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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매넣기 Jan 17. 2023

먹으러 갔어요, 후쿠오카

맛있는 것들이 가득한 곳

코로나19로 막혔던 하늘길이 점차 열린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곳은 후쿠오카였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맛있는 음식이 많은 도시이기 때문에. 둘째, 눈이 번쩍 뜨이는 진미가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셋째, 한 집 건너 한 집이 맛집이기 때문에. 세상에, 이렇게 방문 목적이 뚜렷한 여행객이 또 있을까. 크리스마스를 앞둔 12월의 어느날, 오직 먹기 위해 후쿠오카로 떠났다. 4박 5일의 일정 동안 방문한 음식점 중, 내 입맛을 사로잡은 식당들을 소개해 본다.



멘야 카네토라

'라멘'이라 하면 면과 국물이 한 그릇에 담겨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츠케멘은 우리가 아는 라멘과는 외관도, 먹는 방식도 조금 다르다. 우선 면과 '츠케지루'라는 이름의 국물이 따로 제공된다. 국물은 소스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해 보일 만큼 농도가 진하다. 먹는 방식은 자루소바와 비슷하다. 면을 젓가락으로 집어 국물에 찍어 먹는다.

멘야 카네토라는 텐진 로프트 근처에 위치한 츠케멘 가게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기 줄이 있을 정도로 인기있는 곳이다.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모두 현지인. 관광객 뿐 아니라 현지인들도 자주 찾는다. 후쿠오카답지 않게 매서운 칼바람에 진눈깨비까지 쏟아지는 날. 오들오들 떨면서도 걸쭉한 츠케지루의 맛을 떠올리며 추위를 견뎠다.

인기 메뉴는 '농후 츠케멘'과 '카라카라(매운) 츠케멘'. 키오스크로 주문을 마치고 자리에 앉으면, 모든 좌석에 놓여 있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물통이 눈에 들어온다. '물인가?' 하고 무심코 집으려다 물통에 붙어 있는 라벨을 보고 손을 거뒀다. 이 통에 들어 있는 건, 다시 국물이다. 츠케멘 국물의 맛이 너무 진하거나, 간이 너무 강할 경우에 넣어 먹는 용도다. 양념 통에는 고춧가루, 다진 마늘 등이 있다. 가게 분위기는 매우 활기찬 편. 최신 유행곡이 흐르는 가운데, 점원들이 가게를 드나드는 손님에게 목청껏 인사를 건넨다.

멘야 카네토라의 농후 츠케멘

이곳의 츠케지루는 돼지, 닭, 어패류 등을 넣고 푹 끓인 육수를 베이스로 한다. 여기에 차슈와 죽순 등을 더하고, 감칠맛의 정점을 찍을 어분을 가득 넣어 완성했다. '농후' 츠케멘이라는 이름답게 국물 맛이 매우 진하다. 특히, 국물 위에 올라간 어분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국물을 뜬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기도 전에 어분의 진한 향이 강하게 느껴질 정도다. 찍어 먹는 용도이다 보니 간은 센 편이다. 짭짤하고 걸쭉한데, 말린 생선의 강렬한 감칠맛을 담고 있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 맛이다.


츠케멘은 대부분 따뜻한 국물과 차가운 면으로 구성된다. 이곳의 면 역시 그 공식을 따른다. 차갑게 제공된 면은 쫄깃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 있다. 탄력 있는 면을 국물에 적셔 후루룩 맛보면 입 안에서 축제가 펼쳐진다. 고춧가루 한 스푼 넣은 츠케지루까지 맛보면, 후쿠오카에 방문할 때마다 이곳에 오게 될 것.



베지스파

날씨가 예사롭지 않더니, 결국 눈보라 경보가 내렸다. 우산을 써도 소용 없을 정도의 칼바람과 함께 비, 우박, 눈, 진눈깨비 등이 번갈아 쏟아졌다. 날씨가 전혀 도와주질 않지만 괜찮다. 아니, '오히려 좋다'. 날씨야, 네가 아무리 추워봐라. 내가 옷 사입나. 뜨끈한 국물 사 먹지. 그리하여 정하게 된 메뉴. 수프 카레다.

