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한 낮 나그네 인생 아닌가?
첫 글은 언제나 설렌다.
사실 긴장이 감돈다는 말이 더욱 적절할 수 있을 것이나, 긴장이라는 단어 뒤 숨어 있는 감정은 설렘에 가까울 것이라 생각한다. 무엇이든 첫 글은 어렵고 생각이 많아진다. 사람 간의 만남에서 첫인상이 중요하듯 첫 글 또한 그 역할이 엄중할 것이 극명하기 때문이다.
한 때 ’ 좋은 글이란 무엇일까?‘에 관한 고찰을 심도 있게 해 본 적이 있다. 기교를 섞어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소위 불리는 ’ 좋은 글’을 찾아 비슷하게나마 써 내려간다면 좋은 글이 탄생하는 것인지 고민했다. 돌고 돌아 해답을 지성의 끝자락을 마주하고 결국 지성의 무용을 몸소 깨달아버린 지성인으로부터 찾을 수 있었다. 좋은 글이란, 결국 스스로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담는 것이라 한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이야기를 담아보려 한다. 어쩌면 누구보다 특이한, 아니 비범한 삶을 살았으니 나의 이런 이야기를 담아내는 것이 참되다 생각한다. 각자의 인생의 주인공임과 동시에 타인의 조연으로 살아가는 우리. 무수히 많은 조연들 중 조연 X를 담당하고 있는 나의 삶을 소개해보련다.
고등학생 시절 이과에 다닌 나였지만 나의 소위 불리는 최애 과목은 불문학이었다. 폭넓게 바라보아 인문학과 사학 그리고 철학에 나는 깊게 관심을 갖고 살았다. 꾸불꾸불한 글자 속, 홀로 흰 종이에 투영한 작가들의 이야기들을 나는 사랑했다. 파피루스부터 오늘날의 A4용지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흐름을 기록한 사학은 나로 하여금 인간의 가장 기본적 본능인 탐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며, 오늘날 인류가 탄생하기까지 함께한 철학은 나의 사유 세계의 확장의 확실한 ‘희’였다.
8살 처음으로 국경을 넘었고, 27살 나는 다시 처음 시작했던 그 자리로 돌아왔다. 약 20년간의 세월이 흘렀고, 시작점에 다시 다다른 나는 그럴싸하게 성장해 있었다. 그리고 짧지 않은 세월 속 나는 나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하나 둘 쌓아나갔다. 나의 연재를 읽어나갈 독자들이 되어준 고마운 그대들이 나의 글을 읽으며 나는 스스로 어떤 아이덴티티로 규정하며 살아왔는지 떠올리며 읽어 나갔으면 하는 마음에 오늘 나의 아이덴티티 한 가지를 꺼내어 적어본다.
이방인 (異邦人)
사전적 용어로는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 즉 외국인이자 유대인들의 고전적 선민의식에 의하면 유대인 보다 열등한 민족이라는 뜻일 것이다.
나는 내 인생의 대다수의 시간을 이방인으로서 아주 먼 타지에서 살았다. 아주 어릴 적, 고향을 떠나, 지구 반대편 북아프리카부터 오늘날 철의 여인이 굳건히 서 있는 유럽의 파리까지, 그 시간 동안 크고 작은 일들을 경험하고 마주하며 성장한 나만의 이야기, 그리고 이 세상 누구도 나와 같이 특별한 인생을 살지 않았음을 자부할 수 있는 나의 이야기.
이방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건 꽤나 어렵고 힘든 일이다. 낯선 땅이 우리에게 주는 느낌과 분위기, 낯선 사람들, 낯선 언어 그리고 낯선 환경까지 온갖 낯선 것 투성이인 곳에서 살아간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쓸쓸하고, 외로우며, 늘 마음은 무겁다. 신경 써야 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며, 매일 긴장의 연속인 나날들이다. 마음의 여유를 찾기에는 생활이 너무나 바쁜 곳, 이곳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프랑스 살이를 하던 중 나는 스킨스쿠버를 취미로 삼았던 순간이 있었다. 동아리에서 친해진 한 아저씨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꽤나 반가워했다. 그러면서 자기도 한국 영화를 즐겨 본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나에게 참 친절히 대해주었다. 당시 나는 갓 중학교를 졸업한 어린 소년이었기에 더욱이 그 따듯함이 좋았었다. 그러던 중 나는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의 국경에 있는 마을로 스킨 스쿠버 자격 잠수를 위해 갔었다.
