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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쌤 Nov 10. 2022

학교폭력 가해 학생의 학부모도 처벌할까?

우리 반 애들이 토론을 하는데 옆에서 깜짝 놀랐다.

우리 반은 오늘부터 국어 토론 단원에 들어갔다.


나는 이번 단원에 들어가면서 우선 애들한테 <토론과 토의의 차이가 뭔지>부터 물어봤다. "얘들아~ 토론과 토의의 차이가 혹시 뭔지 알고 있나요?"


그러자 역시 똘똘한 우리 반답게 여기저기서 자신 있게 대답하기 시작했다. "토론은 찬성, 반대가 나뉘는 거고, 토의는 한 가지 문제에 대해 함께 해결책을 찾아보는 거예요!"


생각보다 정답이 바로 나와서 놀랐다. 그러나 겉으로는 티 내지 않고 "오 맞습니다! 우리는 그럼 이번 단원에서 토의를 할까요, 토론을 할까요?"


토론이요!!!!!!!!!!!!!!!!!!!!!!!!!!!!!!!!


귀청 떨어지는 줄..ㅋㅋ 나는 이 텐션 높은 아이들과 토론을 시작하기 전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에 대해 설명했다.


"토론의 경우 찬성, 반대가 나뉘기 때문에 잘못하면 서로 공격적으로 이야기하며 싸움이 날 수 있어요. 우리 반이 토론하다가 싸움판이 되면 안 되잖아요? 그러므로 '너는 왜 그렇게 생각해-_-' 라면서 부정적으로 대화하기보단 '아~ 너는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는 이러이러한 근거 때문에 이렇게 생각해.'라고 이야기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또 나타난 '존중'과 '배려'라는 말.


하루에도 존중과 배려라는 단어를 열 번 이상씩은 말하게 되는 것 같다. 매일같이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여전히 늘 필요한 말이다.


"그럼 오늘 토론 수업에서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바랄게요. 따뜻하고 열린 마음으로 오늘 토론 수업을 시작해봅시다." 교과서를 펴고 수업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수업 종료 20분을 앞두고 우리 반에서 토론 실습을 해볼 시간이 됐다. 나는 네이버에 '초등 토론 주제'라고 검색해서 나왔던 것들을 말해주며 '이 중에 무엇으로 토론을 해볼까?'라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애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한 가지 주제를 선택하였다.


그건 바로,


<학교 폭력 가해 학생의 학부모도 함께 처벌하는 것에 찬성하는가?>라는 주제였다.


(속으로 너무 놀랐다. 이거 은근히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인데..?)


나는 겉으로는 놀란 티를 안내며 말했다. "오 ,, 좋은 토론 주제네요~! 그럼 지금부터 여자회장, 남자 회장이 앞에 나와서 토론을 진행해주세요. 친구들한테서 찬성, 반대의 의견을 번갈아 들어본 뒤 나중에 최종 투표를 해보는 식으로 진행하면 됩니다."


나는 요즘 학급 회장, 부회장이 진행하는 형식의 토의, 토론이나 학급 회의를 자주 열고 있다. 점점 자라나는 아이들.. 사춘기를 맞은 아이들에게 어른의 일방적인 의견 강요가 아니라 본인들 스스로 뭔갈 정해보도록 하는 습관을 들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학급 회장들한테 토론 진행을 깜짝으로 맡겨보았는데 역시 똘똘하고 야무진 아이들이라 당황하지 않고 능숙하게 나와서 토론을 열어주었다. (정말 놀라워~~!!)


"안녕하세요. 저희는 학급 회장 ooo, ooo입니다. 지금부터 학교 폭력 가해 학생의 학부모도 처벌할지에 대해 찬성, 반대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의견이 있으신 분은 손을 들어 말씀해주세요."


나는 즉석에서 토론을 시작한지라 솔직히 의견이 별로 없어도 감안하려고 했는데 완전 의외의 일이 일어났다.


끝내주게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애들이 진심으로 고민을 한 얼굴로 저마다 손을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각자 진심으로 이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


나는 처음엔 옆에서 토론하는 걸 지켜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아 이건 꼭 기록으로 남겨야겠다' 싶어서 아이들의 발언을 받아 적기 시작했다. 내가 받아 적은 건 다음과 같다.


(여기 쓰는 내용은 아이들의 발표 내용을 그대로 적은 것인데 단어 선택을 보면서 살짝 놀랄 수 있다. 아이들이 생각보다 아주 원색적이고, 직설적이고, 핵심을 찌르는 표현을 많이 했다.)


