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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의 아버지, 게으름

무슨 일이 있어도 걱정 말라. 잘 될거다.

by Eaglecs

초안 2021. 12. 14. / 보완 2024. 04. 13


들어가는 글.


오늘도 글이 길어졌다. 제목에 게으름이 들어가는데 새벽부터 너무 부지런하게 쓴 것 같다. 들어가는 글을 그래서 짧게 하고 싶다. 여러분의 주목만 끌면되니까^^. 매번 주저리 주저리 길게 들어가는 글을 쓰는데 오늘은 너무 짧으니 궁금할 것이다. 여러분이 본문을 봐야 하는 이유다. 오늘은 주말이니 시간을 좀 내도 좋지 않을까?



본문



크라이슬러 임원이었던 클랜러스 블레이처라는 사람이 한 말이 있다. “게으른 사람은 일을 쉽게 처리할 방법을 찾아 냅니다…. 제 경험으로는 늘 그렇습니다”. 정말 참신한 관점이지 않나? 셀레스트 헤들리의 ‘바쁨 중독’에 인용된 글이다. 같은 책에 이런 내용도 있었다. <게으름의 행복> 이라는 부분 나오는 내용인데, “배에 돛을 달 생각을 가장 먼저 한 사람은 노 젓기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였다. 소에게 쟁기를 끌게 한 누군가는 땅을 파지 않아도 될 방법을 찾고 있던 이였다. 폭포수를 이용해 곡식을 찧은 누군가는 돌로 곡식을 찧기가 몹시 싫은 이였다.” 얼마나 새로운가? 그야말로 놀라운 시각과 발상의 전환이다. 나는 이 관점을 적극 지지한다.

바쁨 중독.jpg



다행스럽게도(?) 난 게으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혀 믿지 않는다. 학생 때에도 그랬지만, 회사에 입사하고 나서도 출근 시간이 매우 빨랐다. 빠른 출근 시간은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는 단순히 부지런함으로 보이는 경향이 있다. 입사 초반엔 6시 반에서 7시 정도였던 것 같은데, 입사 5년 후 정도부터는 6시 이후에 나오는 적이 거의 없었다. 심하면 새벽 3시나 4시에 나왔고, 총 30여년의 재직 기간 중 적어도 약 15년간은 5시 이전에 출근했던 것 같다. 지금도 7시 이전에 출근한다. 보통 6시 30분 전후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더 일찍 오지 않는 것은 야간 근무하는 직원들이 주차장의 내 자리를 점유하고 있어서 그들이 퇴근한 후인 6시 15분은 되야 주차할 자리가 나곤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간혹 깜빡하고 6시 이전에 도착하여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아 불편했던 적이 있어서 아예 6시 이후에 도착하도록 집에서 출근 시간을 조정하는 편이다. 예전에 부평 사업장에서 일 할 때 간혹 6시가 넘어서 출근하면 당시 보안원이 “어디 아프신지?” 라고 묻기까지 했었다. 늘 5시 이전에 오던 사람이 오지 않으니 기다린 것이고, 결국 믿을 수 없게도(?) 6시가 넘어서 출근을 하니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내가 게으르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너무 길게 뭔가를 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다. 일이든 놀이든 그 무엇이든 진득하게 하는 것을 잘 못 견디는 성격이다. 그래서 공부도 길게 하지 못하여 좋은 일류 대학을 가지 못하였고(집중이 길게 되지 않았다. 일단 공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된다), 일도 길게 하기 싫어서 어떻게 하면 빨리하고, 어떻게 하면 없앨지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이었다. 그게 내 업무 시간을 극적으로 줄여 주기도 했다.


