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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Jun 04. 2024

끗발

2024.05.23. 목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1층을 누르니 문이 닫힌다.

꽃향기가 가득하다.

꽃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었나 보다.

시큼한 노인 냄새가 겁이 나 틈만 나면 씻는다.

되도록 동작도 작게 한다.

펄럭이면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올 것 같아.

익는 냄새라지만 유쾌하지는 않다.

별 걸 다 걱정해야 하는 어중간한 생 늙은이는 힘들다.  

   

진공청소기가 새벽부터 울고 있다.

“운동장만 청소하는 줄 알았는데, 계단도 하는가?

누가 시켰는가 보네?"

오랫동안 안전지킴이로 계셨던 어르신은 고개를 갸웃한다.

그러고 보니 제일 먼저 출근하는 내가 처음 듣는 소리이니.

같은 신세끼리는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인가 보다.

농부들이 초저녁 하늘 깨지는 소리를 듣고 내일 비가 오려나 생각하듯이.

내 주변으로 오는 소리는 빨리도 알아채는 법.     


심각한 표정으로 효정이가 들어온다.

”오늘도 앞머리가 문제야? “

”아니요, 머리는 문제가 아니고 얼굴이 꽝이잖아요. “

”무슨 소리야, 귀엽고 예쁜데. “

녀석은 아침부터 풀이 죽었다.

곧 반 대항 축구와 피구 시합이 있는데, 축구선수로 나가고 싶단다.

축구는 다리만 조금 다치면 되는데, 피구는 손가락이 부러질 수도 있겠단다.

직업 체험 프로그램을 아빠가 4차 산업 같은 재미없는 것만 시켜서 졸고 오겠다 한다.

칵테일 만들기나 꽃꽂이 같은 것을 해보고 싶은데.

자전거 타고 등교하는 것도 그렇고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식을 풀라면 아무리 많아도 빨리 해결할 수 있는데, 실생활 활용 문제라며 식을 만들라고 하면 도저히 손댈 수가 없다나.

선생님들이 왜 그런 것을 시험문제로 내는지 알겠단다.

참새처럼 조잘대다가 유승이가 오니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참 때 묻지 않은 섬 머슴아 같은 아이다. 

이 아이와 만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가슴 한 칸이 서늘해진다.    

 

시간, 거리, 속력에 관한 문제.

욕조에 다른 수도꼭지로 물을 채우는 문제.

고3까지 20번도 넘게 괴롭힐 문제를 열심히 설명한다.

곧 떠날 선생님은 끗발도 떨어졌나.

통 들어먹지를 않아 목만 아프다.

인상을 찌푸리며 애처롭게 봐주는 공주 몇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다.     

교육청의 구인, 구직란이 한가하다.

갑자기 사고가 생기지 않는다는 이야기.

좋은 일이지.

모처럼 쉬는 시간을 가질 수도 있겠다.

그럼, 어디를 털어볼까?

주변 산, 서울 성곽길, 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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