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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Aug 10. 2024

마무리 준비

2024.06.20. 목

<마무리 준비>    


엄마가 따로 없네.

유난히 오늘 빨리 학교에 온 연구부장님, 사서 선생님이 커피를 내리고 따뜻한 빵을 준비해 놓는 모습을 보고야 말았다.

이제야 산타 같은 고마우신 분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이다. 

뒤늦게 도착한 선생님들에게 이 기쁜 소식을 물어 나른다.

세상에 그 수많은 날 드시면서도 몰랐단 말인가?

사실 각 자리에 있는 컵까지 씻어놓고 있는데. 

아! 시원하다, 화통한 혁신 부장님 납시오.

내가 한 신간 전에 와 에어컨을 틀고 교무실 공기를 식혔다는 것은 모르시지요.

사서 선생님과 나만 아는 비밀.

그냥 좋아서, 알려지는 것이 더 쑥스러운 오골계 같은 누나와 동생.

나중에 나중에 그냥 따뜻한 바람이었다고 느껴주었으면 하는.....   

  

“이놈의 새끼가 밤에 전화가 왔어요. 도저히 억울해서 집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억울한 것은, 내일 학교에 가서 이야기하자고 달래느라 혼났다니까요.”

2반 담임 선생님이다.

아이가 불려 온다.

축구하다 시비가 붙었다.

휴대폰으로 등을 너무 세게 맞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한 대 때렸다.

신고하겠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는데, 사실 원인은 그 녀석이 제공한 것 아니냐.

평소에도 자꾸 심하게 장난을 친다.

이번에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의견이 팽팽하다.

평생 안 보고 살 것이냐며 어르고 달래고.

쫙 깔리는 중저음의 목소리, 똑 떨어지는 논리.

바로 꼬리를 내리는 녀석들, 와! 완전 여전사다.    

 

마지막 수업. 1반.

바람에 돛단 듯 열심히 미끄러진다.

활용 문제까지 다 풀고 나서도 10여 분이 남는다.

기념사진을 찍는다.

보충 문제 한 장을 나누어주니 한 일주일 굶은 녀석들처럼 허겁지겁 먹는다.

방향 잃은 눈빛은 다 어디로 갔어?

사피라와 러시아 천사는 한국말이 더 터져야 될 듯하다.

진즉 시험을 한 번 볼걸?  

   

일주일에 한 시간짜리, 2학년 3반.

연립방정식 문제를 세 개 푼다. 활용을 포함해서.

저번에 삐진 녀석을 어떻게 달래 줄까나 고민했는데,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

녀석은 저렇게 태평한데, 나만 끙끙 앓았네.

거리 속력 시간 문제까지 다루고는 있는데, 저 끄떡이는 고개를 믿어야 하나? 믿을 수 있나?

15분이 남고 한 문제 더 할까를 물었더니 고 녀석이 그만하잔다.

그래 그 요구를 들어주는 것으로 있었던 앙금 깨끗이 풀자.


중국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낄낄거리고 있다.

러시아 아이들은 혀 구르는 소리가 현란한 말로 또 히히덕.

조용히 물었다.

상대방 나라의 말로는 대화가 안 되느냐고?

욕은 알아먹는데, 대화는 모두 한국말로 한다나.

와 이거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한국말로 통일이 이루어진다니.     


이제 남은 내일 두 시간.

짐도 조금씩 가져가고 있다.

열심히 도서관을 들락거린 덕으로 시 필사는 많이 해두었다.

두고두고 나누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 선물 주머니를 두둑하니 채웠다.

시간이 나는 대로 다시 내놓고 곰곰 씹어볼 참이다.

내일은 몇 녀석들에게 엽서라도 써 볼까나.

자칭 1학년에 제일 유명하다는 성진이, 가끔 천재성을 발휘하는.

이쁜이 사피라.

칸의 후예 다니엘.

완전 모범생 수연이.

또 마음이 바빠진다.

시간이 너무 빨리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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