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석 d-692
신장내과 가는 주가 무섭다는 걸 깨달은 건 요전날이었다.
3개월마다 한 번씩, 나는 내 몸이 무너지는 속도를 확인받으러 간다. 수치로 환산된 죽음. 24에서 22로, 한 뼘씩 가까워지는 끝.
"이번에는 신장 수치가 24에서 22로 줄었어요. 원래 1년에 2씩 주는 게 보통인데 은강 씨는 너무 빨리 진행되네요. 왜 그러냐고요? 알 수 없죠."
의사는 매번 같은 말을 한다. 나도 이제 그 레퍼토리를 다 외웠다. 이럴 거면 차라리 녹음을 틀어놓지 그래. 12시간 공복 유지 후 채혈, 채뇨 하는 이 의식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그 주는 자연히 공치게 된다. 매일 울분에 차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글쓰기 모임의 다감한 사람들도, 재밌다는 평을 받은 내 단편소설도, 심지어 은행으로부터 오는 월급날 7자리 숫자 알림도 다 지긋지긋하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하찮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나는 그제야 보기 시작했다.
모든 죽어가는 것들에 대해 경외하게 된다. 아침에 피는 꽃도, 저녁에 지는 해도, 매일 출근하는 사람들의 뒷모습도 전부 유한하다. 언젠가 끝난다.
지하철에서 한 노인이 자리를 양보받는 걸 봤다. 고맙다고 말하는 모습이 유난히 작아 보였다. 문득 생각했다. 저 사람도 지금 무언가를 세고 있을까. 생일 케이크의 불을 끌 수 있는 횟수를, 사랑하는 손주를 만날 수 있는 횟수를.
묻게 된다. 나보다 더 힘든 사람 처지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견디는 걸까. 불붙은 숯불 위에 선 듯 악쓰고 발 구르고 싶은 고통을, 어떻게 의젓하게 삼키며 별일 없는 척 살아가는 걸까.
세상 불행은 제각각이라지만,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숫자를 세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는 은퇴까지 남은 날을, 누군가는 대출 상환일을, 누군가는 이별 후 지난 시간을. 나는 투석까지 남은 날을. d-692, d-691, d-690...
나를 죽이려 드는 고통 덕에 유치해지는 동시에 겸손해지고 있다. 아직 본게임도 시작하지 않았다는 걸 안다. 그런데도 이미 진빠지게 힘들다.
하지만 그 주를 견디고 나면, 다음 주가 온다. 그리고 나는 또 센다. 하나씩 줄어드는 숫자와 반비례하게 늘어나는 나의 단단함을.
어쩌면 이게 사는 건지 모르겠다. 모두가 저마다의 카운트다운 속에서, 그래도 오늘을 살아내는 것.
d-692, 다음주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