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카르트의 합리론은 인간 이성이 세계에 대한 확실한 지식을 준다고 장담한다. 영국의 경험론은 관찰과 경험에 기초한 과학이 세계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알려준다고 보았다. 그런데 경험론을 가장 철저하게 밀고 나갔던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이런 장미빛 전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는 인간지성에 대한 탐구를 통하여 이성은 물론 경험도 확실한 기반은 아니라고 했다. 경험도 틀릴 수 있고, 인과법칙도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칸트가 《순수이성비판》을 쓰게 된 계기를 마련한 흄의 회의주의적 경험론
이성과 경험은 과학의 발전과 학문의 발전에 토대였는데, 데이비드 흄으로 말미암아 근대 과학의 철학적 토대가 흔들리게 되었다. 칸트는 흄으로부터 이성중심의 독단의 잠에서 깨어나, 합리론과경험론을 종합하여 11년 동안 고민한 결과 51세의 나이인 1781년에 《순수이성비판》을 썼다. 이 책은 800쪽에 달하는데 5개월 만에 썼다고 한다.
흄, 가장 철저한 경험주의 근대철학자
흄을 배제하고는 현대철학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흄은 회의론과 경험주의를 철저하게 밀고 나갔다. 그는 가장 철저한 경험주의자이다. 그는 전통적인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직관에 대한 호소와 경험을 신뢰하며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철학에 적용하였다. 흄은 이성보다는 감정을 더 중요시하였고, 기존에 천대받았던 정념이라는 개념을 새로운 윤리적 주체로 만들었다. 흄은 합리주의의 본유사상을 부인하며 철저히 경험을 통하여 인상을 가질 수 있는 것만을 인정했다. 실체를 부정했고, 신개념을 부정했고, 인과관계를 부정해서 과학의 철학적 기반을 무너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