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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Nov 25. 2021

소크라테스, 질문하는 사람

20대에게 들려주는 철학자 시리즈 1

밴스(Vance)야, 너에게 철학이야기를 들려주고 싶구나. 철학은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을 찾아가는 인생이야기다. 약 2,400년 전 주전 470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출생한 소크라테스부터 만나보자. 매부리코에, 살찌고, 씻지 않아서 초라해보이기도 한 추남이지. 그는 카리스마가 넘쳤고 총명한 지성을 가진 아테네 사람이다. 젊었을 때 펠로폰네소스 전쟁터에서 스파르타 연합군에 대항하여 아테네 군인으로 용감하게 싸웠다.


그는 글 쓰는 것보다는 현장에서 얼굴을 보면서 생생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더 좋아했어. 글을 읽으면 반박을 하거나 토론을 할 수 없지만, 대화를 하면 질문도 하고 이해를 시킬 수도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지. 그는 책을 남기기를 거부했어. 그의 수제자 플라톤이 스승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기록하여 전한다. 소위 플라톤의 '4복음서' - 《변론》 《크리톤》《파이돈》 《향연》-와 그의 작품 전반을 통해서 소크라테스를 만날 수 있지.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당시에 사람들은 아들을 소피스트('지혜자'라는 뜻)에게 보내서 말하는 법을 가르쳤지. 과외비가 비쌌어.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을 가르치는 대신에 질문하고 이야기하는 대화의 방법을 썼지.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진리를 발견하게 하도록 돕는 '산파술'이란 방법을 썼지. 산파는 임신한 여인이 아이를 낳도록 돕는 사람인데, 진리가 이미 인간 내부에 있으니 그것을 일깨우는 산파의 역할을 한거야. 소피스트들은 과외비를 받고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소크라테스는 돈을 받지 않았어. 아이들이 끊임없이 소크라테스를 찾아왔어. 오해하지 마길. 과외비 차이 때문은 아니야. 소피스트들은 그런 소크라테스를 싫어했다고해.


소크라테스의 별명은 '아테네의 등에(=쇠파리, gadfly). 성가시게 끊임없이 질문하여 무지를 자각하게 했기 때문에 붙은 별명이야. 이 쇠파리는 생명에 지장을 주지는 않고 다만 낮잠을 못 자게 성가시게 하는 존재야. '아테네의 등에'인 소크라테스가 인류의 정신적 잠을 일깨우는 역할을 했어. 시장터에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에게 성가실 정도이고 면도날처럼 예리한 질문을 하곤 했어. 특히 스스로 지혜롭다고 믿고 있고, 스스로 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끊임없이 했는데, 결국 제대로 알지 못하다는 것을 특유의 빈정거림과 논리로 그들의 무지함을 드러냈지.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을 예로 들자면 이런 거다. 에우튀데모스와의 대화에서 "속이는 행위가 비도덕적인 것인가?" 소크라테스가 그에게 묻는다. 그는 당연히 비도덕적이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만약에 그 친구가 우울증에 빠져서 자살하려고 하는데, 자살하려는 그의 칼을 훔쳤다면, 이것은 속이는 행동이 아닌가? 이 행동은 도덕적인가? 비도덕적인가? 비록 속이는 행위이지만 이런 경우 이것은 비도덕적이 아니라 도덕적인 처사가 아닌가?" 에우튀데모스는 "그렇군요."라고 답할 수 밖에 없었다. 에우튀데모스는 "이전에는 속이는 행위가 단순히 비도덕적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속이는 행위도 도덕적일 수 있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고 고백한다.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반대의 예를 들어서 상대방을 일깨우고는 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을 알고 비로소 지혜를 탐구하기 시작했어. 무지를 자각한 것이 지혜를 탐구하는 출발점이 되었다는 말이지. 소크라테스는 신의 소리,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듣곤 했어. 그 신의 이름은 다이모니온이야.



카이로폰의 신탁 이야기,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지'


카이로폰의 신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군. 소크라테스가 40세 쯤 되었을 때였어. 아주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카이로폰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소크라테스의 열정적인 팬이기도 했지. 이 친구가 소크라테스의 지혜로움이 너무도 자랑스러운 나머지 델피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 신탁을 받으러 갔대.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지혜로운지 알고 싶었던거야. 아폴론 신의 뜻을 답해주는 여사제 퓌티아에게 소크라테스가 얼마나 지혜로운지를 물었어. "소크라테스보다 지혜로운 자는 아무도 없다."라는 답변을 듣고, 너무나 기뻐서 한달음에 400리나 되는 마을로 돌아와서 소크라테스에게 이 소식을 전했지.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무지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친구의 말을 전해듣고 혼란스러웠대. 고민의 내용은 이렇다.


"도대체 그 신은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내가 전혀 지혜롭지 못하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내 자신이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신이 나를 두고 가장 지혜로운 자라고 단언하는 것이 무슨 뜻일까? 신은 거짓말을 하지 않을 텐데."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그들이 자기보다 더 지혜로운지를 알려고 계속해서 질문했는데, 마침내 그 신탁의 의미를 깨달았어. 자기의 무지를 알기에 지혜롭다는 사실을. 사실 사람들은 자기가 전문 분야에 대하여 말하지만,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철학자란,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이 지혜는 토론과 추론과 질문하는 것을 가치있게 여기고 있어.


당시의 아테네인들은 소크라테스의 진가를 잘 몰랐던 것 같아. 소크라테스의 진가를 알아본 사람이 제자 플라톤이지. 소크라테스의 위대함을 모르는 아테네인은 소크라테스를 위험인물로 보았어. 현재의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사람으로 보았지. 그의 나이 70세인 주전 399년에 멜레투스가 재판에서 그를 고소해서 사형언도를 받게 하지. 아마도 소크라테스의 지혜에 당했던 멜레투스를 포함한 많은 소피스트들이 그를 고발하고 비방한 것 같아. 죄목은 아테네의 신들을 믿지 않았다는 이유와 아테네의 청소년들을 버릇없이 굴도록 조장해서 권위에 반항하게 했다는 거지. 사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종교와 당시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조롱하곤 했어. 많은 아테네 사람들도 사형을 당하는 이유에 대하여 동조했다고 해.



소크라테스의 죽음


아내 크산티페와 세 아들과 친구들과 작별을 하고는 그는 독배를 마시며 서서히 죽어갔어.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놀랍게도 "너희의 영혼을 잘 돌봐라(Take care of your soul)."라는 유언이었대. 영혼 불멸을 철저히 믿었던 거지.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육체는 영혼의 감옥이고 죽음은 영혼이 해방되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였어. 얼마든지 사형을 받지 않을 수 있도록 처신할 수 있었지만,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하며 죽음을 자발적으로 선택했어. 소크라테스의 죽음 이후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계속해서 질문하는 제자들로 그의 정신을 이어받았지. 밴스야, 다음에는 소크라테스의 제자 플라톤을 만나보자.


이 그림은 자크 루이 다비드의 <소크라테스의 죽음>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는 소크라테스이고, 맨 왼쪽에 고개를 떨구고 소크라테스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노인이 플라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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