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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06. 2021

3권 메넬라오스와 알렉산드로스(파리스)의 결투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3권

트로이 전쟁은 한 여인 헬레네 때문에 벌어진 전쟁이다. 전 남편인 그리스인 메넬라오스가 현재 남편인 트로이 왕자 파리스와 결투하는 장면이 3권의 내용이다. 파리스를 알렉산드로스(Alexandrus)로 기록하는 것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한동안 헛갈렸다. 알렉산드로스는 파리스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에 대한 간단한 설명은 댓글에 있음). 파리스의 형 트로이의 명장 헥토르는 동생 파리스의 여자 헬레네 때문에 10만의 그리스 연합군에 쳐들어온 것에 대하여 동생을 나무란다. 형의 책망을 달게 받으면서 파리스는 제안을 한다. 헬레네의 전 남편 메넬라오스와 내가 일대일로 결투를 벌일 테니, 다른 군사들은 피를 흘리지 말라는 멋진 제안이다. 누가 이기든 헬레네와 그의 전재산을 차지하기로 하고 양쪽 군대는 더 이상 싸우지 말라는 제안이다. 풋내기 같은데 그 생각은 참으로 기특하다. 트로이 군과 그리스 군은 이 제안에 모두들 기뻐하고 동의한다. 



동생을 꾸짖는 형 헥토르 장군 


어떻게 메넬라오스와 알렉산드로스의 대결이 성사되었을까? 동생 알렉산드로스를 꾸짖는 형 헥토르의 질책(upbraid) 때문이라고 본다. 헬레네의 전 남편이 10만 명의 그리스 군대를 데리고 공격해오자. 파리스는 겁을 먹고 만나. 형 헥토르는 이 싸움의 원인을 제공한 파리스가 남자답게 행동하지 못하는 것을 질책한다.


이 비열하고 여자만 밝히는 인간 파리스야. 이렇게 불명예스럽게 살면서 눈치만 보느니 차라리 안 태어났더라면,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나중에 메넬라오스와의 대결에서 형편없이 밀리고 마는 애송이 같은 파리스를 보면서 '꼴에 남자라고...' 하는 혼잣말이 나오지만, 그를 비난할 수는 없으리라. 나름 최선을 다했고, 헬레네를 납치(?)해 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진행하는 신의 계획의 일부였다. 부인 헬레네로 인해서 생긴 일이기는 하지만 파리스만을 비난할 수는 없다. 사실, 그리스 군이든 트로이 군이든 그를 매우 미워했다고 한다.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우스의 발뒤꿈치를 활로 쏴서 죽인 사람이 파리스 아니던가? 파리스가 그래도 대장부답게 행동하도록 동기부여를 해 준 것은 형 헥토르의 지독한 비난(upbraid)이었다. 우리 인생에서도 상처가 되는 말, 지독한 비난은 반드시 해가 되는 것만은 아니다. 나를 일으키는 힘이 되기도 한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은 책망과 비난이 나를 일으키는 힘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트로이의 헬레네, 스파르타의 헬레네


헬레네는 그리스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부인이었다. '파리스의 심판'에서 파리스가 세 미인 아테나, 헤라(주노), 아프로디테 가운데 아프로디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해서, 아프로디테가 약속한 데로 파리스에게 미인을 얻게 한 것이다. 스파르타의 왕비였던 헬레네는 트로이 왕자 파리스(알렉산드로스)에게 납치되었는데 순순히 간 것인지 본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납치되었는지 의견이 분분하다.


헬레네는 제우스의 딸이다. 엄마는 레다(Leda)로 알려졌다. 《일리아스》 3권에서 헬레네는 자기 방에 있는데 무지개의 여신 이리스(Iris, 영어 이름 '아이리스'가 무지개 여신을 의미하나 보다)가 시동생 라오디케(Laodice)로 변신하여 그녀를 싸움 광경이 바라다 보이는 곳, 시아버지 프리아모스 왕 곁으로 데려온다. 놀라운 광경 때문이다. 서로 싸워야 할 전쟁터에 양쪽 군대가 순한 양처럼 차분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 이리 와 보세요. 놀라운 광경을 보세요. 서로 맹렬히 싸우던 군인들이 모두들 앉아 있어요. 방패와 창을 내려놓고, 알렉산드로스와 메넬라오스의 결투를 기다리고 있어요. 이긴 사람이 당신을 차지하게 된답니다." 헬레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트로이> 영화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10만 명의 군대를 모아서 바다를 건너 머나먼 트로이까지 와서 10년째 싸움을 벌이도록 헌신하게 할 만한 그 미모의 여인 헬레네 역할을 할 여배우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트로이 전쟁은 이 한 여인을 둘러싼 명예 싸움이다. "아가야, 내 옆으로 와서 앉거라. 난 널 비난하지 않는다. 이것은 신들의 문제란다. 신들이 이 트로이 전쟁을 일으킨 거야." 시아버지 프리아모스 왕 - 헥토르와 파리스 형제의 아버지-은 며느리 헬레네를 전투가 잘 보이는 자기 자리 옆에 앉힌다. 헬레네가 시아버지 옆자리고 지나갈 때 과거 명장이었던 노인들이 수군거린다.


와, 아름답다. 저 여인 때문에 그리스와 트로이 군이 수년간 싸워 온 것도 놀랄 일이 아니군.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오는 것 같아. 그러나 아무리 아름답더라도, 그리스 군대 가 그녀를 데려갔으면 좋겠어. 안 그러면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슬픔의 피눈물을 흘릴 테니까." - 트로이의 노인이 된 명장들이 헬레네가 시아버지 프리아모스 왕 곁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서 한 말 -



관전석에 있는 헬레네와 프리아모스 왕


프리아모스 트로이 왕과 헬레네, 싸움을 관전하다. 헬레네가 서 있는 것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표현하는 듯하다. 앉아서 지켜볼 수 없는 대결이다.


