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준비, 액션 그리고 반응
2. 기억에 감사하라 (p210 ~ p212)
일반적인 경험에 비해 감정이 개입된 경험이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다. 또한 감정적 경험은 그에 따른 죄책감 때문에 특별한 '꼬리표'를 얻는다. 따라서 그런 경험은 머릿속에 영구 회로처럼 새겨진다. 내가 당신에게 이 년 전 오늘 아침식사로 무엇을 먹었느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날 당신 아내가 첫 아기를 임신했다고 당신에게 말했다면,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똑같이 2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후자의 사건에는 강렬한 감정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1.2미터 거리의 퍼팅은 약간 까다롭기는 하지만 큰 감정이 개입될 만한 사건이 아니다. 하지만 그 거리의 퍼트를 실패한다면 대부분의 골퍼는 화를 내거나 실망의 한숨을 내쉰다. 이런 감정적 반응은 기억에 강렬하게 기록된다. 즉 비슷한 거리의 퍼팅을 해야 할 때마다 그때의 실수가 머릿속에 어른거릴 수 있다. 이런 잡념이 자신감을 갉아먹기 때문에 퍼팅을 실패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처럼 필드에서나 삶에서 경험했던 부정적인 기억들을 쌓아 간다면, 당신은 비슷한 상황에 처할 때마다 불길한 예측을 하게 된다. '피하고 싶은 결과를 만드는 장본인은 당신이다'. 그런 예측은 이상하게도 그대로 실현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샷의 실패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속을 태울 이유는 없다.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 내고 초연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기억의 메커니즘
정보가 기억되는 생리적 매커니즘은 뇌의 신경세포인 뉴런과 그것들의 연결인 시냅스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특히 해마와 편도체가 기억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마는 기억의 형성과 조직화와 관련된 기능을 하고 편도체(Amygdala)는 감정적 자극과 관련된 정보를 처리한다고 한다. 특히 '아미그달라', 즉 편도체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을 일깨우는 기능을 한다고 알려져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생존을 위한 반응에 크게 관여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와같이 편도체는 두려움이나 공포와 관련된 반응을 조절하는 기능을 주로 하게 되는데, 만약 편도체가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으면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이런 상황이라면 천적이 나타나도 멀뚱멀뚱 쳐다 보기만 하고 도망을 치지 않게 되므로 천적의 공격을 받거나 먹이감이 되는 신세를 피하기 어려워지게 된다. 이렇게 편도체의 기능은 생명 유지에 반드시 필요하다.
현 시대에는 맹수를 보고도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지 못해서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맹수에게 '잡아 먹히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아미그달라'의 기능은 여전히 필요하다. 문명화된 이 시대에는 맹수가 우리 주변에 없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얼마든지 타인에 의하여 잡아 먹힐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존을 위하여 많은 선택과 활동을 한다. 개인별로 하는 일과 선택은 서로 다르겠지만 가장 원초적이고 기본적인 목적은 생존이다. 그리고 생존의 문제가 해결된 후에야 비로서 다른 자아 실현을 위한 더 높은 차원의 활동을 하게 된다. 피와 살이 뜯기는 식으로 잡아 먹히지 않고 살아 남는 것만 생존은 아닐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모든 활동은 결국 그런 환경에서 버티고 생존하기 위한 동물적 본능이 작동하기 때문이며, 따라서 경쟁에서의 도태는 결국 '다른 방식'으로 잡아 먹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된다.
위 메커니즘에 따르면 공포, 불안감, 두려움 등과 같은 감정이 수반되는 상황은 인간뇌의 아미그달라를 강력하게 자극하고 그 자극은 우리 뇌에 깊게 각인된다. 그리고 그런 경험은 우리 잠재 기억속에 매우 선명하게 새겨져서, 향후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적으로 동일한 감정을 느끼고 그런 상황을 최소화하거나 피하기 위한 행동을 선택하게 된다.
인지적 편향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건에 더 집중하고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그런 종류의 정보들이 기억에 더 잘 쌓인다. 즉 감정이 개입된 경험이 기억에 더 강렬하게 남게 된다. 자신의 과거를 회상할 때 과연 어떤 장면들이 더 잘 떠오르는지 생각해 보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긍정적인 기억 그리고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도 물론 많이 있겠지만 그에 못지 않게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에 대한 기억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특히 힘들고 괴로웠던 순간에 대한 기억은 일반적으로 더 세밀하게 회상이 가능하다.
