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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17. 2021

피렌체의 영웅이었던 사보나롤라

마키아벨리의 근대사상의 배경

피렌체의 영웅이 된 사보나롤라


마키아벨리(1469-1527)는 20대에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당시 피렌체에서 4년간 신정정치를 하고 화형 당한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사 지롤라모 사보나롤라(1452-1498)의 정치를 몸소 체험하고 보면서 자랐다. 마키아벨리가 사보나롤라보다 17살 아래이다. 


사보나롤라는 1452년 페라라에서 태어났다. 외지사람으로서 피렌체의 종교와 정치의 권력을 차지했다는 것은 그의 내공이 대단하다는 증거이다. 사보나롤라는 명설교자로서 교황청의 타락과 향락에 물든 피렌체 고위층의 삶을 격렬하게 비판하여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되었다. 


사보나롤라는 예언하기를 피렌체가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그 예언을 한 뒤로 2년 뒤인 1494년 프랑스의 샤를 8세가 피렌체를 침공하는 일이 발생했다. 프랑스 군대는 100년 전쟁을 치르면서 더욱 강력하고 전쟁에 능해서 정신력이나 군사력에서 취약한 피렌체 군대가 당해낼 수 없었다. 피렌체 행정부는 피사 평야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 샤를 8세에게 6명의 사절단을 보냈다. 그 가운데 사보나롤라가 포함되어 있었다. 1494년 11월 9일,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피사 평원에서 사보나롤라는 적국의 왕 샤를 8세에게 외쳤다.


“왕이시여! 당신은 하나님의 종으로 이탈리아에 오신 것입니다. 당신의 도래를 우리는 기뻐하고 있습니다. 왕이시여! 하나님의 뜻을 잘 받드시기 바랍니다! 승리가 당신과 함께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내 말을 경청하십시오. 왜냐하면 나는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피렌체는 죄인의 소굴이지만, 아직 하나님의 종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므로 ‘선한 자’들을 보호하셔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종으로 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피렌체의 ‘선한 자’들을 보호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피렌체가 프랑스의 침략을 당하기 전 사보나롤라가 피사 평야에 주둔하고 있는 프랑스의 왕 샤를 8세에게 외친 말.


피렌체의 명설교가인 사보나롤라의 설교가 신앙심 깊었던 샤를 8세에게도 통했다. 그 수도사의 설교에 감동을 받고 피렌체는 약탈을 면했고 사보나롤라는 피렌체의 개혁적인 명설교가에서 피렌체를 구한 영웅이 되었다. 그는 피렌체 공화정의 실세가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환호하며 그의 뒤를 따라가며 이렇게 외쳤다.


프로페타(예언자)! 프로페타!


사보나롤라는 1494년부터 1498년까지 4년간 피렌체를 통치했다. 그런데 왜 사보나롤라가 화형을 당했을까? 내가 2015년 피렌체에 갔을 때,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에 그가 화형 당한 장소가 표시된 것을 보았는데, 도무지 역사를 모르니까 답답했었다.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개혁가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잘못으로 화형을 당했는지 궁금했었다.


사보나롤라는 당시 교황 알렉산데르 6세(1431-1503년)를 비판했다. 이 교황은 《군주론》의 모델이 되는 체사레 보르자의 생부이다. 교황이 아들을 두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교황의 타락을 짐작할 수 있고 그는 비난받을 인물이었다. 교황은 사보나롤라의 비난에 반응하여, 그를 파문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피렌체 시민들은 사보나롤라를 옹호했다.


1497년 2월 7일, 사육축제의 마지막 날에 피렌체 도심의 시뇨리아 광장에서 사치품과 트럼프와 같은 도박 기구들, 그리스 신화를 내용으로 하는 르네상스의 회화 작품, 로마 시대의 조각들, 점성술 책들을 쌓아놓고 '허영의 화형식'(Bonfire of the Vanities)이 거행되었다. 마치 성경 사도행전에서 에베소에서 그랬던 것처럼 했던 것이다. 화형식이 끝날 무렵 모든 성당은 타종을 했고 피렌체 시민들은 이 예언자의 지도력에 감동하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그 당시 17세 아래인 28세의 청년 마키아벨리가 4년 동안 지켜본 바로는, 이것은 포플리즘에 불과했고, 종교인 사보나롤라의 정치는 아마추어에 불과했다. 한 마디로 사보나롤라는 정치를 몰랐다. 


한편, 교황청은 더욱 강력하게 사보나롤라를 압박했다. 교황의 파문을 받아들이지 않자 피렌체 시민들을 강경하게 압박했다. 사보나롤라의 신병을 로마로 인계하지 않으면 로마와 나폴리 등 유럽 전역에서 피렌체 시민들의 재산을 누구든지 강탈해도 좋다고 했다. 자기 전재산을 빼앗긴다는 말에 피렌체 시민들은 동요했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서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란 아버지가 죽임을 당한 일은 곧 잊을 수 있어도, 자기 재산의 손실은 여간해서 잊지 못한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한 말이다. 교황청의 강경책으로 인하여 자기 재산의 손실이 두려워서, 사보나롤라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대중들을 생각하며 쓴 마키아벨리의 말이다.


