공연을 보며 뮤지션이 되리라는 열망을 품게 했던 나의 큰 학교. 그 문화적 느낌이 좋아서 아예 대학 진학도 근처로 했었다. 



 그러나 나의 고향, 부드러운 통영 바다에서는 미처 겪어보지 못했던 서울의 칼바람에 나의 배는 이리저리 좌초를 거듭했다. 대해의 야수들이 몰아치는 세계는 나를 알 수 없는 공허에 표류하게 만들었다. 음악 만들고 글 쓰며 살겠노라고 부모님 앞에 선언하며 집을 나왔었던 스물 하나 해맑게 무모한 선원의 눈망울에 점차 늪이 커졌다. 그러다가 결국 아무 생명이 없는 늪에 스스로 잠식되고 말았다.





 나는 다시금 나를 찾기 위해 ‘탈서울’을 선택했다. 놓쳐버린 방향타를 새롭게 부여잡고 나로부터 가장 멀지만 내 마음에서 가장 가까운 곳으로 향했다. 나에게 제주행은 여행이기도 하지만 수행이기도 했다. 



 삶의 수련자로 제주에 오는 것이기에, 비워내는 마음처럼 가벼운 몸가짐이 필요했다. 그래서 서울에서 집 앞 마트에 다녀올 때 신고 다니던 2천 원짜리 슬리퍼를 끌고 비행기에 탔다. 어쩌면 바닥 생활이 숙명인 이 슬리퍼의 동족들 중에 가장 높은 공중을 날아 제주에 도착했다.



 나의 새 동네는 화북동으로 정했다. 새날을 도모하기 좋은 방을 찾아 제주의 많은 원룸을 헤매다가 바다를 벗한 아지트를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이 집을 소개해준 부동산의 위치가 절묘했다. 제주의 시조인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삼신인(三神人)이 제주에서 나라를 세울 터전을 정하기 위해 화살을 쏘았던 돌을 모아둔 삼사석비에서 가장 가까운 부동산이었기에 나는 유치하지만 애써 거창한 의미부여를 해보기도 했다. 여기 이 집이 나의 도읍이라고.



 나의 도읍에는 바람이 거세다. 남해 바다를 질주하는 폭풍이 나의 문을 두들겨댄다. 두드리며, 어서 나오라고 한다. 나는 알람소리 같은 바람의 노크에 눈을 뜨곤 한다. 그리고 남쪽 창 너머로 멀리 어둠이 걷혀가는 오름 사이에 나의 음악으로 오름 하나를 만들겠노라 바람결에 다져본다.  



 새로운 항해에 나선 나는, 다행히 알고 있다. 순탄한 바다는 절대로 훌륭한 선원을 만들지 못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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