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인문학자 김상근 교수가 마키아벨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가 괘씸했기 때문이다. 흔히 마키아벨리 하면 『군주론』을 떠올리지만, 그는 그 외에도 『로마사 논고』, 『전쟁의 기술』, 『피렌체사』 등의 대작과 수많은 단편과 편지를 남겼던 인물이다. 그는 르네상스 시대 한복판에 살았던 인물이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외교를 담당하던 제2서기장으로 재임하고 있을 때, 미켈란젤로가 피렌체에서 <다비드>를 조각하고 있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체사레 보르자 밑에서 특별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미켈란젤로, 다 빈치와 같은 시대에, 같은 도시에서 살았던 인물이다. 그런데 너무나 놀랍고 괘씸한 것은, 마키아벨리가 그 많은 문장들 속에서 단 한 번도 피렌체 예술이나 르네상스 예술가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는 『군주론』의 말미에 르네상스 시대의 뛰어난 예술과 이탈리아 예술가들에게 빈정거리는 태도를 취한다. 그토록 찬란했던 르네상스 시대에, 그것도 미켈란젤로, 다 빈치와 같은 시대에, 같은 도시에 살았던 그가 르네상스의 예술에 대해서 이렇게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금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것이 마키아벨리를 연구하게 된 첫 번째 동기다.
약자들이 마키아벨리를 읽어야 하는 이유
마키아벨리는 특유의 대범함을 지녔고, 무엇 하나 거칠 것이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따라서 그의 이름이 ‘권모술수에 능한’이라는 악의적인 형용사로 사용된다고 해도 별로 상심하지 않을 인물이다. 그러나 평생을 권력의 위협 앞에서 전전긍긍하는 약자로 살면서, 같은 동료 약자들에게 강자의 횡포에 당하지 말고 살자며 그들을 위로했던 마키아벨리로서는 그의 책과 사상이 ‘강자를 위한 지침서’로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마 대성통곡을 할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늘 약자였다. 약자들이 그의 동료였다. 권력을 가진 강자들이, 황제의 왕관을 뒤집어쓴 권력의 괴물들이 서로 부와 명예, 영토와 백성을 놓고 무한 경쟁을 펼치고 있을 때, 철저한 약자의 삶을 살았던 인물이다. 그는 늘 가난에 쪼들렸으며, 공직에서 해고당할까 두려워했고, 줄을 잘못 서서 공직에서 파면된 뒤 실업자로 무려 15년 동안 빈둥거리는 삶을 살았던 불쌍한 인물이었다.
우리가 마키아벨리를 다른 각도에서 읽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마키아벨리의 조언을 들어야 하는 약자다. 약자의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마키아벨리를 다시 읽어야 하는 독자다. 마키아벨리는 강자에게 당하지 않고 사는 법을 약자인 우리들에게 은밀히 속삭이고 있는 것이다.
인문학자로서의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가 권모술수의 대가로 잘못 알려진 두 번째 이유는 그가 쓴 책의 진면목을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흔히 마키아벨리 하면 『군주론』을 떠올리는데, 이 책은 그의 정치사상의 전모를 밝히기에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 책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권모술수로 권력을 유지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직에서 쫓겨난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정치 실세로 복권된 메디치 가문으로부터 일자리를 얻기 위한 일종의 자기 추천서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런 특별한 목적으로 썼기 때문에 『군주론』은 권력 집중을 강조하고, 군주의 처세가 극단적이어야 한다고 애써 강조한다. 군주에게 권력이 집중되면 될수록 그 군주는 더 유능한 참모를 거느려야 하고, 군주의 통치가 극단적일 때 이를 현명하게 조율할 수 있는 책사策士가 필요하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이런 참모와 책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군주론』의 내용을 극단으로 몰아갔다. 이런 집필의 일차적 목적을 조심스럽게 분별하면서 『군주론』을 읽어 가더라도 곧 두 번째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마키아벨리가 현란할 정도의 인문학적 지식을 집필에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의 다양한 고사古事나 인물의 인용은 보통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놀라운 인문학적 지식의 면모를 보여 준다. 그는 복잡다단했던 16세기 이탈리아의 정세를 헤쳐 갈 군주의 덕목을 파헤치기 위해,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를 자유자재로 인용하면서 자신의 인문학자적인 면모를 유감없이 과시한다. 당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었던 까닭도 있지만, 예술과 인문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던 메디치 가문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는 과도할 정도로 인문학적 정보를 집필에 활용했다.
상황에 따른 군주의 임기응변적인 리더십을 촉구하던 마키아벨리는 갑자기 고대 그리스나 로마로 돌아가 의미심장한 그리스 신화를 인용하거나 로마 황제의 정치적 판단력을 인용한다. 이런 인문학적 정보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의 독자들은 그 부분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포기하게 되고, 결국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서 읽게 된다. 이런 선택적인 독서 방식은 ‘마키아벨리는 권모술수를 가르쳤다’는 일반적인 선입관과 결합해 『군주론』을 각자가 읽고 싶은 대로 읽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군주론』을 포함한 마키아벨리의 여러 저작들은 권모술수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일차적인 목적은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고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그리스 신화에서 은유적으로 설명되어 있는, 고대 로마의 정치가와 철학자들에 의해 펼쳐진 인간 본성에 대한 성찰을 되새기면서 지금의 난제를 풀어 가자는 것이다. 마키아벨리는 『전쟁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고전의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했다.
당신은 내가 얼마나 오랫동안 로마인의 상황에 대해 예를 들어왔는지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내가 로마인에게서 영향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얼마나 절실하게 염원해 왔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키아벨리의 이러한 고전에 대한 회귀 열망은 현대 독자들이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안겨 주었다. 마키아벨리의 책을 읽기가 어려운 이유는 그의 글이 인문학 고전을 종횡무진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시로 등장하는 이집트, 그리스, 페르시아, 로마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마키아벨리 사상의 전모를 이해하는 것은 그야말로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이 책은 마키아벨리의 인문학적 깊이를 가늠해 보는 흥미로운 인문학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약자들이여, 고전을 손에 들어라!
마키아벨리의 핵심은 《로마사 논고》에 있다! 고전, 경험, 그리고 거기서 얻은 통찰을 통해서 현실을 타개할 수 있다. 김상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