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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르 Ohr Dec 08. 2021

소크라테스가 데이비드 흄을 만났을 때

데이비드 흄의 《인간지성에 관한 탐구》(1748)에 대한 비판서

흄은 인류 사상사에서 가장 강력하고, 진지하며, 반박하기 힘든 회의주의자이다. 나는 대학원 시절 '근대 철학' 세미나에서 흄을 처음 접했을 때를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세미나의 수강생 10명은 철학 전공자들이며 친구들이었다. 우리는 수업이 없는 일주일의 독서주간 동안 흄을 읽어야만 했다. 우리는 이 위대한 회의론자 흄을 심각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신론보다는 진리를 발견하는데 더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흄은 우리를 매우 괴롭혔다. 왜냐하면 그의 회의론적 주장을 우리가 반박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의 회의주의적 결론을 수용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그랬다면, 철학은 어떻게 되었을까? 과학과 상식, 종교, 도덕, 교육과 인간의 일반적인 지식은 어떻게 되었을까? 무지의 동굴에서 해방되는 모든 과정은 그저 또 하나의 동굴에 불과할 것이다.



데이비드 흄 공부를 한 계기


세미나로 다시 모였을 때 우리는 우리의 이러한 고민을 William Harry Jellema 교수 - 칼뱅대학교 교수로, 최고의 선생님이며, 소크라테스처럼 책을 쓴 적이 없는 분 - 에게 말했더니, 교수님은 "해답을 말해주는 대신에" 우리를 다시 흄에게로 보냈다. 그런데 우리에게 우리의 논리를 기억할 만한 것을 언급해주셨다. 만일 우리가 흄의 결론을 수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애매하게 용어 사용이나 아니면 암묵적으로 논리적 오류를 담고 있는 가짜 전제를 찾아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다. 흄의 결론에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우리는 흄의 주장을 반박해야만 했었다.


흄은 매우 중요한 사상가이다. 흄은 칸트에게 영향을 끼쳤고, 흄과 칸트는 이후의 모든 철학에 영향을 주었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의 도움을 받아서 이런 과정에 참여하도록 여러분을 초대하는 바이다. 아무도 회의주의자가 되기를 원치는 않는다. 왜냐하면 일부러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고 화나게 하려는 불쾌한 유형의 사람이 아니고서야, 회의주의자가 되어서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무신론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의 경우이다. 천지, 가학주의자(마조키스트), 또는 비도덕주의자의 경우가 무신론자가 되고 싶어한다. 행복한 위선적 무신론자 사르트르와 불행하고 정직한 무신론자 카뮈를 대조해보라.) 흄은 불행한 회의론자, 정직한 회의론자이기에, 우리는 흄을 매우 진지하게 대할 필요가 있고, 매우 조심스럽게 반박해야 할 것이다.


흄은 이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왜냐하면, 흄은 오늘날 영어권 철학에 지속적이고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흄에게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사상의 아이는 "분석철학"의 극단적이고, 교조적이고, 환원적인 형태이다. A.J. 아이어(Ayer)는 그의 책 《언어, 진리, 논리》에서 분석철학을 "논리 실증주의"라고 불렀다. 이 분석철학은 더 이상 유행이 아니지만, 그러나 좀 더 완화되고 수정된 분석철학의 변형들이 있는데, 이 모두가 흄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흄은 인간 이성의 모든 대상들을 "사실의 물질들(matters of fact)"과 "관념의 관계들(relations of ideas)"로 환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은 후에 칸트가 "종합적 후험적 명제들(우연히 참인 것들)"과 "분석적 선험적 명제들(필연적으로 참인 것들)"이라고 부르는 것과 거의 유사합니다. 그렇다고 무서워서 이 책을 덮지는 말라. 흄은 그런 기술적 용어들을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각각의 용어에 대한 명료하고, 상식적이며 정의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흄은 우리를 혼란하게 만들고, 흄 자신도 혼란을 겪기도 하며, '그리고 심지어 때때로는 지루하기까지 하지만', 그러나 그는 언제나 명료하다.