반면 긍정적인 사건의 경우는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따라서 그에 대하여 감정이 개입되는 경우는 많지 않고 있더라도 감정 개입의 강도는 높지 않다. 그리고 인생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사건들은 평범한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이런 평범한 순간들은 대부분 우리 삶에 필요한 긍정적인 사건들로 채워진다. 아침에 일어나서 침구를 정리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운전해서 출근을 한다. 일터에서도 보통은 정해진 반복적인 일들을 하는 경우가 많다. 퇴근 후에는 집에서 가족과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동료나 친구들과 친목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은 이렇게 반복적이지만 크게 자극이 없는 행위와 순간들로 채워진다.
만약 모든 삶의 순간동안 강한 자극을 받고 그에 따른 강력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늘 슬퍼도 안되고, 매 순간 기뻐도 꼭 좋은 것이 아니다. 삶에 기복이 있듯이 감정도 희로애락이 번갈아가면서 온다. 그리고 각 감정의 사이사이에는 커다란 시간의 공백이 주어지고 그 공백은 평범한 순간들로 채워진다. 감정 소모가 극도로 줄어들어서 평안한 無心의 순간을 보낼 수 있는 삶의 여백같은 것이다. 그리고 우리 삶의 시간은 대부분 그런 시간들로 채워지고, 그 순간들은 우리 기억의 아주 깊은 곳으로 향하게 된다. 즉 억지로 떠올리지 않는 이상 어지간하면 다시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감정이 많이 개입된' 부정적인 일들을 더 많이 기억하고 떠올리게 된다. 그래서 그런 일들이 더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이것이 인지적 편향이다. 우리는 이렇게 인지적 편향을 초래하는 기억의 매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흔히 '머피의 법칙'은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인지적 편향의 예라고 할 수 있다. 머피의 법칙은 '잘못될 수 있는 것은 모두 잘못될 것이다'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법칙이 현실에서도 자주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머피의 법칙이 늘 맞는 것 같다는 인식은 인간의 인지의 오해가 그 원인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인지적 편향이 문제라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부정적인 부분 혹은 사건에 더 집중하고 민감하게 반응을 하고 따라서 그런 부정적 상황은 기억에 더 강하게 새겨진다. 감정적으로 느끼는 충격의 강도가 높다는 말이다. 부정적인 상황에 대하여 100%의 강도로 감정을 느낀다면, 평범한 일상과 같은 긍정적인 상황에 대해서는 그보다 현저히 낮은 강도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하면 긍정적인 상황은 여러번 반복되어 일어나도 늘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이 있는줄도 모르고 지나가는데, 부정적인 상황이 일어나면 그로 인하여 큰 충격을 받고 강한 감정이 일어나기 때문에 간혹 일어나더라도 너무 자주 일어나는 것으로 편향적 인지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건강할 때 우리는 우리 몸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그냥 존재하게 된다. 우리 몸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매번 그걸 느낄 수는 없는 것이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허리가 존재함을 느낄 수 있는가? 아마도 허리가 멀쩡히 건강한 상태라면 허리가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없을 텐데, 허리 통증이 있다면 허리가 아픈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 이는 허리가 있음을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감각이 느껴진다는 것은 무언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손톱 사이에 5mm짜리 가시가 박힌 경우는 어떤가? 손톱 사이에서 통증이 느껴질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거기에 가시가 박히기 전에는 '손톱사이'라는 신체의 일부가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와같이 긍정적인 상태(몸이 건강한 상태)는 우리가 잘 인식하지 못하고 따라서 기억에도 잘 각인되지 않지만, 부정적인 상태(손톱 사이에 가시가 박히듯이)는 너무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고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끼친다. 인체는 정신적인 면은 물론이고 감각적인 면에서도 인지적 편향을 피할 수 없는 모양이다. 우리는 몸이 건강한 상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팠던 기억은 너무도 명료하게 나니까 말이다.
조셉 패런트는 '샷의 실패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며 속을 태울 이유는 없다.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 내고 초연한 관찰자가 되어야 한다' 라고 쉽게 남이야기 하듯이 하지만 이렇게 '자신의 일'을 '남의 일'처럼 보는 것은 인지적 편향에 휘둘리는 인간 기억의 매카니즘이라는 골치아픈 현실로 인하여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다. 어디까지나 인간은 동물이고 따라서 아미그달라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셉 패런트의 마지막 조언을 계속 끊임없이 상기하면 차츰차츰 관찰자의 시선을 더 강하게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도 계속해서 하게 되면 결국은 '계속 긍정적인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인지적 편향'이 생길지도 모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