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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13. 2021

소크라테스 이전 3세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설

20대에게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0

밴스야, 현대철학은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이전의 자연철학자에게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철저한 회의론적 경험주의자 흄 이후로 현대철학은 자연주의로 돌아가는 경로를 시작했단다. 이 점을 발견한 것이 내가 철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놀라운 부분이었어. 그럼 세 번에 걸쳐서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을 만나보자. 그 중에서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데모크리토스의 사상을 눈여겨 보길 바래.


1세대 밀레토스(이오니아)학파 -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2세대 에베소의 헤라클레이토스(변화, 감각), 엘레아학파 파르메니데스(존재, 이성)
3세대 -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낙사고라스






소크라테스 이전 3세대 철학자: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낙사고라스


3세대 철학자는 2세대 철학자들이 변화에 관해 다른 두 입장을 설명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을 이용하여 헤라클레이토스와 파르메니데스의 충돌을 모두 설명하려 했는데, 즉 더 이상 쪼개지지 않는 불변의 원자와 허공이 존재하여, 수많은 개수와 다양한 형태 간의 원자 간 충돌이 변화를 일으킨다고 주장하여 두 대립을 절충하였다. 이런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는 우리가 관찰할 수 없기 때문에 실재(진정으로 있는 것)와 현상(우리에게 감각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구분하는 서양 철학적 개념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데모크리토스는 원자론, 유물론, 결정론으로 유명하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은 각자의 질문과 답변이 상이하지만 무엇보다 철학이 학문으로 존재하던 시기 오늘날 물리학에 해당하는 자연철학을 시작으로 철학을 시작했다는 공통점으로 묶을 수 있다. 이후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에 이르러선 자연에 대한 탐구가 인간학에 이르는 변화를 겪는다.


3세대 철학자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아낙사고라스. 3세대 자연철학자들은 궁극의 실재를 주장하던 파르메니데스와 변화를 주장하던 헤라클레이토스 사이의 긴장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던 중재적 철학자들이었다.


엠페도클레스의 기계론적 존재의 법칙

모든 요소를 묶는 힘은 사랑(아프로디테)이다. 사랑은 다른 요소를 하나로 통일하여 묶는다. 사랑은 인간이 기쁨과 사랑과 평화를 느끼게 하는 일소에서 발견하는 그 힘이다. 반대로 갈등은 분열을 일으키는 힘이다. 엠페도클레스


엠페도클레스는 이 세계가 물체와 정신이라는 두 개의 세계로 이뤄져 있다고 보았다. 첫째, 물체의 세계는 물ㆍ불ㆍ흙ㆍ공기라는 4가지 질료가 존재의 뿌리로서 사랑과 미움을 동력으로 혼합과 분리가 일어나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생겨난다. 둘째, 정신의 세계는 원래 신들 곁에 있던 영혼이 나쁜 짓으로 인해 땅에 떨어져 여러 육체를 거쳐 윤회를 하며 정화가 된 후 다시 저 세상으로 가게 된다고 시의 형식으로 쓰인 <정화> <자연에 관해서>라는 그의 저서를 통해 주장한다.


엘레아학파와 헤라클레이토스의 극단적인 두견 해를 받아들이며 여기서 일어나는 생성은 규칙적이고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새로운 해석을 하면서 기계론적 사고의 싹을 틔운 엠페도클레스. 우리는 항상 같은 것을 통해 같은 것을 안다고 하는 핵심사상 또한 우리들이 아는 만큼, 경험한 만큼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경험론적 인식론으로서 가치가 매우 크며 정신의 세계와 존재(물체)의 세계의 균형을 추구해온 철학사에 있어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엠페도클레스는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는 물, 불, 공기, 흙의 원소가 사랑과 미움의 힘으로 정해진 매뉴얼대로 혼합하고 분리됨으로써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생겨난다고 한다. 영혼은 몇 차례 육체에 들어감으로써 윤회하면서 정화되고 , 금욕주의적 생활들로 다시 육체에서 벗어나 다시 신의 곁으로 돌아가는 영혼불멸을 말한다. 엠페도클레스의 인식론의 핵심은 경험론을 주장하여 우리들은 항상 같은 것을 통하여 같은 것을 안다고 하는 사상이다. 엠페도클레스는 헤라클레이토스와 엘레아학파를 종합한 사고로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으며 질적으로 변하지도 않는 존재, 즉 원소가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혼합하고 분리한다.


데모크리토스: 원자론, 유물론, 결정론


‘근대 철학의 아버지’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 등 ‘근대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근대에 태어났다. 예외가 있다. 일군의 과학사가들이 ‘근대 과학의 아버지’라고 평가하기도 하는 데모크리토스(기원전 460년께~371년)는 기원전 5세기에 태어났다. 소크라테스(기원전 470년께~399)와 동시대 인물인 데모크리토스는 과학 분야에서 가장 근대적인, 가장 근대에 근접한 고대인이었다.


