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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13. 2021

아리스토텔레스, 행복 이야기

20대에게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 고대 철학

밴스야, 오늘은 습관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 습관이 행복과 연관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어.  



그리스 데살로니가의 아리스토텔레스 대학


소크라테스의 정신은 계속해서 질문하고 생각하고 대화하기였다는 것을 소개했지. 철학도 일종의 영성훈련이야. 질문하고 생각하고 표현하고 실천하는 삶이지. 아리스토텔레스는 고대에서 가장 박식한 만물박사로 알려져 있어. 오늘날의 대학의 분과가 그의 책들에서 비롯되었지. 정치학, 윤리학, 형이상학, 논리학, 수사학, 심리학, 시문학, 윤리학 등. 비록 그의 이론 중에 무리가 있으나 중요한 통찰을 준 것들이 있지. 예를 들어, 그가 천동설을 주장했어. 그는 학문적 열정과 결실을 풍성하게 남겨놓았어. 그는 플라톤의 아카데미아에 들어가서 20년간 플라톤에게 수학하고, 이후에 오늘날의 그리스 마케도니아 왕 필립 2세의 부름을 받고 필립 2세의 아들인 그 유명한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 되었지. 지금도 그리스의 데살로니가에 가면 그의 이름으로 된 아리스토텔레스 대학이 있어.  


<아테네 학당>이라는 라파엘로가 그린 그림이야. 이 그림의 중앙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나오지. 서구 문명과 종교는 두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고 볼 수 있어. 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자세히 볼 수 있도록 그림을 확대해 보자.

하늘을 가리키는 플라톤과 땅을 가리키는 아리스토텔레스.


진정한 행복과 습관의 중요성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여름은 아니다(One swallow doesn't make a summer)."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들 니코마쿠스에게 들려주는 형식으로 책을 썼지. 그 책이 《니코마쿠스의 윤리학》이야. 후대의 사람들이 그의 책을 집대성하여 묶으면서 붙인 제목이라고 하네. "한 마리의 제비가 왔다고 여름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이 말은, 일순간의 쾌락을 즐긴다고 진정한 행복을 누리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야.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어린아이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했어. 어린아이가 행복하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거야. 놀랬지? 오직  행복은 어른만이 행복할 수 있다네. 왜 그럴까? 여기서 '습관의 중요성'이 나와. 행복은 지적인 탁월성과 성품의 탁월성에서 나오는데, 그 성품의 탁월성이란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후천적인 습관을 들이는 데서 나온대. "습관은 제2의 천성이다!" 이 말이지. 진정한 행복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형성된 좋은 습관의 결과라는 거야. 좋은 습관을 길들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좋은 습관이 행복으로 인도한다. 인사하는 습관, 자고 일어나는 습관, 정리정돈하는 습관, 책 읽는 습관, 운동하는 습관, 메모하거나 글쓰는 습관, 암기하는 습관 등이 중요하지. 좋은 습관은 성격을 바꾸고 인생을 바꾸지.


우리가 반복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다. 그렇다면 탁월함은 행동이 아닌 습관인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매력: 자연 예찬


플라톤이 현실을 열등한 것으로 본 것과는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세상의 모든 현실의 것에 매료되었지.

서구 문명과 기독교는 약 1000년 이상 아리스토텔레스를 제대로 접하지 못했어. 중세 신학박사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의 사상에 심취하여 기독교 사상을 아리스토텔레스 사상과 접목시키기 까지 말이야. 수학과 논리와 과학, 중세 이전까지만 해도 그의 장점을 이슬람권에서 독점해왔었지. 우리가 개신교니까, 아리스토텔레스가 이슬람교/유대교/천주교의 사상의 뿌리라는 데 너무 편견을 가지지는 말자고. 지금 찬찬히 생각해보니까 그가 매력적이야. 어떻게 매력적이냐 하면?


플라톤은 두 세계 이론을 가지고 있지. 현실은 가짜 세상이고 본질은 내세에 있다는 사상이야. 그래서 그는 자연세계를 부정했어. 자연과 육체와 같은 형이하학을 열등한 것으로 보았지. 플라톤은 안락의자에 앉아서 철학하는 것이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의 구체적인 현실에 근거한 실존주의 관점에서 철학을 전개해 나갔다. 플라톤은 이성으로 철학을 하면서 감각과 감정을 열등한 것으로 여겼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성의 힘을 강조하면서도 감각을 통하여 경험되는 현실을 탐구했어.


플라톤은 이데아(저 세상)를 강조했기 때문에, 시나 문학을 싫어했어. 그것들은 현세를 주제로 한 것들이기 때문에 플라톤은 시인을 싫어했어. 반면, 현실을 긍정하고 자연을 예찬하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와 문학을 옹호했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유명하지. 로고스(지식), 에토스(전달자의 신뢰성), 파토스(열정적인 태도), 그중에 제일은 에토스(Accountability, credibility)라! 사람을 설득하고 마음에 울림을 주려면 번드르르한 말(로고스)보다도 시간이라는 테스트를 통과하여 검증되어 신뢰(에토스)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단다.


