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의 조건(2)

인간을 '인격'으로 본다는 것에 대하여 - 시작이 되었던 하나의 질문

by 바람결

‘관계’가 무너질 때, 비극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얼마 전, 한 청년의 죽음을 둘러싼 기사를 읽었다.

‘런던베이글뮤지엄’이라는 유명한 베이커리에서 일하던 직원이었다.
하루 열두 시간 이상씩 주당 80시간 가까이 일한 것으로 추정되었고,

어느 새벽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었다.
유가족(지금은 상황이 또 달라졌으나)과 여론은

그것을 과로사라 불렀고, 회사는 그가 과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양쪽의 말이 오갔지만 이미 한 사람의 생은 이 세상에 없었다.

얼마 전 이 브런치에 내가 쓴 글,

[관계의 조건]이라는 대 제목의 글은, 뉴스를 읽으며 떠올린 생각이었다.


‘인간을 인격으로 보는가, 아니면 대상으로 보는가.’
나를 제외한 타인을 단지 내 세계 안의 ‘오브젝트’로 바라볼 때
모든 비극이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살갗이 아파 올 만큼 날카로운 생각이었다.


기업이 직원을 ‘인격체’로 본다면,
그 사람의 몸과 마음, 시간과 삶 전체가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가 단지 생산성과 효율을 위한 ‘대상’으로 여겨질 때,
직원은 더 이상 사람일 필요가 없다.
단순히 매출과 일정,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존재하는 기계의 부속품이 된다.
그의 피로는 데이터가 되고, 그의 고통은 ‘노동력 손실’이라는 숫자로 환산된다.

우리는 종종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 챙길 수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그것은 변명이다.

사람이 많을수록, 시스템은 인간의 존엄을 더 철저히 지켜야 한다.

아니, 그것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시스템이다.
조직의 역할이고, 사회의 책임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다루는 사회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그 안에서 누군가가 무너질 때, 우리는 늘 이렇게 말한다.
“안타깝다”, “유감이다.”
하지만 그 유감의 반복이 끝없이 이어질 때,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구조임을 깨달아야 한다.


관계는 결국 ‘인정’에서 출발한다고.
상대를 인격으로 인정하는 것,
그의 세상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는 걸 아는 것.
그 인식이 없을 때, 관계는 일방적 소비로 변한다.
이 사회가 개인을 소모하고,
조직이 직원을 소모하고,
소비자가 사람을 소모하는 일련의 구조는 모두 같은 자리에서 시작된다.


‘대상화’란, 결국 관계의 부재다.
상대의 세상을 보지 않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세계를 가진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그냥, 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재료가 된다.
버티지 못하고 부서졌을 때에는, 많은 이들이 불편해하고, 잠시 분노하다가, 곧 잊는다.

이제는 그런 잊음의 순환을 끊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지금 맞닥뜨린 수많은 사회적 문제들 —
과로, 폭력, 혐오, 차별, 불평등 —
그 모든 것은 결국 ‘대상으로 본 인간들’의 이야기다.


한 사람의 노동, 한 사람의 생명,
한 사람의 피로와 절망이 ‘개인적인 문제’로만 치부되는 사회라면
우리는 이미 관계를 잃은 것이다.
관계가 사라진 곳에서, 인격은 설 자리가 없다.


다시 물어보고 싶다.
나는 내 곁의 사람들을 인격으로 보고 있을까,
아니면 내 세상 속, 움직이는 대상들로 보고 있을까?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수많은 문제는,
결국 이 질문에서부터 출발하는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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