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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07. 2021

아이러니, 불합리

《공포와 전율》읽기 안내서 11

요하네스가 위의 일곱 가지 이야기들을 통해서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단독자는 때때로 보편적인 것과 고립될 수 있으며 보편적 원리에 반대되게 행동할 때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제. 아브라함은 심미적 영웅이 아니다.


심미가들은 누군가를 구원하기 위해서 침묵을 지킬 것을 요청한다. 사실, 아브라함의 침묵은 이삭을 구원하기 위한 침묵이 아니라, 이삭을 죽일 의도를 숨기려는 방법이었다. 그렇다고 아브라함이 비극적(윤리적) 영웅도 아니다. 왜냐하면 윤리적인 것은 모든 것을 밝히고 숨기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심미적 영웅도, 비극적 영웅도 아니기 때문에, 윤리적인 것보다 더 높든지, 아니면 사라지게 된다.


비극적 영웅과 달리, 아브라함은 말할 수 없고, 이해받을 수도 없다.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멈추고 말할 수 있는 모든 순간마다, 그의 시련 ordeal은 영적인 시험 a spiritual trial이다. 윤리적인 것이 아브라함의 시험꺼리라고 아브라함이 이것을 설명할 방도가 없고, 믿음의 운동을 설명할 수도 없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죽일 것을 계획하고 있고 불합리에 의해서 이삭을 돌려받으리라고 믿는다는 것을 누가 이해하겠는가?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으로 여정을 떠났다. 이삭이 아버지에게 "왜 번제물이 없느냐?"고 물으니, 아브라함이 "내 아들아, 하나님께서 친히 번제할 양을 제공하시리라." 라고 답한다. 요하네스는 이 말의 가치에 대하여 즉각 토론에 착수하면서, '그의 행위에 이미 영웅주의가 담겨 있는 비극적(윤리적) 영웅이었더라면 이런 말이 필요 없었다. 이런 말은 그의 영웅적 행위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성적이며 비극적인 영웅은 다른 한편 마지막 말이 필요한데, 그 말은 그의 생애의 절정에 해당하는 말, 곧 자신을 불멸하게 만드는 말이 필요하다.



아이러니와 불합리


아브라함과 지성적이며 비극적 영웅은 정신에 대한 경향성이 공통적이다.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은 무슨 말이든지 해야만 했다. 다른 한편, 그 역설에 따라서, 아브라함은 말할 수가 없었다. 만일 아브라함이 이삭의 질문에 사실 그대로, 이삭을 희생제물로 바치려고 한다고 말했다면,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 될 것이다. 만일 그가 이삭에게 모든 사실을 말했어야 했다면, 오래전에 이미 말했어야만 했었다. "난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고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거짓말이 아니고, 사실을 밝힌 것도 아니다. 아브라함은 아이러니(irony)를 사용했다. 아이러니는 말을 하는 것이면서도 동시에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대답은 거짓말이 불합리(the absurd)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한 마리 양을 제공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기에 거짓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아브라함은 체념(resignation)의 운동을 했고 이삭을 희생제물로 온전히 바치려고 했다. 아브라함은 말했지만, 그러나 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다.


마지막으로 요하네스는 아브라함이 믿음의 아버지이며 소통할 수 없는 즐대적인 것과 절대적 관계를 함으로써 윤리적인 차원보다 높이 있든지, 아니면 아브라함은 미친 사람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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