흄은 가장 철저한 근대정신, 현대 영미철학의 시조


흄은 매우 중요한 사상가이다. 왜냐하면 흄은 칸트에게 영향을 끼쳤고, 흄과 칸트 둘 다 이어지는 모든 철학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독단의 잠'에서 깨워준 사람이 흄이었다고 칸트는 고백한다. 흄에 대한 응답으로 칸트는 서양철학사를 칸트이전과 칸트이후 둘로 나누었다. 이는 역사를 B.C.와 A.D.로 나눈 그리스도에 비견될 일이다.


그의 선배인 로크와 버클리처럼, 흄의 철학은 경험주의로서 "근대 철학의 아버지"인 데카르트의 합리주의를 비판한다. 흄의 회의론적 결말은 로크가 시작한 경험주의의 출발점의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다. 로크가 흄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를 꺼렸던 이유는, 그 결론이 너무도 급진적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흄은 경험론을 극단적으로 밀어 부쳐서 본유관념(신개념, 도덕개념, 수학적 관념 등)을 부정하고, 학문적 기초인 물리법칙까지도 부정했고 철학을 무너뜨렸다. 흄은 그의 선배들과 후배 철학자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서양철학사에서 결정적인 위치를 접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흄과 "위대한 대화"를 시작했고, 그 대회는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고전적 근대철학을 세 유형으로 나누면, 데카르트의 합리주의, 흄의 경험주의, 칸트의 관념주의로 나눈다. 이들 모두 인식론에 관한 이론이다. 데카르트가 《방법 서설》(1637)을 출간해서부터, 헤겔의 1831년 죽기까지의 놀랍도록 풍성한 200년간의 대부분의 고전적 근대 서양철학의 주류는 인식론이었다. "인식론"이란 "지식에 관한 이론", 진리란 무엇인가, 진리의 원천은 무엇인가, 우리는 진리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진리는 어떻게 일하는가?, 진리는 어떻게 일해야 하는가? 등을 연구한다. 인식론은 가장 내숭을 떨고, 가장 순수한 이론철학일 것이다. 그런데, 인식론은 철학의 가장 기초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어떤 인식론의 입장을 취하든지간에 항상 당신의 나머지 철학들-당신이 공부할 형이상학, 우주론, 철학적 신학, 문화인류학, 윤리학, 그리고 정치철학 등- 에 대한 결론을 얻게 되며, 그런 철학들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흄의 단편 《인간지성에 관한 탐구》과 장편 《인간본성에 관한 논고》


철학자들은 종종 장편과 단편 두 권의 사상서를 저술한다. 단편은 고전이 되고, 널리 알려지고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장편은 좀 더 어렵고 난해한 박사논문의 주제가 된다. 데카르트는 《방법서설》(1637)을 썼을 뿐 아니라 좀 더 어려운《성찰》(1641)을 저술했다. 칸트는 상대적으로 쉽고 짧은 《학으로서 등장할 수 있는 모든 장래의 형이상학을 위한 서설》 (1783년) 을 썼을 뿐 아니라 방대하고 긴 《순수이성비판》(1판, 1781년: 2판, 1787)을 저술했다. 칸트는 또한 《윤리 형이상학의 정초》(1785년)를 썼고 길고 복잡한 《실천이성비판》(1788년)을 썼다. 마찬가지로 흄도 단편 《인간지성에 관한 탐구》(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748)을 썼고 장편인《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A Treatise of Human Nature, 1739–40)를 썼다.


독자도 그렇듯이, 흄 자신도 그의 단편 《인간지성에 관한 탐구》를 더 좋아했다. 흄은 그의 1777년 유고집 서문에서 초기의 장편 《인간본성 탐구, 인성론은》 "애송이 작품"이었다고 밝혔다.


이 책은 흄의 단편 《인간지성에 관한 탐구》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짧은 비판서이다. 사후에 소크라테스가 흄을 만나서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은 학술적인 책이 아니다. 나의 즉흥적이고 독창적인 접근으로 좀 다 자연스럽게 간결하게 저술하고자 했다.


이 글은 피터 크리프트의 책 서문을 번역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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