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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희쌤 Oct 25. 2023

인간적으로 통합학급은 수당 더 주자....

아침부터 보결 들어가라는 메시지가 왔다.


작년 고학년 담임을 할 때보다 올해 오히려 늘어난 수업 시수 때문에 지쳐있던 찰나,


그나마 오늘은 교과 시간이 1시간 있다며 좋아하고 있었는데 순간 엄청나게 슬퍼졌다.


우리 반 1시간 가르치는 것보다 정확하게 10배 힘든 보결...


함께 한 번도 호흡을 맞춰본 적 없는 생판 처음 본 아이들과 수업하는 건 정말 너무 힘든 일이다.


서로 준비된 약속이나 쌓아놓은 배경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다 보니

수업 시간을 그냥 지식 전달 위주로 보내게 되는데


솔직히 아무 의미 없이 느껴진다.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과 지식을 초월해서 진정한 인간관계를 쌓아나간다는 느낌이 들어 참 좋은데


보결은 지식 전달 위주이면서도 소통이 잘 안 되어 따로 노는 느낌이다.


마치 덜 익은 떡볶이 같다고 해야 하나.


열심히 양념을 넣고 볶는데 떡이 익지 않아 둥둥 떠다니고 먹으면 맹숭맹숭 니맛도 내 맛도 아니다.

 

그저 겉으로 봤을 때 번지르르한 떡볶이의 모양새를 갖췄을 뿐이다.


보결도 물리적으로 1시간을 교사가 때워준다는 느낌으로 진행되지


실제로 제대로 된 수업을 진행하진 못하는 느낌이다.


이름도 전혀 모르는 아이들과 어중이떠중이로 1시간을 수업하고 나면 내 손에 떨어지는 15000원.


요즘 물가에 딱 한 끼 정도 멀쩡한 식사를 할 수 있는 금액이다.


(솔직히 말하면 요즘 1인분 값도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종로 이문설렁탕은 국밥 한 그릇이 19000원임)


차라리 그 만오천 원 안 받고,


그 시간에 수업 준비 더 해서


우리 반 애들과 더 깊고 가치 있는 수업을 해내는 것이 내겐 더 중요하다.


학교에서는 요즘 강사 구하기 힘들다며 툭하면 보결로 1~5교시를 다 채워버리는데

아이들 입장에서도 이건 학대 아닌가 싶다.


1교시 oo샘

2교시 xx샘

3교시 %%샘

4교시 **샘

5교시 ++샘


이건 좀 아니잖아 인간적으로;;;;


아무튼 이번에 보결 들어간 반은 통합 학급이었는데


1시간 통합학급을 경험해 보고 난 완전히 뻗어버리고 말았다.


지금까지 9년 동안 한 번도 통합학급 담임을 해본 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통합학급은 수당을 더 줘야 한다>는 주장에 강력히 힘을 실어주고 싶어졌다.


통합학급은 특수 아이와 일반 아이들이 함께 수업하는 학급을 말한다.


특수 아이 부모가 통합을 원하면 학교에서는 통합 학급을 운영해야 한다.


통합 학급을 원하는 부모의 마음도 이해가 가지만.........................


솔직히 통합 학급 보결을 이번에 들어가 보고 느낀 점은,,,,,


정말 다른 아이들이 너무너무너무 x999 불쌍했다는 점이다....ㅠㅠㅠ.....


아니 쓰면서도 정말 조심스럽긴 한데... 다른 아이들이 너무 불쌍했다.


특수 아이가 1시간 수업하는 동안에도 혼자 갑자기 울면서 비명 지르고,

갑자기 교실 앞에 나와서 질문 세례하고,

그러다 돌연 나한테 소리 지르면서 화내고,

그러다가 갑자기 옆의 아이한테 가위 빌려달라고 계속 말 걸고 하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런 특수 아이를 처음 맡아본지라 수업을 하면서도 자꾸 집중이 안 되어 허둥지둥했다.


오히려 다른 아이들이 침착했다.


매일 반복되는 일이라 그런지 철저하게 무시하거나,


자연스럽게 말을 받아주며 대꾸해 주는데 정말 아이들이지만 존경스러우면서도 짠했다.


대체적으로 수업 진행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중간중간 특수 아이의 돌발 행동 때문에 흐름이 끊어지고,


또 흐름이 끊어진 순간마다 같이 집중력이 흐트러진 몇몇 아이들이 함께 날뛰다 보니(?)


1시간이 10시간 같았다.


아노미 상태였다.


(보결하는 내내 우리 반 아이들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간절히 보고 싶었음...)


온 기가 다 빠진 채 1시간이 흐르고.....


교실로 돌아와서 우리 반 아이들을 만나니 긴장이 다 풀리며 눈물이 핑 돌았다.


통합 학급은 정말 수당 더 줘야 한다.......


만약 이 주장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이 통합학급 담임을 맡아봐야 한다.


정말 최고 난도다.....


평소 사주에서도 자식복이 많다는 얘기를 들어서 그런지

학교에서 맡는 아이들 복도 많은 편인데


이번 보결은 역대급 극한 체험이었다........


통합학급 수당 더 주자 인간적으로 ㅠㅠ


https://youtube.com/@laheeteac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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