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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익명 Apr 01. 2021

철이없었죠... 오징어  눈깔을 빼내겠다는 게.

요리 일기-해조류 편(바지락, 오징어)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하이브리드 자전거는 처음이라  안장을 높게 하고 몸을 숙여서 타는 게 익숙지 않다. 긴장의 끈을 놓칠 수가 없다. 집 앞에서 2바퀴 돌아보고  롯데마트까지 자전거를 타고 갔다. 걸어서 30분 거리를  15분이면 도착했다.  돌아오는 길 2번이나 엎어졌지만 이젠 롯데마트를 집 앞 슈퍼처럼 자주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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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틀 중  첫날 롯데마트에서 가서 산 식재료는 해조류다. 이상하게도 집에선 새우 말고는 해 먹어 본 해조류 요리가 없다.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 낯설기도 해서 학교에서 실습할 때 말고는 요리해먹어 본 적이 없었다. 수산물 코너를 지나가며 구경하는데  나중에 누군가 나에게 '너 이거 손질해봐!'라고 했을 때 못하면 자존심이 많이 상할 것 같다는 상상을 했다.

그래서 첫날에는 순두부찌개가 당겨서 순두부와 바지락을 샀다. 바지락은 해감을 해야 한다고 해서 소금물에 담가 두고 어둡게 해 두고 기다리는데 엉뚱한 걱정이 됐다. 다시 뻘을 먹어버리면 안 되는데, 체에 부어서 거르면 뱉어낸 이물질을 물과 함께 조개에 붓는 꼴이니 그렇다면 하나씩 일일이 집어서 건져야 할까 하는 고민. 왠지 이런 고민을 하는 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자주 이런 답답한 바보 같은 생각을 많이 한다.  다행히도 이물질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그냥 체에 바로 걸러 사용했다. 사실 근데 이물질이 많이 나왔어도 고민하다가 그냥 체에 걸렀을 거다. 걱정이나 고민이 많은 성격이라 자잘한 걱정은 잘못되어도 그냥 엎질러진 물이라 생각해야 한다.  

 순두부는 칼집으로 완벽하게 비닐을 자르지 않아 숭풍숭풍 나올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좁은  비닐 입구 틈으로 으깨져서 순두부가 나왔다. 첫 스타트가 어째 아슬아슬하더니 과정도 순탄치 않았다. 고추기름을 내고 양파를 볶고 순두부를 넣고 물을 부었는데 물을 너무 많이 부어서 찌개가 아니라 국이 되었다. 졸일까, 아니면 국물을 버릴까, 고민하다가 국물을 국자로 퍼서 고운 체에 걸러 순두부만 건지고  국물은 따라서 버렸다.  바지락을 넣고 레시피대로 간을 하니  역시나 싱거워서 레시피엔 적혀있지 않는 맛소금, 굴소스를 넣어 간을 맞췄다.  조금 싱거웠지만 먹을만했다.

이튿날에는 오징어를 샀다. 오징어는 해조류 중에서 좋아하는 편이다. 전복도 10개의 만원 오징어는 5마리에 만원, 지금 주꾸미가 제철이라고 알고 있는데 주꾸미는 비싸고 다른 건 싸다는 게 아이러니했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오징어가 아르헨티나산에 생물도 아니고 해동시켜 파는 것이었다는 게 생각났다. 그러니까 나에겐 원산지나 신선도가, '가격'보다  더 내 눈에 중요하게 비쳐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계산하고 가방에 넣으려고 집었더니 랩 사이로 물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제도 순두부를 그냥 가방에 넣고 오다가 순두부 물이 새어 가방이 젖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과일코너로 가서 비닐봉지를 뜯어 오징어 팩을 담아 가방에 넣었다.


집에 오자마자 오징어를 손질하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둥글게 모양을 살릴 게 아니라면 가운데를 가위로 잘라 펼치면 된다고 백종원 선생님은 말씀하셨지만 조리학과 자존심이 있지! 손을 오징어 몸통 속으로 넣어 내장을 꺼냈다. 메스를 든 의사가 된 기분으로 내장이 터지지 않게 조심스럽게 잡고 떼어냈다. 그런데 내장을 빼고도, 속에 지방층인지 뭔지 하얀 물질들이 아직 더 들어 있었다. 그것은 손으로 꺼내기가 어려워 그냥 오징어 바깥면을 눌러서 압력으로 밀어냈는데도 깔끔하게 나오지 않아서 결국엔 가위로 몸통을 갈랐다. 눈알은 터질 수 있으니까 뒤에서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빼면 된다는 백종원 선생님의 말씀대로 뒤에서 눈알을 누르니까 눈알이 빠지지는 않고 동공이 튀어나올 듯 압력으로 크게 팽창되어서 나를 눈깔질 하며 쳐다봤다. 시한폭탄처럼 째깍째깍, 내 심장도 쿵쾅쿵쾅! 으악 시발! 결국에는 눈알이 터져 싱크대 벽면에 '뿌욱!' 하고 갈색의 피가 발사되었다. 2번째 오징어 손질도 눈알이 터져서 3번째 오징어부터는 눈알이 있는 부위는 그냥 썰어서 버렸다. 고등학교 오징어 손질할 때는 이러지 않았던 것 같았는데 왜 이렇게 끔찍하지? 내장을 만지는 것도 오징어 눈알과 싸우는 일도 심장이 쿵쾅거렸다. 서양에서는 낙지나 오징어를 악마의 고기라고 생각해서 안 먹는다는데 나는 그 이유가 왠지 '오징어 눈깔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도 고집은 있어서 어차피 가위로 자를 건데도 굳이 손으로 내장을 끄집어냈다. 약간의 자존심인 거다. 손질할 줄 알아야 하니까.

그리고 오징어 다리에 붙어있는 이물 잔 딱딱해서 씹히지 않아 제거해야 하는데 만져보니 이게 오징어 다리 지문인지 아니면 이물질인지 구별이 가지 않아서 빡빡 문지르다가. 오징어의 지문이 떨어져 나가기도 했다.

오징어 손질을 했으니 오징어를 이용한 요리를 해야지, 오징어 무굿과 오징어 볶음을 만들었다. 나는 양배추나, 무, 당근 등 야채를 생으로 먹는 것을 제일 좋아하고 그다음으로는 볶은 것을 무난하게 먹고, 삶은 것은 별로 안 좋아는 편이다. 그래서 거부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먹었는데 의외로 크게 불편하지 않아서 입맛이 변한 건지, 아니면 내가 만든 거라 맛있는 건지, 아니면 오늘 이 요리가 잘 된 것일지 의문이 들었다.

국은 재료와 물의 비율을 잘 맞춰야 국이 찌개가 되지 않고, 레시피대로 간을 할 때 맹맹하다거나 짜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징어 볶음은 계란 프라이 하나 해서 오징어 덮밥으로 먹기에 딱 좋을 맛이었다. 다음날 아예 모두가 먹는 밥상에 엄마가 오징어 볶음을 내놓고 국을 끓여서 1인 1국씩 놓아주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나 혼자 먹어 없애는 게 아니라 식사로 음식으로 먹어지는 게 처음인 것 같다. 조리학과인데 왜 이제야 식탁에 올라올 수 있었는지를 설명하고, 항상 내가 만든 음식은 나 혼자 먹어 없앴는지 설명하려면 아주 긴 이야기를 해야 한다. 그것은 다음에 이야기하고 아무튼, 기분이 미묘했다. 쑥스러움과  인정받은 요리의 뿌듯함, 생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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