파리에서 기차로 약 6시간이 걸리는 먼 곳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섞여 서로의 화두를 음미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에게 호의적이던 그 아저씨 또한 우리와 함께했다. 이튿날 저녁, 아저씨와 단둘이 대화를 하던 중 아저씨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한국계 프랑스인이랑 친해질 줄이야!
’한국계 프랑스인‘
그 순간 나의 사고회로는 정지되었다. 나는 여태까지 스스로 “순수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부여하며 살아왔지만, 남들 눈에 비추어진 나는 그저 “한국인의 피가 섞인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에 나 스스로 놀라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주저했었다.
내 오랜 시간 다져온 정체성에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한국인인가… 아니면 프랑스 사람인가…“ 살면서 단 한 번도 스스로에게 자문한 순간이 없던 질문이었다. 나 스스로 이런 질문은 던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누구?”라는 질문에 해답을 찾으려는 일련의 과정의 시발점이 탄생하게 되었다
나의 삶을 돌아보니, ‘고향‘이라 생각했던 한국 땅을 나는 이미 떠난 지 오래되었음을 그 순간 자각했다. 한국이라는 곳은 내가 태어난 장소지 내가 성장한 장소는
아니었으니 말이다. 가깝지만 낯선 땅이 한국이라는 것을 순간 알아차렸다. 몇 번의 짧은 방문 기간 동안 내가 왜 한국인 커뮤니티에 섞이기 힘들어했는지 순간 알아차렸다. 왜냐, 나는 한국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민등록상 한국인이지만 나는 한국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프랑스인인가? 이 또한 사실이 아니었다. 나는 프랑스 땅에서 철저히 étranger (에트랑제) 신분이었으니 말이다. 제 아무리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한들, 나의 법적 신분은 철저한 외국인이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사유의 방식이나 행동거지는 그들과 닮아 나를 종종 ‘프랑스 사람’으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내가 에트랑제라는 사실은 불변의 법칙이었다. 이 사실을 자각한 순간 나는 스스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 이지 않을까 라는 다소 부정적인 생각을 아주 잠시 했었다.
본디 인간은 무리 지어 생활하는 동물이라는 습성에서 비롯된 감정 때문인지, 나는 어딘가에 소속감을 느끼기를 갈망했다. 소속은 결국 일정 부분의 자유에 대한 박탈임을 잊은 채 말이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었지만, 나의 이 깊은 고찰의 해답은 아직 찾을 수 없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절대 시간을 지켜 오는 법이 없는 트램을 타고 퀭한 눈을 하고선 학교에 가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를 오랜 시간 괴롭힌 질문에 대한 답을 마주 하고 찾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프랑스인도 아닌 한국인도 아닌 그저 철저한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불현듯 깨달았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유인. 소속이 필요 없는 사람. 무리의 규정과 규율에 맞추어 살아갈 필요성이 부재해도 되는 존재. 나의 자유로운 사고를 하며 유일무이한 ‘나’라는 존재를 받아들이고 그런 존재를 향유하며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긴 해외살이 중 나는 나 스스로를 규정하고자 애썼다. 나라는 존재가 과연 무엇인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외형은 누가 봐도 동양인이라지만 사고방식이나 쓰는 언어는 한국인과는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던 중 어느 날 무심코 뱉은 말 '나는 이방인이구나'라는 말 한마디로 그 고민이 끝났었다.
에트랑제는 이방인이자 나그네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이방인이라 생각한다. 소속감을 찾아 헤매지만, 결국 ‘나’라는 존재 자체는 유일무이하다. 어느 특정 기관 혹은 단체의 생각이 본말전도 되어 나 스스로의 고유 아이덴티티가 흔들릴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내가 걸어가는 길은 옳다. 참되다. 누군가의 비평이 따로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 세상을 방문하고 언젠가는 떠나 버리는 나그네다. 유목민이다. 그런 삶을 애써 포기하거나 져 버려야 할 이유 또한 부재한다. ‘소속감’이라는 본능에 속아 고유의 아이덴티티가 희석되어 모노톤 그레이 색으로 변하는 것보다는 자유롭게 이리저리 떠돌며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개척하는 것이 더 옳다. 그러니 나의 글을 읽는 독자들 또한 ‘머물지 못하는 자’가 될 수 있다. 아니, 분명히 그대들 또한 ‘머물지 못하는 자’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