사실, 수프 카레는 후쿠오카의 음식은 아니다. 홋카이도 지역에서 만들어져 일본 전역으로 퍼져 나간 요리다. '카레'라는 이름이 붙긴 했지만 우리가 아는 그 카레와는 좀 다르다. 조리 과정에서 '루'가 들어가지 않아 되직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다. 카레보다는 국이나 수프에 가까울 정도로 묽다. 국물을 내는 방법은 가게마다 다르다. 닭고기를 사용하기도 하고, 일본에서 사용하는 다시 국물을 베이스로 사용하기도 한다. 혹은 채수를 쓰기도 하고, 돼지 뼈를 우리기도 한다. 상당히 다양한 재료가 들어간다는 점도 수프 카레의 특징. 연근, 줄기콩, 당근, 옥수수, 호박, 버섯, 오크라 등의 채소와 함께 닭고기나 돼지고기, 양고기 등 여러가지 육류가 들어간다.

후쿠오카의 베지스파는 수프 카레를 사랑하는 현지인과 관광객들이 모이는 곳이다. 가게는 작지만 메뉴 라인업은 놀랄 만큼 탄탄하다. 치킨 카레, 야채 카레부터 시작해 버섯, 소곱창, 양고기, 징기즈칸에 이르기까지, 열두 가지 메뉴가 수프 카레 러버들을 반긴다. 토핑과 밥 양, 매운 정도를 전부 조절해 나만의 수프 카레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여러 메뉴 중 가장 베이직한 치킨 카레를 주문했다.

향신료가 들어간 국물에 큼지막한 닭고기와 각종 채소들이 풍덩 빠져 있다. 우선 국물부터 맛본다. 텍스처는 묽은 편이지만, 맛은 결코 연하지 않다. 각종 향신료가 어우러져 얼큰하면서 묵직하다. 호박과 가지, 당근을 비롯한 채소들은 매우 부드럽다. 숟가락을 가져다 대면, 힘을 주지 않아도 부서진다. 밥을 조심스레 떠서 국물에 살짝 담갔다가 먹으면, 뜨끈한 국물이 추위로 잔뜩 움츠렸던 몸을 덥혀 준다. 향신료와 채소, 닭고기가 만들어 내는 풍성한 하모니가 일품이다.


'고독한 미식가'를 보면, 수프 카레를 맛본 이노가시라 씨가 '이건 참을 수 없군'이라고 중얼거리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을 보며 '도대체 저건 어떤 맛이기에 저런 대사를 하는 걸까' 싶었는데, 그것만큼 딱 맞는 표현이 없다. 참을 수 없는 맛. 언제든 먹고 싶어지는 맛. 여기저기 권하고 싶은 맛. 수프 카레는 이런 맛이다.



쇼쿠도 미츠

서울에 여러 재래시장이 있듯, 후쿠오카에도 각종 식재료를 파는 시장이 있다. 바로, 100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야나기바시 시장이다. '하카타의 부엌'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곳에서는 해산물, 어묵, 채소, 명란젓 등을 판매한다. 그리고 신선한 해산물을 제공하는 식당도 많다. 세 번째로 소개할 쇼쿠도 미츠처럼.

맞은편 생선 가게에서 손질한 신선한 생선으로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는 이곳. 회, 초밥, 해산물 덮밥, 튀김 등 여러가지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점심에는 해산물 덮밥 등의 식사류를, 저녁에는 안주류를 준비해 판매한다. 점심시간을 이용하면 해산물 덮밥을 좀 더 저렴하게 즐길 수 있으니 참고하자.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을 적어넣고, 근처 어묵 가게에서 '저걸 하나 사 먹을까 말까' 고민하다 보면 이름이 불린다. 한 쪽에 둘러멘 카메라를 보고 관광객임을 눈치챈 점원이 영문 메뉴판을 내어주었지만, 이곳에서 먹을 메뉴를 미리 정해 왔다. "카이센동 히토츠 오네가이시마스(해산물 덮밥 하나 주세요)."

카운터석에 앉아 따뜻한 차를 홀짝이며 요리에 온 힘을 쏟는 주방장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느새 근사한 해산물 덮밥 세트가 나온다. 세트는 해산물 덮밥, 일본식 달걀찜인 '자완무시', 생선을 이용한 간단한 찬 한 가지와 된장국으로 구성돼 있다. 그릇 위에 꽃이 핀 듯, 정갈하게 놓여진 생선 회의 아름다운 색감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젓가락을 빼 들고 꽃잎처럼 썰린 회를 밥과 함께 떠먹는다. 회덮밥처럼 비비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후쿠오카(福岡)'의 한자인 '복강'은 '행복의 언덕'이란 뜻이다. 이곳의 해산물 덮밥을 맛보고, 후쿠오카가 '행복의 언덕'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도톰하고 신선한 회, 고슬고슬한 밥, 은은한 고추냉이의 풍미. 조연인 것 같지만 주연 같은 맛을 자랑하는 따끈한 된장국, 새우부터 닭고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재료가 조화를 이루는 달걀찜까지.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행복의 언덕에서 극상의 행복을 맛봤다.



