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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Sep 19. 2024

나도 여자랍니다

2월: 시샘달

        여자에서 엄마로, 남자에서 아빠로

                                          2부




행복한 부부에게 소중한 축복이 찾아온 것도 잠시.

부부는 그 행복한 속에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위기의 순간들을 맞이한다.

둘이서 함께 할 때는 행복하기만 했던 부부가, 육아가 더해지며 다양한 이유로 힘들어하고 또 상처받기도 한다.

그중 나에게 찾아온 위기는 바로 ‘변해버린 나를 누가 사랑해 주나’였다.




                 육아의 서막이 열리다



육아의 진짜 시작은 천국(조리원)에서 천사를 집으로 데려온 순간이었다.

축복이 찾아온 그 순간부터, 예비 부모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준비했을 것이다. 주변 지인의 경험담을 통해, 또는 각종 서적, 블로그, 맘카페 등 그 방법은 다르지만, 전하는 내용은 하나같이 ‘쉽지 않다 ‘는 결론이었다. 이에 예비부부들은 어느 정도 예상하고 비장한 각오로 육아의 서막을 시작한다. 그러나 그 각오가 얼마나 비장했든지 상관없이 현실은 정말 그 상상의 이상이었다.


우리 부부가 처음 직면한 육아로 인한 위기는 바로
‘기본적인 인권-의식주’에 대한 갈망이었다.


우리의 옷은 항상 토냄새와 얼룩들로 범벅되어 있었다. 옷을 갈아입을 여유도 없었지만, 급하게 갈아입더라도 그 깨끗함은 채 몇 분을 넘기지 못했다.

또한 밥을 정해진 시간에 먹는 건 상상할 수 없었다. 아이가 잠을 자는 시간이 우리의 식사 시간이었으며, 그 마저도 10분 이상 여유롭게 먹을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아이가 장착한다는 ‘등센서’ 이야기 또한 우리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이 등센서가 장착된 아이는 아이를 내려놓기만 하면 다시 들어 올리라고 울었다. 잠도 한동안은 쉽게 허락되지 않았다. 아이는 부모가 강인함을 배울 수 있도록 아주 일정한 간격으로 (보통은 2-3시간) 열심히 울면서 깨운다.


뿐만 아니었다. 가장 최악은 화장실도 생체신호보다는 아이의 허락에 의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엄마의 목소리, 엄마의 품이 아니면, 사이렌소리보다 무서운 아이의 울음소리가 시작되기 때문에, 아예 아이를 안고서 화장실을 간다고 하는 부모 이야기가 남일 같지가 않았다.

우리 부부는 이런 극한 상황 속에서 더욱 서로에게 의지하며 배려했지만, 그래도 우리 둘이서 감당하기엔 턱없이 어려운 존재였다. 아이의 울음소리와 함께 찾아온 수면부족은 시간이 지날수록 극한 예민함으로 다가왔고, 평등한 우리 부부에게서 아이의 비위를 맞추기 위한 눈치 게임이 시작되었다.




              거울 속의 낯선 여자



그러는 동안, 나에게는 육체적으로도 적지 않은 변화가 찾아왔다. 아이를 종일 안고 있어서일까 나의 손목은 너덜너덜해졌고, 꼿꼿했던 나의 허리는 어느새 곱등이처럼 쭈그러지고 있었다. 뼛속에 차가운 공기가 주입된 것처럼 온몸이 시리기도 하였다. 그 와중에 헝클어진 내 머리카락은 감을 때마다 솜뭉치처럼 빠졌다.

이 시기엔 수면의 주기 또한 선택권이 없었기에 낮에는 비몽사몽으로 아이의 눈치를 보고, 밤에는 불면증에 시달리며 온갖 잡생각이 들었는데, 어느 날엔 우리 집안에서 처음으로 ‘여자 대머리’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에 잠을 설치기도 하였다.


그렇게 격변의 시기를 겪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거울 볼 시간도 없던 나날이 끝나가던 날 나는 우연히 거울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낯선 사람이 서있었다. 누더기 같은 임산부 티셔츠에 축 늘어진 뱃살, 헝클어진 머리, 거울 속에는 내가 알고 있던 내 모습이 아닌, 낯설고 못난 여자가 있었다. 엉망이 되어 버린 나의 외모에 나는 너무 속상했고, 많이 우울했다. 밖에 나가기도 싫었고, 거울도 보기도 싫었으며, 더 이상 내 핸드폰의 사진첩에 내 사진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이건 비단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적지 않은 여성들이 임신 동안 찐 살을 빼지 못하거나 또는 망가진 몸-체격 고갈, 피부 트러블, 골반 틀어짐, 허리 아픔, 탈모 또는 수술로 인한 배의 상처 등 자기의 모습에 많이 실망하곤 한다. 몸무게는 임신 전으로 돌아오더라도 체형이 바뀌어 입을 수 없는 작아진 옷들을 붙들고 한 번쯤 슬픔에 잠겨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변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



나 또한, 임신 중 살이 많이 찐 편이다. 아이를 키우며 고생하면 빠진다고들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고생은 정말 많이 했는데, 살은 정말 딱 아기 몸무게만큼만 빠졌으니까.


이런 위기 속에서 나를 웃게 해 준 두 남자가 있었으니,


그 첫 번째 남자는 나의 신체변화에 대한 고통을 함께 이해하려고 노력하였다. 내가 살이 찐 만큼 함께 살을 찌웠으며, 출산 후에도 들어가지 않는 배를 보며 우울해할 때마다 나보다 더 큰 배를 내밀며 내가 더 날씬하다고 말해주었다. 무리하게 살 빼지 말라고, 대신 본인도 직접 살을 찌워 내가 날씬해 보일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나를 설득했다. 나는 여전히 그 말에 현혹되고 있지만, 언젠가는 우리가 함께 건강하게 다이어트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또 한 명의 남자는 ‘비나리’였다.


예로부터 갓 말이 트인 아이의 즉흥적인 답변에는 진실이 깃들어 있다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생기지도 않은 동생의 유무라든지, 엄마 뱃속의 아이 성별에 대해 물어보면 첫마디로 대답하는 말 등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살포시 기대를 하고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살을 뺄 수 있는지. 이 당시 아이는 대부분의 말에 “응!”이라고 대답했기에 이날도 긍정적인 답변을 들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 비나리’는 생각지도 못한 창조적인 말로 나를 웃게 해 주었다.


“나의 사랑하는 비나리야, 엄마 살 뺄 수 있어?”


그런데 아이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아냐, 살 뺄 수 업떠”

“왜?????”

“살 뺄 수는 집에가떠“

”…….“ 


잠시의 정적 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한참을 웃었다.


비나리가 이해한 ‘살 뺄 수’의 의미가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쩌면 엉망이 되어버린 건 변해버린 나의 외모가 아니라 힘든 현재의 상황 속에 한없이 흔들이는 내 마음이 아니었을까. 호르몬의 영향도 육아의 스트레스도 시간이 흐르며 모든 상황이 좋아졌다. 나를 사랑하지 못했던 내게도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것이다.

그렇게 나는 다시 나를 여자로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게 되었다.


너의 눈에 비친 나의 모습은
언제나 아름답다.
왜냐하면
내가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엄마

p.s. 나(내)와 너를 바꿔서 다시 읽어보세요.


- 비나리의 육아일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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