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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07. 2021

4권 올림포스 정상회의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읽기 4권

중요한 것은 약속이다. 3권에서 알렉산드로스(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대결에서 이기기로 한 사람이 헬레네와 그의 재산을 차지하고 깨끗이 이 싸움의 종지부를 찍기로 만인이 보는 앞에서 약속했다. 아니 신 앞에서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나는 사람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을 경험했다. 심지어 일류 정치가는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교묘하게 국민들의 환심을 사는 기술을 가져야 한다고 한다. '설마 만인과 신들 앞에서 한 이 약속을 어기지는 않을 거야.' 이런 순진한 기대는 《일리아스》 4권에서 깨지고 만다. 


애매한 면이 있다. 두 사람의 대결에서 메넬라오스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였지만, 아프로디테(비너스) 여신이 개입해서 알렉산드로스를 구출해 준다. 아프로디테 여신이 트로이 편을 드는 바람에 대결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심판진이 모여 VR 판독(비디오 판독, 반칙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 촬영 화면으로 판독하는 행위)을 해야 한다. 올림포스 산에서 신들이 모여  회의를 통해서 이 전쟁의 방향이 결정된다.



올림포스 정상회의


1 헤파이스토스 2 디오니시우스 3 아레스 4 아폴로 5 아테나 6 포세이돈 7 아르테미스 8 아프로디테(비너스) 9 제우스 10 데미테르 11 헤라 12 헤르메스 13 판

가장 흥미로운 것은 신들의 회의였다. 이 부분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하는 동시에, 더 큰 손이 우주를 움직이고 있다는 사상을 보여준다. 회의는 중요하다. 회의를 합리적으로 이끌기가 힘들다. 회장이라고 맘대로 할 수도 없다. 회장인 제우스가 먼저 의견을 제시한다. '메넬라오스가 이긴 셈이니, 헬레네와 그의 재산을 그에게 주고, 이 전쟁을 끝내도록 합시다.' 여기서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 그리스 편을 드는 헤라(주노)와 아테나(미네르바)가 이 제안을 받아들여도 될만하지 않는가? 지금 제우스가 메넬라오스가 이겼다, 그리스가 이겼으니 돌아가라고 하지 않는가.


문제는 질투다. 헤라와 아테나의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우리보다 아프로디테가 더 예쁘다고 하다니' 질투가 풀리지를 않는다. 원래 질투나 분노는 원래 받은 피해보다 100배로 돌려준다고 한들 풀리지가 않는 법이다. 헤라는 '여기서 물러나자고 9년 동안 장병들이 생고생을 한 줄 아세요? 프리아모스와 그의 자식들에게 재앙을 내리고 말겠어요.' 헤라가 접시가 깨지는 소리로 말한다. '트로이의 성  일리오스(Ilius)를 파괴해야 직성이 풀릴 것 같다'라고 한다. 트로이를 '일리오스' 또는 '일리온'이라 부른다. 책 제목 <일리아스>는 '일리온(트로이)에 관한'이란 형용사로 '트로이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는 뜻이다. 주제는 '분노와 전쟁'이다.


제우스의 회의 진행법은 만점이다. 회의 진행자는 가급적 진행만 하고 회원들이 결정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헤라가 트로이에 대하여 분풀이를 하려 하자, 제우스가 설득한다. '내가 당신이 보호하는 그리스의 도시들, 아르고(Argos), 스파르타(Sparta), 미케네(Mycenae)를 파괴하면 좋겠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시오. 어찌 그리 분노의 노예가 되어있소? 진정하시오.' 제가 오버했습니다. 이런 대사는 원문에 없습니다. 그랬더니 헤라가 말한다. '나는 당신이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내가 사랑하는 도시들을 파괴한다고 해도 관여하지 않겠어요.' 이처럼 헤라가 완고하게 주장하자, 제우스는 헤라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전쟁을 진행하게 되었다.



약속은 깨졌다, 그러나 지켜질 것이다!


인간사가 다 그렇다. 약속대로 정확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딱히 감옥에 보낼 상황도 아니다. 전쟁의 중요한 규칙이 깨져서 섭섭했다. 사실 이 전쟁에서 맹약이 깨어진 것이 서운한 것이 아니라, 내 인생에서 지켜지지 않았던 약속들 때문에 속상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약속은 깨어지고 전쟁은 계속되기로 올림포스 신들의 회의에서 결정되었다. 올림푸스의 신 제우스는 아테나(미네르바)에게 이 전쟁을 속행하도록 한다. 본격적으로 전쟁이 시작된다. 다시 인간사로 돌아온다. 아테나 여신은 트로이의 원로대신 안테노르의 아들 라오도코스의 모습으로 변장해서 리카온의 아들 판다로스(Pandarus)로 하여금 메넬라오스에게 화살을 쏘기 해서 부상을 입히게 한다. 첫째 날 낮 전투가 이렇게 시작된다.


약속을 깨고, 트로이의 판다로스가 메넬라오스에게 활을 쏴서 부상을 입힌다. 이렇게 첫째 날 낮 전투가 벌어진다.


메넬라오스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형 아가멤논가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Aesculapius)의 아들 마카온(Machaon)을 불러 치료하게 한다. 아가멤논 총사령관이 트로이가 약속을 깬 것에 분개한다. 


트로이 군은 그대를 쏘아 우리의 서약을 짓밟았다. 올림포스 신 제우스가 즉각 실행하시지 않을지라도 결국은 행하실 테니까! 그리하여 무거운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을 것이다. - 부상 입은 동생 앞에서 형 아가멤논이 하는 말 -


약속을 깨트린 것은 비록 시간이 지체될지라도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실제로 트로이 전쟁의 결과, 트로이는 패했다! 



아가멤논의 열병(閱兵), 첫째 날 낮 전투


아가멤논이 한 말이 옳다. 서약을 깨면 처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이때 이후로 아가멤논은 진중을 다니며 군사들을 격려한다. 겁쟁이들은 뒤로 보내고, 용감한 자를 앞세운다. 《일리아스》 4권은 아가멤논이 열병하는 방식으로 전쟁에 임하는 그리스 장수들을 클로즈업해서 소개한다. 크레타의 이도메네우스, 大 아이아스(Ajax, 아약스 축구팀의 이름), 小 아이아스, 아테나의 메네스테우스, 이타케의 오디세우스, 아르고스의 디오메데스(Diomed)와 스테넬로스 등등. 5권에서 디오메데스의 활약을 주목하자. 


《일리아스》 4권에서 전쟁에서 죽고 죽이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오디세우스의 전우 레우코스도, 프리아모스 왕의 서자 데모콘 외에는 눈에 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모르는 장수들이기에 별생각 없이 4권의 끝부분을 읽으면서 딴생각을 했다.


이런 글을 호메로스가 기원전 800년 전에 썼단 말이지... 기원전 800년 경의 지중해 연안의 그리스와 터키를 상상한다. 두 나라의 장군과 병사들의 싸움이 눈앞에 펼쳐진다. 어느덧 《일리아스》 4권을 읽었다.


에게해를 사이에 두고 그리스와 터키(트로이가 있는 곳)가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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