서구 과학사에서 데모크리토스는 스승 레오키포스(기원전 5세기 초에 활동)와 더불어 원자설(原子說·atomism)의 창시자로 기록된다. 원자설은 ‘세계의 모든 사상(事象)을 원자와 그 운동으로 설명하려는 학설’이다. 원자설은 현대 물리학의 주류 학설이다. 데모크리토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질을 계속 쪼개다 보면 더 이상 나뉠 수 없는 아토모스(atomos), 즉 원자(atom)가 남는다고 생각했다.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원자는 불변이며 그 수는 무한하다. 원자 사이에는 빈 공간(void)이 있다. 삼라만상은 원자와 빈 공간으로 이뤄졌다. 데모크리토스가 원자설에 도달한 것은 실험이 아니라 직관(直觀·intuition)을 통해서다.


데모크리토스는 최초로 ‘기계론적 우주관(mechanistic view of the universe)’을 완성했다고 평가된다. 데모크리토스는 물질의 본질을 설명하는 데 신(神)을 배제했다. 그의 주장은 유물론의 길을 열었다. 사회주의의 교조인 유물론자 카를 마르크스(1818~1883)의 박사 학위 논문이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에 대하여』(1841)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데모크리토스가 시도한 신을 배제한 과학은 근대나 현대 과학을 기준으로 봐도 지극히 혁신적이다. 뉴턴·갈릴레오·코페르니쿠스·데카르트와 같은 ‘근대 과학의 아버지들’은 모두 과학과 종교, 신을 조화시키기 위해 씨름했다.


데모크리토스가 무신론자였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사람들이 천둥·번개를 보고 공포에 휩싸여 신들이 천둥·번개를 만든다고 생각했다”라고 언급했다. 데모크리토스에 따르면 영혼도 원자로 구성됐다. 따라서 영혼은 물질이며 사후 세계는 없다. 하지만 유대교처럼 사후 세계가 없는 유신론도 있기 때문에 데모크리토스가 무신론자였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데모크리토스 이해

당시에도 데모크리토스의 주장은 파격적이었다. 데모크리토스는 플라톤(기원전 428/427~348/347)의 저작에 등장하지 않는다. 의도적이었다. 한 고대 저자의 전언에 따르면 플라톤은 데모크리토스의 주장에 분노했다. 플라톤은 조물주가 이데아에 맞춰 세상을 창조했다고 믿었다. 플라톤은 데모크리토스의 저작은 모두 불태워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불태워 버리기에는 데모크리토스의 저작이 당시 사회에 광범위하게 유포돼 있었다. 인기 작가였던 것이다.


데모크리토스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 )의 평가는 스승 플라톤보다 긍정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에 대해 “명료하고 방법론적으로 모든 문제에 대해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데모크리토스를 라이벌로 간주한 듯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운동자(prime mover)’ ‘목적인(目的因·final cause)’과 같은 자신의 주장이 옳고 데모크리토스는 틀린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데모크리토스의 주장을 빈번히 인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 덕분에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후세에 전해지게 됐다. 승자가 역사를 쓰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누구와 싸워 이겼는지 밝히기 위해 패자에 대해 기록한다. 시대가 바뀌면 기록을 바탕으로 패자가 부활하는 경우도 많다. 데모크리토스가 그런 경우다.


데모크리토스는 73권의 저서를 저술했으나 남아 있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 등 다른 철학자들의 저서에서 발견되는 파편적인 인용문들이다. 원자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데모크리토스의 주장은 사람들의 체험과 너무 달랐다. 중세 기간에는 교회의 신학과 충돌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승리했다. 데모크리토스는 2000여 년간 거의 잊혀진 인물이었다. 이슬람 세계는 원자론을 계속 연구했다. 이슬람권에서는 고대 그리스 원자론과 인도의 원자론을 융합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17세기에 데모크리토스를 부활시킨 것은 르네 데카르트, 프랜시스 베이컨, 갈릴레오 갈릴레이 같은 인물들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자신을 5종 경기 선수에 비유했다. 특정 종목의 최고는 아니지만 합계는 1등이라는 것이다. 겸손함이 묻어 있는 자평(自評)이다. 데모크리토스는 수학, 철학, 윤리학, 사학, 음악, 물리학, 법학, 기하학, 시학(詩學) 등 모든 학문 분야를 섭렵했다. 그는 시원적 인류학자·사회학자이기도 했다. 그는 인간의 삶이 원래는 동물과 같았고 말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인류는 언어, 농업, 상호 부조가 생기면서 사회 공동체를 이루게 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인류 역사의 여명기는 황금기였다고 믿은 기원전 8세기 시인 헤시오도스의 시각과 대조적이었다.