카이센동 히노데

'쇼쿠도 미츠'에서 멋진 해산물 덮밥을 맛보고, 이번에는 고등어 회 덮밥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후쿠오카가 위치하고 있는 규슈 지역에서는 유독 고등어 회를 판매하는 식당이 많다. 이유가 꽤 흥미롭다. 이 지역에서 잡히는 고등어는 기생충이 육질부까지 도달하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회로 먹기 적절하다고. 이곳에서는 고등어 회에 참깨 간장 소스를 곁들인다. 이것을 '고마사바'라고 한다.

카이센동 히노데는 바로 이 참깨 고등어 회를 밥 위에 얹은 '고마사바동'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후쿠오카 야쿠인오도리 역 근처에 본점이 있다. 이날 방문한 곳은 하카타 역에 위치한 분점. 점심시간대에 맞춰 방문하니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으나, 회전율이 빠른 편이었다. 주문은 테이블에 붙어 있는 태블릿을 이용한다. 한국어로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 그다지 어렵지 않다.

이것이 바로 참깨 고등어 회 덮밥. '쇼쿠도 미츠'의 해산물 덮밥과는 완전히 다른 색감이다. 회 위로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붉은 색과 푸른 색이 섞인 고등어 회를 보며 연신 셔터를 눌렀다. 고등어 회와 함께 그릇에 올라가 있는 것은 약간의 파와 달걀말이. 그릇 뒤쪽 작은 종지에 든 것은 참깨 소스다. 약간 달착지근하면서 고소한 맛인데, 짠 맛이 강하지 않아 회의 감칠맛을 잘 느낄 수 있다. 회는 신선하고 비리지 않은 데다, 적당히 기름지고 탄력이 있어 맛도 식감도 훌륭하다. 참깨와 고등어, 이 둘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걸 왜 이제야 알았을까.  


혹시 후쿠오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먹어볼 음식 리스트에 참깨 고등어 회가 없다면··· 당장 추가하길 바란다. 해산물을 좋아하거나, 덜 느끼하고 신선한 음식이 당기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 개인적으로는 후쿠오카의 명물이라 손꼽히는 돈코츠 라멘보다 맛과 재료 조합의 측면에서 더 인상적인 요리였다.



번외
타코야키 트럭

타코야키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타코야키 팬까지 사 버린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다. 후쿠오카에서는 두 곳에서 타코야키를 맛봤다. 일본 전역에 체인점이 있는 '긴타코', 그리고 하카타 역 뒤쪽 편의점 근처에서 판매하는 트럭 타코야키. 번외로 이 타코야키 트럭을 소개해 볼까 한다. 가만히 있으면 얼어붙을 것 같은 날씨를 뚫고 세 번이나 찾아간 곳이기 때문에.

하카타역 근처 니시테츠 호텔 옆에는 굴다리가 하나 있다. '오늘은 계실까?' 긴장되는 마음으로 굴다리를 지나오면, 저 멀리 빨갛게 등을 밝힌 작은 트럭이 보인다.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는 바로 그 타코야키 트럭이다. 이곳에서는 오리지널, 매콤한 맛, 파 마요네즈 등 여러 종류를 주문할 수 있다. 서투른 일본어로 더듬더듬 주문하고, 타코야키가 구워지는 것을 지켜봤다. 반죽 위에 문어, 생강, 튀김 부스러기가 차곡차곡 올라가고, 곧 동글동글 말린다. 내가 집에서 만들었던 타코야키(라고 주장하는 무언가)를 떠올리며, '역시 전문가는 다르구나'하고 감탄하고 있으니 내 몫의 타코야키가 나왔다.

긴타코의 타코야키는 꼭 튀겨낸 것처럼 바삭하다. 트럭 타코야키는 그보다 말랑한 편이다. 오사카 타코야키보다는 바삭한 편이지만, 긴타코만큼 단단하지는 않다. 속에 들어 있는 문어의 크기도 크고, 타코야키 한 알의 크기도 상당히 크다. 한 입에 넣기에는 벅찬 사이즈다. 맥주나 하이볼과 잘 어울리는 맛이니 꼭 함께 즐겨볼 것. 눈보라를 뚫고 타코야키를 쟁취해낸 내가 자랑스러워지는 맛이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하고, 그 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요리를 즐기는 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다. 행복의 언덕 후쿠오카에서, 여러 음식들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길. 이 리스트가 여러분의 여행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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