*참고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학부모도 처벌해야 한다: 찬성

학교폭력 가해학생의 학부모까지 처벌해선 안된다: 반대


학생 1: 저는 가해 학생의 학부모도 처벌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부모가 아이 교육을 잘못한 탓이기 때문입니다.

학생 2: 저는 학생 1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저희는 아직 어머니가 저희를 정성을 다해 키워주신 은혜도 못 갚았는데 어머니까지 힘들게 하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어느 순간 애들이 '학부모'라는 표현을 안 쓰고 '어머니'라는 표현을 씀.. 역시 주 양육자는 엄마인 것인가..?!)

학생 3: 저도 반대합니다. 엄마가 아이한테 신경을 안 쓴 게 아니라 엄마도 아이를 잘 모를 수 있습니다.

학생 4: 저는 찬성합니다. 학교폭력을 당하면 트라우마가 남아서 학교를 안 다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학생 5: 저는 학생 4의 의견에 반대합니다. 트라우마가 남아도 가해 학생이 사과해야지 부모님까지 처벌받는 건 좀 그렇습니다.

학생 6: 저는 찬성합니다. 어린이들한테는 학교 폭력을 했을 때 소년원에 보내는 조치를 취하는데 이건 처벌을 하는 게 아니고 교화를 시키려는 게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법적 책임은 부모님한테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어 선택이나 생각하는 것이 너무 어른스럽고 정교해서 놀람...;)

학생 7: 저는 반대합니다. 부모님이 아무리 말해도 아이가 말을 안 듣는 걸 수도 있으니 부모님까지 혼내는 건 좀 그렇습니다.

학생 8: 저는 찬성합니다. 부모가 아무리 아이가 말을 안 듣는다고 해도 딱 맘을 먹고 아이 맞춤으로 계속 노력하면 아이는 결국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부모 잘못입니다.

(세상에.. 표현이 어쩜 저리... 말하는 게 너무 영특해서 놀라웠다.)

학생 9: 저는 반대합니다. oo님께서는 부모님이 아이를 잘 안다고 하셨는데 솔직히 아이가 말 안 하면 모릅니다.

(갑자기 서로 oo님이라고 부르는 거 웃겼다 ㅋㅋㅋㅋㅋㅋㅋ 시키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토론에선 서로 예의 갖춤...ㅋㅋㅋㅋㅋ)

학생 10: 저는 찬성합니다. oo님은 아이가 말 안 하면 부모가 학교생활을 모른다고 했는데 그건 무책임한 겁니다.

학생 11: 저도 찬성합니다. 부모가 이상하게 가르치면 아이도 이상하게 크기 때문에 부모도 처벌해야 합니다.

(라임이...ㅋㅋ 그리고 '부모'라고 표현하는 것도 좀 놀라웠다...)

학생 12: 저는 반대입니다. 아이가 학교에서만 나쁘게 하고 부모님 앞에서는 착한 척을 할 수도 있으니까 아이만 교육을 잘 시키면 됩니다.

학생 13: 저는 찬성입니다. 학교에서 폭력이 일어나면 선생님이 부모님한테 전화를 하기 때문에 모를 수 없어서 어머니가 아이 교육을 잘 시켜야 합니다.


나는 아이들이 숨 막히게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어느 순간 모두가 비장해져 있었고, 진심으로 이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진심으로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수업이 잘 되면 애들한테 이렇게 딜(?)이 잘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럴 때 나는 형용할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내가 제대로 수업했구나~~!!!!!)


회장은 치열했던 투표를 마무리하며 말했다. "이제 최종 투표를 하겠습니다. 생각할 시간 10초를 드리겠습니다. 10초 뒤 찬성이나 반대에 손을 들어주세요."


애들은 언제나 그렇듯 눈을 감고 10초를 세었다. 열두 살이나 되었는데도 아직도 눈을 질끈 감고 생각하는 걸 보면 아기 같다.


최종 투표 결과는?!

.

.


결국 최종 투표는 찬성 16명, 반대는 8명으로 학교 폭력 가해 학생의 학부모까지 처벌하는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최종 투표가 끝나자마자 쉬는 시간 종이 쳐서 애들은 언제 그렇게 심각했냐는 듯 바로 웃으며 보드게임을 펼쳐놓고 놀기 시작하였다.


놀 땐 놀고 집중할 땐 집중하는 멋진 우리 반 오늘 진짜 최고였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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