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가운데 첫번째 할 일, 혼란을 정리하라. 질서를 세워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시케(Psyche)와 에로스(Eros)의 이야기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라기보다, 사랑이 성숙해 가는 과정과 인간 영혼의 성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프시케는 아름다움 때문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Aphrodite)의 질투를 받게 되고, 결국 사랑하는 에로스를 잃게 됩니다. 그 사랑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프시케는 아프로디테가 내린 네 가지 고난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 네 가지 시련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여러 종류의 곡식이 뒤섞인 더미를 종류별로 분류하는 일입니다.
둘째, 사납고 위험한 황금 양에게서 황금 양털을 가져오는 일입니다.
셋째, 절벽에서 흐르는 스틱스 강의 물을 가져오는 일입니다.
넷째, 지하 세계에 내려가 아름다움을 담은 상자를 가져오는 일입니다.
이 네 가지 시험 가운데 첫 번째 시험은 매우 상징적입니다. 아프로디테는 프시케 앞에 거대한 곡식 더미를 쏟아 놓습니다. 그 안에는 밀과 보리, 콩과 렌틸콩, 여러 씨앗들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이것을 밤이 되기 전에 모두 종류별로 나누어라.” 인간의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프시케는 절망합니다. 그러나 그때 작은 개미들이 나타나 곡식을 하나씩 나누어 주어 결국 그 일을 완성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는 단순한 노동의 이야기가 아니라 깊은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정리하고 분류하는 능력”
아프로디테가 프시케에게 요구한 첫 번째 시험은 힘이나 용기, 혹은 특별한 지혜가 아니라 “정리하고 분류하는 능력”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첫째, 혼란 속에서는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곡식이 뒤섞여 있는 상태는 혼란을 상징합니다. 무엇이 무엇인지 구분되지 않는 상태에서는 어떤 판단도 할 수 없습니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문제 해결의 첫 단계는 언제나 같습니다. 섞여 있는 것을 나누고, 질서를 세우는 것입니다.
정리정돈하면, 생각이 정리되어야 판단이 가능하고, 판단이 가능해야 행동이 가능하며, 행동이 가능해야 변화가 시작됩니다.
둘째, 인간의 사고 자체가 분류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철학적으로 보아도 인간의 지식은 구분하는 능력에서 출발합니다. 참과 거짓을 구분하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며, 본질과 비본질을 구분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인간의 이해가 분류와 범주화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프시케의 첫 번째 시련은 바로 이러한 인간 사고의 기본 구조를 상징적으로 보여 줍니다.
셋째, 사랑 또한 분별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프시케가 에로스를 잃게 된 이유는 분별의 부족이었습니다. 그녀는 언니들의 질투 어린 말과 자신의 불안, 그리고 진실한 사랑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그 혼란 속에서 의심이 생겼고, 그 의심이 사랑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래서 프시케가 다시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혼란을 정리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상징이 등장합니다. 그것은 바로 개미입니다. 개미는 매우 작은 존재이지만 질서와 협력의 상징입니다. 개미들은 곡식을 하나씩 옮기며 분류합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거대한 문제도 사실은 작은 질서의 축적으로 해결된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에 해결하려고 하면 불가능해 보이지만, 하나씩 나누고 정리하면 길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작은 질서의 축적으로 해결됩니다. 하나씩 정리하고, 하나씩 분류하고, 하나씩 해결하는 것. 이것이 결국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를 해결합니다.
결국 프시케의 첫 번째 시련은 이렇게 말합니다. 문제 해결의 시작은 정리정돈이다. 생각이 정리되어야 판단이 가능하고, 판단이 가능해야 행동이 가능하며, 행동이 가능해야 변화가 시작됩니다. 혼란 속에서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많은 문제들은 사실 너무 복잡해서가 아니라 너무 뒤섞여 있기 때문에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감정과 사실이 뒤섞이고, 두려움과 현실이 뒤섞이고,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이 뒤섞여 있습니다. 그때 필요한 첫 번째 지혜는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분류와 정리입니다.
프시케가 개미의 도움으로 곡식을 나누었던 것처럼, 인간도 삶의 문제를 하나씩 나누고 정리할 때 비로소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프시케의 첫 번째 시련은 사랑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삶의 깊은 교훈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