내가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단 도로상에 차가 막히는 것이 너무 싫다. 예전엔 도로에서 버리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런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냥 차와 사람으로 붐비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시간은 아무래도 상관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확실히 맞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3시간 30분을 달려서 월 2회나 전라도 광주를 다녀 올 수 있겠는가? 4시 30분에 출발하여 8시경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어떨 때에는 3시 30분에 출발하여 7시 이전에 도착하기도 했었다. 도로에 차가 많이 없어서 아주 맘에 들었다. 그래서 새벽에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집에서 늦게 나올 경우 왠지 아침엔 조바심이 난다. 어차피 출근을 해야 할 텐데, 굳이 시간을 재가면서 여유를 부리는 것이 성격에 맞지 않는다. 성격이 급한 것하고 부지런한 것하고는 다르다. 게으름의 반대가 부지런함 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다. 난 부지런한 것보다는 급한 편이다. 그리고 유독 집 보다는 사무실 같은 독립된 공간에서 책이 잘 읽힌다. 매우 잘 읽히는 것은 아니지만 좀 더 그런 느낌이다. 그래서 사무실로 일찍 나와서 가방을 놓고 책을 보는데, 그러려면 일찍 나오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게으르다는 것은 뭔가 더 편한 것을 추구한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난 늘 더 편한 것을 추구한다. 더 편한 것이 늘 더 효율적인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더 편한 것이 더 효율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일을 하건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하건 어떻게 하면 더 용이하게 할까를 고민하는 편이다. 게으름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다. 아무튼, 아무래도 게으르면 좀 더 여유를 추구하게 마련인듯하다.


전술했듯이 출근이 매우 빠르기 때문에 난 업무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여유로운 편이다. 입사 초기 때부터 그래왔다.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개인적으로 늘 15시 이전에 업무를 끝내려고 했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책을 보거나 어학 공부를 했었다. 그 습관이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당시엔 휴대폰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기 때문에 미리 내가 일을 끝내 놓으면 잔여 시간을 내 의지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상사가 허용한다면 말이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당시 나의 상사는 합리적인 분이었다.


물론 지금은 인터넷과 휴대폰으로 인하여 직장인들의 업무 시간은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직종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전 세계의 해외 고객을 상대하여 최첨단 제품을 제조하는 경우라면 특히 하루 24시간 on line 상태일 수 밖에 없고 이건 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어내기 매우 어려운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만든다. 내 직종이 그랬다. 물론 지금은 관리자의 입장이고, 관리자 중에서도 부서 내에서 제일 높은 결정권자의 위치라서 일상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이 있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적인 여유는 매우 더 많다.


역설적으로 난 게으르긴 하지만, 의외로 결정을 빨리하는 편이다. 정확히 말하면 빠른 편 정도가 아니라 매우 빠르다. 따라서 고민하는 시간이 적다. 어떤 과업이 떨어지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언제까지 누가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지에 대하여 생각하고 계획하는데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너무 쉬운 일만 해서일지도 모른다. 사실 내 선에서 결정하고 판단하여 진행할 일들도 있지만, 나이가 들어가고 직급이 올라가다 보니 이젠 회사에 몇 남지 않은 나의 상사 특히 최고 경영층의 요구 사항에 관한 일의 비중이 많기 때문에 사실 너무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30년을 일 했는데도 일이 어렵다고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튼 그게 어떤 일이건 수행하는데 있어서 매우 빠른 편이다. 오죽하면 별명이 SOL일까. SOL은 Speed of light이라는 뜻으로 회사에서 나를 이해해 줬던 어느 선배님이 붙여준 별명이었다. 그분도 업무 스타일이 SOL이었다. 원래 비슷한 사람들이 끼리끼리 서로 칭찬하고 그러지 않는가. 사실 업무에 있어서의 내 Motto는 FTSOL이다. Faster than the speed of light. 오만함의 극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이다. 그래서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받지 않아도 될 시기와 질투 그리고 못마땅함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나와 비슷한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지지해 주지만 나와 전혀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은 나를 지지하기는 커녕 오해하고 음해할 수도 있다. 그와 생각이 다르면 그건 그의 입장에서는 적절치 않을 뿐만 아니라 못마땅한 것이고 따라서 나는 그의 시선에서는 부족하고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진정으로 어떤 사람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다른 사람이 보는 시선이 나에 대한 사회적 혹은 회사 내에서의 평가의 잣대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나는 그리고 우리는 카테고리가 지워지고 평가된다.


