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준비, 액션 그리고 반응
3. 마음가짐을 바꾸면 삶이 변화한다 (p212 ~ p215)
제자는 '저는 무척이나 성마른 성격입니다. 이런 성격을 바꾸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라고 말했다. 선승이 제자에게 말했다. '심각한 문제로군. 자네가 화를 낼 때 어떤 모습인지 보여 줄 수 있겠나?' '보여 드릴 수 없습니다. 지금은 화가 나지 않으니까요.' '그럼 언제쯤이나 자네의 화난 모습을 내게 보여 줄 수 있겠나?' '모르겠습니다. 저도 모르게 갑자기 분노가 치솟아 오릅니다.' '그렇다면 그 분노는 자네의 천성이라 할 수 없네. 만약 자네의 천성이라면 언제든 보여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나. 화가 항상 자네를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자네가 원할 때도 화를 낼 수 없다면 자네는 성마른 사람이 아닐세.'
성격을 본질적인 부분이라 생각하면 성격은 쓸모없는 것이며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러나 행위는 습관의 표현일 뿐이라고 여긴다면 언제든 다른 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을 '성마른 사람'이라 표현하는 것은 분노가 마치 그 사람의 천성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반면에 어떤 사람이 '걸핏하면 화를 내는 습관이 있다'는 표현은 분노가 그의 천성이 아니라는 전제를 갖고 있다. 화를 내는 것이 습관이라면 개선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행동을 천성이 아닌 습관으로 생각할 때 우리 삶은 지금보다 훨씬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우리는 때때로 감정을 표출시킴으로써 몸이나 정신에서 몰아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감정대로 행동하라는 충고다. 클럽을 내던지는 사람들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감정을 배출시키기는커녕 오히려 그 감정을 더 강화시키고, 결국 우리는 그 감정에 짓눌리게 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을 바꾸는 것이다. 그러면 감정을 가슴에서 털어 내려 발버둥칠 필요가 없다.
감정을 억누르려 하지도 말고 감정에 몰입되지도 말라.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되, 그 감정과 관련된 맥락을 버리도록 하라. 이렇게 할 때, 샷의 실패에 따른 '분노'라는 에너지가 다음 샷에 집중할 수 있는 힘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삶의 변곡점
누구나 삶의 변곡점이 있을 것이다. 어떤 순간에 한 선택에 따라서 삶은 다양한 갈래로 변화한다. 그리고 그 변화하는 순간은 삶에 있어서 하나의 변곡점이 된다. 이때 긍정적인 변화의 길로 들어서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인생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에 삶은 온통 변곡점으로 이루어져있다고 해도 될것같다. 아주 작은 선택이라고 해도 변화를 일으키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뿐이지 결국 어떤 변화를 만들어 내는 시발점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러나 아주 미미한 변화이기 때문에 보통 그 순간이 변곡점의 시작인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반면 꽤 중요하고 큰 선택은 삶의 변화를 매우 빠르게 혹은 즉각적으로 만들어 낸다. 너무 큰 변화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변화를 거의 바로 인지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된다. 그 변화로 우리의 삶의 궤도가 상당히 바뀔 수도 있기 때문에 알아채지 않을 수가 없기도 하다. 예를 들면, 최근 내가 선택한 '퇴직'이 그런 큰 선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봐도 그 선택 이전과 이후의 나의 삶은 상당히 다르다. 내게 아주 커다란 변곡점이 생긴 것이다. 물론 그 선택은 다른 누가 아닌 바로 내가 한 것이며,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바로 나의 것이다.