헬레네가 시아버지 프리아모스 왕 옆에 앉았다. 자신의 조국 그리스에서 온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시아버지는 그리스의 그 유명한 장군들, 이름만 들었던 그 장군이 누구인지 하나하나 헬레네에게 묻는다. 

 

프리아모스 왕 : "아가야, 저 멋진 사내가 누구냐? 그 옆에 그보다 머리 하나가 더 큰 사내는 또 누구냐? 수려하고 기품이 있구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왕자의 위풍이 나는구나." 

헬레나 : "저 분은 아트레우스의 후예, 아가멤논 왕입니다. 탁월한 왕이요 용감한 군인이고 저의 시아주머니가 됩니다." 

프리아모스 왕 : "저가 아가멤논 왕보다 머리 하나가 작고, 어깨가 넓고 가슴이 떡 벌어진 장수는 누구냐?" 헬레네 : "오디세우스입니다. 라에르테스(Laertes)의 후예이며 아타가(Ithaca) 태생입니다." (그 외에도 대(大) 아이아스(아약스 Ajax)와 이도메네우스(Idomeneus)에 대하여 설명해준다.)



메넬라오스와 알렉산드로스의 대결


권투경기를 할 때 룰을 설명하고 반칙을 하지 말 것을 경고하듯이, 메넬레오스와 알렉산드로스(파리스)의 결투가 꽤 공정한 절차를 밟는다는 사실에 놀랐다. 두 나라 왕이 참석하는 가운데 제우스 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신께서 공정한 판결을 이 결투를 통해서 나타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싸움의 룰이 있고 공정한 절차를 밟는다는 대목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오, 전능하시고 지존하신 아버지 제우스 신이여, 아이다(Ida)를 지배하는 신이여, 어느 편이 화근을 만들었습니까? 그 자로 하여금 멸하게 하여 하데스로 내려가게 하시고, 우리 모두 친선을 도모하여 이 맹세를 지키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 아가멤논이 제우스에게 바치는 기도문 -


양 팀 코치로 헥토르(트로이)와 오디세우스(그리스)가 서로 공정한 대결을 하기로 약속하며, 장소를 정하고, 누가 먼저 창을 던지는지를 결정한다. 헉! 결투가 이렇게 차분하고 공정한 룰에 의해서 진행되다니. 양국을 대표하는 경기이지 동네 싸움이 아니다. 투구 속에 제비를 뽑아서 그것이 알렉산드로의 것으로, 알렉산드로가 창을 먼저 던지는 것으로 결정된다.


먼저 알렉산드로스가 창을 던지자, 메넬라우스가 방패로 날쌔게 막았다. 창은 방패를 뚫지 못하고 끝이 구부러졌다. 다음에는 메넬라우스가 창을 던졌다. 메넬라우스의 창은 알렉산드로스의 방패를 쳤다. 강한 창이 방을 뚫고 나가  갑옷을 가른 다음, 갑옷 속의 조끼까지 옆으로 찢었으나 빗나가서 죽음은 면할 수 있었다. 메넬라우스가  칼을 뽑아 치켜들고 투구의 뿔을 치자 칼날이 투구에 맞아 서너 조각으로 부러졌다.  메넬라우스는 알렉산드로스 투구 끝의 말 깃털을 잡아끌고 알렉산드로스를 자기 대열로 끌고 갔다.  


결과는 헬레네의 전남편 메넬라우스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이제 알렉산드로스는 죽음만을 기다리는 신세였다. 영화에서는 알렉산드로스의 형 헥토르가 메넬라우스를 칼로 찔러 죽이는 것으로 처리되었으나 이것은 원본과 다르다. 창으로 찔러 죽이려는 순간,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트로이 편임)이 나타나 알렉산드로스를 짙은 안갯속으로  데려가 향수 냄새가 풍기는 헬레네의 방에 내려놓는다.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의 개입


메넬레우스와 알렉산드로(파리스)의 대결. 알렉산드로스가 죽기 직전에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이 짙은 안갯속으로 알렉산드로스를 데려가 구출한다. 아프로디테(비너스)의 개입으로 두 사람의 대결의 결과는 오리무중이 된다. 그리스 군과 마찬가지로 트로이 군도 알렉산드로를 찾을 수가 없다. 그리스 군 못지않게 트로이 군조차 알렉산드로스를 미워한다. 그 사람 때문에 이 전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기에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트로이 군도 그를 발견한다 해도 숨겨주지는 않는다. 그러면 신 앞에서 정정당하게 싸우기로 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이기로 했는데 어떻게 되는 것인가?


아가멤논 왕은 그리스 군 앞에서 승리를 선언한다. 그리스 군은 열광한다. 두 나라의 약속대로라면 승리한 사람이 헬레네와 그 재산을 차지하기로 되어 있는데, 이 상황은 어찌 된 것인가? 메넬레우스가 승리한 것인가? 아니면 승부가 가려지지 않은 것인가? 이 부분이 모호하다.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의 개입으로 두 나라 사이의 약속은 흐지부지해지고, 트로이 전쟁은 혼전 양상으로 펼쳐지게 된다. 이도 저도 아닌 결과에 대하여 두 진영은 어떤 게임의 규칙을 새로 만들어낼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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