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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주 Aug 10. 2024

주고받고

2024.06.24. 월

<주고 받고>

     

꾸무럭한 날씨. 

장마전선이 오르내리면서 장대비를 뿌린단다.

후덥지근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덤으로 가는 학교 길.

안산역 앞 지하도 계단 맨 위 칸.

헉헉거리며 올라오다 고개를 들면 바로 눈이 마주치는.

전철에서 내려 지하도로 내려가다 보면 제일 먼저 보이는.

종이 상자로 해를 가리고 앙상한 발에 양말도 없이.

지나가는 사람이 던지는 동전들 수금을 하느라 일찍도 나오셨다.

깊은 눈에 그늘이 가득한 할아버지.

어려운 외국인들 주머니를 겨냥한 저 끈기.

비 오기 전에 수금을 모두 마쳐야겠다는 각오다.   

  

책상에 넓게 펼쳐진 1반부터 4반까지 아이들이 써놓은 감사의 글 판.

편지지를 담고 오며 출근 내내 어떻게 할지를 궁리했건만.

이제 꼼짝할 수 없이 모두에게 써야 한다.

나도 모르게 제일 정이 갔던 1반 아이들이 또 제일 구구절절 구애의 글을 남겼다.

사랑은 한쪽으로 기우는 시소가 아니다.

넘쳐서 무작정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 있어 주는 것.

함께 써가는 인사며 고백이다.   

  

범계중 교감 선생님의 전화.

평촌역 근방 부안중에서 방학까지 수업을 해주실 선생님이 필요하시다고.

같은 실에 계셨던 최 선생님도 본인이 파견 나가는 학교란다.

가실 수 있느냐며 급한 부름이다.

고맙고도 고마운 알뜰하게 챙겨주신 마음.

어쩌나 일요일부터 몽골로 떠나야 하는 일정이 있어.

감사하고 또 감사하지만, 선의를 받을 수가 없어 너무 죄송하다.

주변의 도움으로 이제는 먼 산 바라볼 일은 없을 듯하다.

너무 바쁘면 어떻게 하지?

또 김칫국 먼저 마시기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나는 뻘쭘한데 아이들은 전혀 미동도 없다.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했네.


두 번째 수행평가문제지를 나누어주고, 푸는 모습과 평상시의 태도를 종합해서 몇 자를 수첩에 옮긴다.

모든 아이에게 편지를 쓰려면 씨 낱말이 있어야 하니.     

알랙이 붙들려 왔다.

사피라에게 돼지라고 그것도 두 번씩이나 놀렸단다.

사피라는 울고불고.

장난이었다나, 러시아의 나쁜 남자 버릇이라고 할까?

본인은 장난, 상대는 상처라며 진심으로 사과하라는 선생님.

사피라는 사과를 받을 생각이 없단다.

할 수 없이 면벽하며 죄의 대가를 치르는 알랙.

녀석의 눈빛은 왜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은 듯.

이놈아!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라야 하느니라.

세상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모르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일찍 혼나고, 속 차리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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