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이 어둡다.
6시, 솜털 보송보송한 강아지풀이지만 새벽이라고 해두자.
바지는 엉덩이 걸림 없이 날뛰라고 통이 펑퍼짐한 것으로.
노트북 가방과 세면도구 실내화를 담은 쇼핑백을 앞세우고 나간다.
6시 40분, 태풍 지난 잔물결.
몸에 힘 쭉 빼고 흐르는 대로 흘러 흘러 벌써 학교.
빳빳한 신발에 여린 내 발 쭈뼛쭈뼛 오르는 교무실 깜깜.
여기서도 1등이여.
뻘쭘하게 서 있는 날 보고 가르쳐준 비밀번호.
배를 보면 교육감 풍채 샘 007 빵#이라나.
모양 떨어지게 수학책을 펴놓을 수는 없고, 가사 시조집 뒤적이는데
창문을 연다, 불을 켠다, 커피를 내린다
부산을 떠는 교육정보부장님 고봉으로 주신 뜨거운 커피로 속을 긁는다.
시간은 입대 후 받은 첫 휴가처럼 잘도 간다.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한 여선생님들
전화기로 아이들에게 지령을 날린다, 이스라엘 사령관처럼
10여 명의 아이들이 머리 긴 아이들 한 줄, 코밑이 검은 놈들 한 줄로 띄엄띄엄
슬리퍼 운동화 마음 내키는 대로
생활복 교복 몸에 맞는 대로
수능준비반, 자기 주도적 학습실이 있다고 했다.
차차 알 일이지만 조바심은 내지 않기로 한다.
“안녕하세요.
처음 본 사람이 왔죠?
백 선생님이 아프셔서 3주 동안 저와 함께합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아 스스로 잘할 것이니 방해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절대로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대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질문 있는 사람을 살짝 도움으로 바꾸었다.
어떤 문제인지 세상의 문제를 다 알 자신이 없어서다.
경계의 눈초리들이 스르륵 풀리면서 여유로워졌다.
분단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교탁 앞만 어슬렁거리며 가사 시조집에 눈을 던진다.
운동장에서 건너온 아우성, 끈적한 가을 햇볕
은하수를 건너는 반달처럼 눈은 반만 뜨고 귀도 반만 열고 졸 듯 노닌다.
예고편 영화처럼 휙 지나가는 시간
반마다 분위가 조금씩 다른 이유는 뭘까?
시작종과 끝종소리는 반드시 교실에서 들어야 한다고 돈보스코께서 말씀하셨지.
말 끝나기 무섭게 화장실 간다는 놈, 또 한 놈.
흙담에서 내려온 호박처럼 고개를 누인 여인 둘.
일단 지켜보자.
그래도 태종대 몽돌해수욕장 몽돌처럼 반질반질 한 아이들이 더 많으니.
책장 넘기는 소리 갈지자로 걷는 볼펜 발소리 눈알 구르는 소리
시조집에 먹먹한 눈 들어 밖을 본다.
거기에 바다가 있었으면
수평선 너머로 달려가는 뱃고동 소리가 있었으면
어묵 칼국수 찰밥에 돌김가루 열무김치 양배추 샐러드
자연과학부장 따라 간 2층 급식실
가자미 눈으로 칸에 맞게 음식을 담고
새우 눈으로 콕콕 집어 먹는다 남김없이
한 것도 없는데 배는 고프니
눈칫밥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안 차는 것인가 보다.
소담길 따라 학교 한 바퀴
스카이대학 떨어지듯이 낙엽은 잘도 떨어지네.
부담되는지 졸리지도 않네.
수업이 끝나면 언제든지 가시면 된단다.
끝나는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싶은데, 가라면 말 잘 들어야지.
읽는 책을 두어 권 준비해야겠다.
내일은 시험이라니 바짝 긴장해야겠다.
수월한 도로.
훤한 길이라 라디오 빵빵하게 틀고 흥얼흥얼 집으로 오는 길.
일하고 들어온 가장을 위해 사열하듯 죽 늘어선 식구들.
신김치에 두부 잔뜩 넣고 김치찌개를 끓인다네.
어깨에 힘 좀 줘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