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련된 선과 둥근 볼륨 사이에서 — 나의 케이크 미학

먹는 것만 할 줄 아는 사람의 빵 취향에 관한 (1)

by 바람결

사실 나는 케이크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부드럽기만 해서 씹을 필요도 없는 시트에 진득한 시럽을 적시고, 그 사이를 달콤한 스프레드로 채운 것.
겉은 매끄럽게 지방으로 코팅된, 뭉근한 볼륨의 디저트.
이런 류를 즐기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동경하는 케이크’, 케이크는 원래 이래야 한다고 믿는 케이크는 분명 존재한다.
고양이처럼 날렵하고 요염하며, 세단처럼 정확한 선이 살아 있는 케이크.

단면은 칼날처럼 똑 떨어지고, 레이어는 밀리미터 단위로 일정하며, 장식은 필요 이상으로 부풀지 않아야 한다.
그런 케이크가 베이커리의 쇼케이스에 놓여 있으면,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잠시 시선을 빼앗길 만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나는 케이크가 인간 문명이 만든 정교한 디저트의 최종 형태라고 믿는다.
크림과 시트가 만들어내는 선(line)은 마치 초고층 빌딩의 골조처럼 고요하고 긴장감 있게 서 있어야 하고,
디테일은 고양이의 실루엣처럼 유려하되 흐트러지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요즘의 케이크들은 ‘머슬카’를 닮았다.
최근 SNS를 가득 채우는 ‘케이크’라는 것들을 보면, 내가 오래 동경해온 미학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에 서 있는 느낌이다.

딸기는 꼭지가 떼어지지도 않은 채 통째로 던져져 있고,
크럼블은 오븐에서 나온 그대로 덩어리째 툭 얹히고,
크림은 선을 만들기보다는 육중한 부피와 과잉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조각 케이크라고 부르지만, 그것들은 ‘홀 케이크에서 잘려 나온 형태’가 아니라
처음부터 볼드하고 러프한 하나의 오브젝트처럼 보인다.
한눈에 확 들어오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정교함보다 ‘과도함’이 먼저 보인다.


나는 절제를 동경한다.
특히 케이크에서만큼은 더 그렇다.

케이크가 정교함을 잃는 순간,
그건 내가 사랑하는 디저트의 세계에서 벗어난다.
레이어는 일정해야 하고, 본질을 상하게 하지 않을 선에서만 장식과 볼륨이 더해져야 한다.
과일은 통째로 얹히기보다, 사람의 손길이 거친 부분을 정제한 형태로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절제된 케이크는 한 입을 들이기 전에도 이미 ‘미적 긴장’을 품는다.
정확성과 균형의 미학을.


반대로, 러프함이나 과감한 부피감은
파이, 스콘, 브라우니처럼 원래 그런 결을 가진 디저트에서 충분히 제 몫을 한다.
굳이 케이크에게까지 그 ‘거친 멋’을 강요할 필요는 없다.

케이크에는 케이크만의 언어가 있다.
그 언어는 선, 예리함, 절제, 균형이다.
이 질서를 잃어버리는 순간, 케이크는 더 이상 케이크라는 정체성을 잃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케이크를 먹는다면
세단처럼 균형 잡힌 조각케이크를 고른다.

오페라의 얇고 일정한 레이어.
프레이지에의 군더더기 없는 구성.
이들은 과하지 않은 방식으로 케이크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


케이크는 결국 하나의 작은 건축물이다.
단맛보다 형태의 설득력이 먼저 와 닿아야 하고,
풍성함보다 정확성이 먼저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 정교함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얄쌍하고 단아한 접시에 올려 디저트 포크로 조금씩 맛보는, 그런 여리여리한 케이크를 좋아한다.

한 손으로 덥석 쥐어 들 수 있는 묵직한 볼륨의 '머슬' 케이크가 아니라,
손끝으로 다루지 않으면 깨져버릴 것 같은 섬세함을 가진 케이크.
그 섬세함 속에서 비로소 케이크라는 디저트의 미학이 완성된다고 믿는다.


나는 케이크가 여전히
과잉의 힘이 아니라 정제된 긴장감으로 완성되는 디저트 건축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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