영화감독 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네. 《시학》이던가? '희극은 우리만 못한 인간을 모방'해 우리에게 웃음을 주지만, '우리보다 더 나은 인간을 모방'하는 비극은 '연민과 공포를 불러일으키는 사건으로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실현'해 준다며, 그는 비극을 예찬했어. 특별히 그가 최고의 작품으로 추천한 책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었어. 반전에 반전을 다룬 이야기이며,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나게 하는 책이어서 중요한 고전으로 손꼽히지.


플라톤이 이데아(본질)에 집중하여 보편적 진리를 추구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보편적 진리가 구현된 개별자를 연구했지. 플라톤은 진리가 이 세상에 분유되었다 - 일부 나타났다 - 고 보는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진리가 이 땅에 담겨있다고 보고 자연과 세상을 탐구하는 '아래로부터의 진리탐구' 방법을 사용했지. 개신교가 신앙을 이성보다 우위에 두고 접근하는 방식이 플라톤적이라면, 천주교가 이성을 신앙만큼이나 중요시하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적이라고 볼 수 있지. 이 말은 아빠가 처음 하는 말이야. 누군가 반박하거나 보충설명하면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해.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탐구는 중세에 보나벤투라의 영성에 크게 영향을 끼쳤지. 너무 어렵게 말했는데 다시 간단한 이야기로 넘어가자.



좋은 삶을 추구함


'유다이모니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의 키워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역시 플라톤의 《국가》처럼 10권으로 되어 있어. 당시의 유행이었나? 10권을 선호하는군. 그 윤리학 책의 1권이 '행복' '좋은 삶'을 주제로 다루고 있어. 그는 사람들이 사는 목적은 행복이라고 보았어.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돈이나 명예나 좋은 집이나 자동차와 친구 등은 행복의 수단이지 그 자체가 행복은 아니라고 보았어. 행복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지.


그럼 어떻게 해면 행복이 이루어지나? 각자 고유한 기능이 있고 그것을 탁월하게 수행하는 것으로 보았어. 피리 연주자는 피리 연주를 탁월하게 함으로써 행복하듯이, 자신에게 고유한 '탁월성(아레테·arete)’을 발휘하는 일이 행복의 조건이야. 이 탁월성을 발휘하는 것은 식물을 키우듯이 시간이 걸리는 일이고 잡자기 되는 일이 아니야. 이것은 인생을 걸친 삶의 총합이지. 따라서 행복은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이고 성품의 문제라고 보았어. 또한 행복은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공동체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아빠는 요즘 사람들에게 이런 인사를 해. "당신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합니다." 아들~, 아들이 행복해야 아빠도 행복하단다. 행복하렴.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성품적 탁월성(아레테)


"어떻게 해야 '좋은 삶'(유다이모니아)을 개발할 수 있나요?"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답은 "좋은 성품을 개발하라."는 거다. 인간이 품성을 탁월하게 연마하고 발휘하는 것이 곧 행복이다. 용기, 절제, 관대함, 자부심, 사교성, 온화함, 재치, 정의, 친애  등이다. 용기에 대한 탁월함을 예로 든다면, 두려움도 없이 객기를 부리는 만용도 아니고, 두려움에 굴복하여 겁을 먹는 것도 아닌 가장 적절한 대응방식이 '중용'(Golden Mean)이다.


중용이란 '마땅히 그러해야 할 때, 마땅히 그러해야 할 일에 대해, 마땅히 그래야 할 사람에 대해, 마땅히 그러해야 할 목적을 위해, 마땅히 그러해야 할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온유(gentleness)를 예로 들면, 참는 게 온유가 아니다. 부드러운 게 온유가 아니다. 마땅히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게, 그 사람에게, 마땅히 그 장소에서, 마땅히 그 감정만큼만 표현하는 게 온유란다. 새롭지 않니?



아리스토텔레스의 함정


고대에서 가장 박식한 만물박사 아리스토텔레스에게도 함정이 있지. 그것은 '권위에 의한 진리'(Truth by authority)라는 거야. 아리스토텔레스는 같은 크기의 쇠뭉치와 나무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중력에 의해서 쇠뭉치가 먼저  떨어진다고 했어. 2천년 동안 그것이 사실인 줄 알았지. 그러다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피사의 사탑에 올라가 실제로 실험을 했어. 그 결과, 똑같이 떨어진 거야.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이 틀렸던 거지. 이처럼 틀린 주장임에도 불구하고 권위자의 주장이기 때문에 옳은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권위에 의한 진리'라고 한다. 갈릴레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천동설도 뒤집었지. 천동설은 프톨레미가 주장했다고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가 프톨레미의 스승이었어.


"사탄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온다"는 표현이 있어. 사기꾼이 멋지게 차려있고 고급 승용차를 타고 의사나 교수나 종교지도자 같은 권위를 덧입고 올 수 있다는 거야. 그런 사람 말을 다 믿어서는 안 돼. 책으로 출판되었거나 인쇄물로 찍혀 나왔다고 다 사실은 아니니 철저히 의심하고 검증을 해봐야 한단다. 아들아, 오늘은 여기까지다. 너무 지루해하지 말고 작은 습관을 들여라. 인사 잘하고, 식사 꼭 챙겨 먹고, 꼭꼭 씹어먹고, 운동하고, 정리정돈하고... 잔소리가 끝이 없네. 사랑한다. 아들~~.


다음은 회의주의자의 시조인 피론의 행복론을 소개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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