종교적 신념보다 자기 재산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게 인간이다. 피렌체 시민들은 그동안 보였던 사보나롤라에 대한 열광적인 지지를 철회하기 시작했다. 사보라롤라의 최후는 교황청으로부터가 아니라 그를 라이벌로 여겼던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산타 크로체 성당의 한 설교자로부터 오게 되었다. '누가 진정한 예언자인지, 불의 심판을 받자'고 그가  도전한 것이다. 불길 속을 걸어가도 화상을 입지 않는 사람을 진짜 예언자로 하자는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이다. 왜 사보나롤라가 그 도전에 임했는지 모르겠다. 이미 교황청의 파문과 사람들이 등을 돌렸기 때문에 이것은 그의 최후로 가는 불가피한 길이었는지 모른다. 


1498년 5월 23일, 화형을 당해 죽었던 사보나롤라의 모습과 그의 마지막 현장을 보존한 기념 동판이다.



1498년 4월 7일, 불의 심판


이 말도 안되는 일이 진행되었다. 1498년 4월 7일,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에 이른 아침부터 수많은 인파가 몰렸고 불의 심판을 위한 무대를 설치했고 점심때가 되면 불을 붙이고 두 사람이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양측에서 격론이 벌어졌다. 


이른 아침부터 몰려든 피렌체 시민들은 숨을 죽이며 행사를 기다렸다.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과 두 수도사가 모두 불에 타 죽게 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장작더미에 불을 붙이는 시각은 정오로 정해졌다. 기다리다 지친 일부 시민들은 경비병의 감시를 피해 몰래 장작에 불을 붙이려다 쫓겨나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적을 바라던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그런데 갑자기 프란체스코 수도회를 대표하던 론디넬리가 불의 심판을 받을 수 없다며 무대 아래로 퇴장해버렸다. 상대편 도메니코 수도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상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이 교리에 어긋난다며 불의 심판 자체를 거부한 것이다. 두 수도회 측은 이 문제를 놓고 옥신각신 말싸움을 벌였고, 결국 시뇨리아 행정부 대표의 중재를 받기 위해 두 수도사는 정청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시간이 흘렀다. 수도사들은 몇 시간 만에 잠깐 밖으로 나와 자기편 수도회 대표들과 귓속말로 무엇인가를 상의한 다음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기를 몇 차례 반복했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시뇨리아 광장으로 모여든 사람들은 점점 인내심을 잃어 가고 있었다. 기적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기대심에 하루 종일 서서 기다리던 시민들이 서서히 동요하기 시작했다. 

오후 5시쯤 되었을 때, 갑자기 피렌체의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졌다. 토스카나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봄의 소낙비였다.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사보나롤라 측 수도사들이 벌떡 일어나 외치기 시작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시다! 하나님은 이 불의 심판을 원하지 않으신다!” 이 말 한마디가 사보나롤라를 몰락시켰고, 그를 비극적인 죽음으로 몰고 갔다. 이 외침을 듣는 순간, 사보나롤라를 향해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저 사기꾼! 저놈은 프로페타가 아니라 사기꾼이야! 처음부터 불로 뛰어들 자신이 없었던 거야!” <마키아벨리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김상근)


봄의 소낙비가 내리던 피렌체에 폭동의 열기가 몰려왔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바르젤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훗날 마키아벨리가 고문을 당하게 되는 바로 그 장소다. 


사보나롤라에게도 마키아벨리가 받게 되는 고문과 똑같은 고문이 가해졌다. 팔을 뒤로 묶어서 천장까지 들어 올렸다가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는 날개 꺾기 고문이었다. 마키아벨리는 여섯 번이나 그 고문을 받았지만, 끝까지 고통을 견디며 무죄를 주장했다. 그러나 사보나롤라는 단 두 번의 날개 꺾기를 당하고 난 뒤 자발적으로 자신의 죄를 줄줄 읊어 대는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 자신은 프로페타가 아니며,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서 계시한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었다고 자백한 것이다.



1498년 5월 23일, 화형을 당한 사보나롤라(46세)


1498년 5월 23일, 시뇨리아 광장 한복판에서 사보나롤라는 다른 수도사와 함께 화형을 당했다. 마키아벨리는 종교인이 4년간 피렌체를 통치한 것을 지켜보고 그 몰락도 지켜보았다. 29세의 청년 마키아벨리가 종교와 정치, 정치인의 인기, 대중의 속성 등에 대하여 무슨 생각을 했을까? 


종교는 사회 유지를 위한 유용한가? 왜 사람은 권력을 잡으면 변질되나? 손바닥 뒤집듯이 자기 입장을 바꾸는 대중의 판단을 신뢰할 수 있나? 인기를 누리던 사보나롤라는 왜 하루아침에 몰락했나? 사보나롤라처럼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사보나롤라의 인기와 몰락을 지켜본 20대 청년 마키아벨리의 고민


사보나롤라의 정치의 등장과 몰락을 직접 목격하고 현장에서 체험하고 성찰하면서 그 결과물로 《군주론》을 쓴 것이다. 


질문: 어떻게 하면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할 수 있을까?

1. 비르투스(남성적 덕성, 탁월함, 용기)

2.  포르투나(행운의 여신)이 답이다.


이것이 마키아벨리의 고민과 답이라고 나는 파악했다. 사보나롤라가 화형당하고 6일이 지난 후, 마키아벨리가 시뇨리아 정부청사에 첫 출근을 하게 된다. 마키아벨리가 사보나롤라가 화형당한 후 6일 후에 시뇨리아 청정으로 첫 출근을 하면서 이렇게 속으로 외치지 않았을까?


 '진정한 프로가 나간다. 아마추어는 비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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