아낙사고라스, 철학을 아테네로 가져온 이오니아 철학자


아낙사고라스가 활동했던 그리스의 상황은 전쟁으로 비참한 때였다. 그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아테네가 페르시아와 전쟁에서 패배했던 때에 살았다. 페리클레스는 무너진 아테네를 다시 세우기 위해 세계 곳곳의 건축가와 철학자들을 초청한다. 그 인물 중 한 사람이 바로 '아낙사고라스'다. 러셀에 의하면 아낙사고라스가 최초로 아테네에 철학을 소개해주었다 한다.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이로 보아 아낙사고라스가 아테네에 전한 여러 철학적 지식은 그곳에 있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상당히 영향을 끼친 것 같다.


그는 이오니아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학문적 계보 또한 자연 철학자들을 따른다. 특히 러셀은 그를 아낙시메네스 학파에 속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낙시메네스의 주장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독창적인 주장을 펼친다.


아낙시메네스는 만물은 공기(프뉴마, 영, 氣)로 이루어졌으며, 공기의 응축 정도에 따라 물질의 변화가 일어난다 말했다. 하지만 아낙사고라스는 모든 만물은 네 원소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엠페도클레스의 주장과 유사하다. 물론 엠페도클레스와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확실히 아낙시메네스나 아낙시만드로스의 주장과는 상반된다. 또한 가장 작은 물질이라도 네 원소로 구성돼있는데, 그중 가장 많이 차지하는 원소로 물질이 변한다고 주장한다.


이 구성요소의 비율을 유지시키는 힘이 '누스'(정신)이다. 아낙시만드로스가 '아페이론'이라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물질을 상정한 이유는 만일 한 물질이 우세하다면 이 세상을 그 물질로만 가득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낙시메네스가 '공기'만을 근본 실체라 생각한 이유도 그와 비슷하다. 즉, 이들은 하나의 근본 물체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낙사고라스는 근본 물체는 4가지 원소이며, 근본 물체가 4개일 경우 생기는 아낙시만드로스의 문제를, 누스(정신)라는 균형을 유지시키는 힘을 상정함으로써 해결하였다. 어찌 보면 두 밀레토스 학자들보다 형이상학적 철학에 한 걸음 다가섰다고 할 수도 있다.


아낙사고라스의 누스(이성, 마음)


물론 그의 '누스'는 매우 초보적인 형이상학적 시도였다. 그래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가 정신이라는 단어만 도입할 뿐, 더 이상 진전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낙사고라스의 철학은 철학사에서 그리 중요한 위치는 차지하지 못한다. 어쨌든 그는 처음으로 누스라는 단어를 도입하여 형이상학적 단초를 아테네에 심어준 인물이며 그 시기에 살았던 소크라테스에게 영향을 주었다. 이것이 그의 철학사적 의의이다. 


아낙사고라스는 <무에서 어떤 것이 생겨나서, 다시 무로 사라져 버릴 수는 없다.> 라는 명제에서 출발하여 생성의 밑바탕에 있는 것은 무엇인지,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궁극적인 것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고 동질소와 정신(Nous)을 가져온다. 동질소는 궁극적인 구성 요소로 씨앗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완성된 산물과 질적으로 꼭 같으며, 각각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며, 이는 완성되어 있는 사물들의 본질이 질적으로 무한히 다양함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영원하며, 파괴되지 않고, 변화하지도 않고 그 양에 따라 개별적인 사물들의 특색이 나타난다.


정신(Nous)은 사고의 힘임과 동시에 의지의 힘, 만물의 운동의 근원이며 질서의 원리이기도 하며, 무한한 것이요, 자주적인 것이며, 그 자체로서 존재하며, 전지전능하며 만물을 지배한다. 우주와 우주 만물의 생성은 동질소들이 마구 뒤섞여 있던 태초에 정신이 끼어들어, 운동을 일으키고 이 운동에 의해서 하나하나 흩어지게 하여 우주에 질서가 생기게 하는, 즉, 세계를 창조한 자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질료들을 가지고 세계를 만드는 목수인 것이다. 질서가 생긴 이후 세계의 형성은 자동적이고 규칙적으로 진행된다.


아낙사고라스는 세상이 물질적인 원리와, 기계론적인 인과관계와 우연만 있다면 이토록 큰 성과를 거둘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서 출발하여 오로지 분석적이고 물질적인 부분만 고려하기보다는 이제 의미의 통일성과 전체성, 목적관련과 질서 관련을 고려하는 종합적인 방법을 찾다가 동질서와 정신 (Nous)를 유추하게 된 것이다. 아낙사고라스는 각 개체의 고유성과 특별함을 최초로 인정한 철학자이지 싶다. 그렇기에 각각의 고유한 본성을 동질소 하나 하나로 보고, 그 동질서가 제대로 형상을 드러나게 하기 위한 정신의 작용, 즉, 내가 나이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과 의지가 중요함을 강조했지 싶다.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BC 50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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