사람은 영유아기 시절을 제외하면 거의 언제나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한다. 자신이 자유롭고 자주적으로 선택을 하는 삶을 살아왔다면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면 살아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너무 질질 끌려 다니는 수동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에 주체적이지는 못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결국 자신의 삶을 자신의 선택에 따라서 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을 것이다. 매우 확고한 주관에 따라서 주체적 선택을 하는 삶도 있고 약간 물러터져서 끌려가는 듯한 모습으로 사는 삶도 있겠지만, 결국 언제나 선택은 자신의 몫이기 때문에 그도 약간 덜 주체적일 뿐이지 주체적이지 않은 삶을 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자신이 주체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무언가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기 위함은 아닐까? 부모님이 지원을 해 주지 않아서 제대로 공부도 못하고 진학도 못했다고 책임을 부모에게 전가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시대에는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저렴한 비용으로 진학하여 공부할 수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아무튼 부모의 지원이 없을 경우 불편을 초래하고 힘든 상황을 겪어야 하지만 공부나 진학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영유아기에는 자주적(自主的)이라기 보다는 생물적 본능에 따라서 무작정 먹고 자는 행동으로 시간을 대부분 채우기 때문에 주체적 삶을 살았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 이후의 모든 시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욕구 혹은 기대에 따른 사고와 행동을 통하여 선택하면서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렇게 자기도 모르게(자신의 영유아기가 언제 끝이 났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어떤 시점부터 모든 사람들은 한 인간으로써의 주체적인 삶을 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때부터 무수한 삶의 변곡점을 겪게 된다.
아마 우리 모두는 지금도 삶의 어느 변곡점을 지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할 입장에 처해 있을 것이다. 언제나처럼 선택은 자유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물론 모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물적 본능적으로 책임을 피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
모든 것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맞는 말이다. 너무 맞는 말이라서 화가날 지경이다. 왜냐하면 너무도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데 마음가짐(마음먹기)을 마음대로 하기가 상당히 어렵기 때문이다. 마음가짐은 마음의 자세이다. 이것은 생각하는 방식(습관)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음가짐이 생각하는 방식 혹은 생각하는 습관이라면 지금보다 더 좋은 마음가짐을 갖으면 될일이다. 즉, 더 좋은 습관으로 기존 습관을 대체하는 방식의 접근이 필요하다. 이렇게 습관은 습관으로 고쳐야 한다.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계속 되풀이하면서 완전히 몸에 베어버린 행동이나 사고 방식을 습관이라고 한다. 대부분 반복된 학습 행위로 생기며, 거의 유사한 패턴으로 반복된다. 이미 몸과 정신에 깊게 새겨져서 자동 실행되기 때문에 그 습관이 습관인줄도 모르고 행하기도 한다. 따라서, 습관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재미있는 것은 바꾸기 어려운 어떤 습관이 없어지거나 혹은 대체되었다면 그것은 또다른 습관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다. 조셉 패런트는 행위는 습관의 표현일 뿐이라고 했는데, 이는 지극히 정확한 설명이다. 우리는 반복되어 실행하던 어떤 행위를 다른 행위로 대체하면서 습관의 표현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이것은 습관이 바뀐 것이기도 하고, 단순히 다른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데 사실 본질적으로 '행위'가 바뀐 것이 매우 정확한 사실이다. 그리고 맨 밑바닥에는 마음가짐이 먼저 변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행위가 바뀔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삶을 통과하는 동안 끝없이 생기는 변곡점에서 어떤 판단과 선택을 하느냐가 매우 중요하다. 결국 그 순간 우리의 행위가 바뀌고 그게 우리 삶을 바꾸기 때문이다. 비단 골프에서 만이 아니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해서 누가 원조라고 하기도 어려운 말이 있다. '생각은 행동을 바꾸고, 행동은 습관을 바꾸며, 습관은 인생을 바꾼다' 라는 말이다.
이런 말을 수 없이 듣고 생각과 행동을 바꾼 사람은 인생이 바뀌었을 것이고, 수 없이 들었지만 그냥 습관적으로 듣기만 한 사람은 아직 바뀌기 전일 것이다. 어쩌면 바뀌는 과정에 있을지모 모르고. 그런데 중요한 점은 삶의 변화는 대부분 한 순간에 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마음가짐을 바꿔도 한 순간에 인생이 변하지 않고 오랜 시간을 거쳐서 숙성이 되야 본격적인 변화를 감지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자신이 계속 뭔가 시도를 하고 있지만, 변화를 실감할 수 없다고 하여 전혀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니 성급하게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수 많은 변곡점을 통과해야만 가시적 변화가 눈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