특히 조직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그러한 평가는 나의 회사 내에서의 생명력을 약화시킨다. 사실 몇 년 전부터 그걸 실제로 경험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그런 경험을 했고, 지금도 그 경험을 하고 있음에도 안 고쳐진다. 계속 빠르고 판단하고 결정하고 시행하며, 계속 과감하게 말하고 행동한다. 그 결과값에 대하여 내가 받으면 될 것 아니냐는 오만한 나의 생각과 에고가 사라지질 않는다. 아마도 이 조직을 벗어날 때까지 변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은 안 변한다고 한다. 변하는 척을 하는데 그건 변한 것이 아니라 연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관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내가 절절히 겪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일을 빨리하고 결정도 빨리하는 것은 내가 매우 똑똑하고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사실 회사 일이라는 것이 별것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이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이제부터 정말 냉정하게 말하겠다. 회사에서는 해야 할 것들은 대부분 명확히 보인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과연 자기가 할 수 있을까 두려워하기도 하고, 어떤 일을 누구에게 부여할지 적임자를 잘 찾지 못하기도 하고, 그 일의 예상되는 결과물에 대하여 확신과 자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만 과도하게 소모하기도 한다. 물론 뭘 해야 할지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아서 행동을 시작하지도 못하는 부류도 있다. 이런 다양한 이유로 시간이 지연된다.


그러나 여기서 냉정하게 우리의 학창시절을 떠올려 보자. 시험 답안 고쳐서 제대로 맞은 적이 얼마나 되는지 말이다. 아마도 별로 없을 거다. 적어도 난 그랬다. 즉 처음에 심혈을 기울여 판단하고 선택한 답이 맞을 확률이 더 높다. 물론 아닐 수도 있는데 내 개인적 경험으로는 그렇다는 말이다. 비약이긴 한데 굳이 비교하려고 예를 든 면도 있다고 이해 바란다.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고민했으면 더 고통받지 말고 결정하고 행동하고 그에 대한 결과값이 나오면 그때 또 대응하면 된다. 설사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회사의 일을 그르쳐 버릴 정도의 멍청한 결정인 경우는 거의 없고 오히려 별일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구상의 수많은 회사 중에서 지금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그 회사가 그 얼마나 중요하고 급하고 절제 절명의 결정을 요하는 사건들로 일이 진행되겠는가? 그렇지 않다. 여기가 무슨 NASA도 아니고 국방 과학 연구소도 아니지 않은가? 어마어마한 투자를 결정하는 삼성같은 초거대 기업의 핵심 부서도 아니다. 애플도 아니고 Tesla도 아니다. 그냥 중견 기업일 뿐이다. 내가 다니는 회사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다. 현실을 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 중에서 Steve Jobs나 Elon Musk 같은 천재가 있는가? 정말 눈을 크게 뜨고 열심히 찾았지만 아무리 살펴도 찾지 못하겠다. 그냥 평범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나도 그중 하나다. 물론 그중에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정도이다. 역사에 남을 정도의 혹은 한 기업의 운명을 바꿀 정도의 높은 안목과 지식 그리고 판단력과 영감을 가진 사람은 이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현실을 직시하자. 내가 속해있는 이 회사는 단순히 많은 수익을 얻어 내기 위하여 가급적 좋은 선택과 결정을 하면서 하나하나 성과를 일구어 가는 ‘그냥 평범한 회사’일 뿐이다. 너무 자신이 몸 담고 있는 회사나 조직에 대하여 과도하게 몰입하지 말자. 다시 말하지만 우습게 보자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보자는 것이다.


이렇게 다른 시각에서 좀 더 폭넓게 상황을 조망하면 우리가 처리하는 일들이 그렇게 초고난도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금방 판명이 난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라. 특히 나를 포함한 이 조직에 소속된 모든 사람은 그 누가 되었든지 간에 당장 없어져도 회사가 정상적으로 돌아가는데 거의 지장이 없다. 따라서 없어도 되는 사람이 하는 결정이 그렇게 중요할 리도 없다. 좀 슬프지만, 사실이다. 자신을 소중히 여겨야 하지만 과대 망상증에 빠져서도 안 된다. 그래서 크게 고민하지 말고 빨리 결정하고 실행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경제적이라는 것이다.


회사에는 다양한 관리자 혹은 리더들이 존재한다. 어디선가 본 내용이고 나도 개인적으로 경험한 것인데, 어떤 사람은 좀 늦더라도 꼼꼼하게 철자 하나, 표의 배치, 줄 간격까지 잘 살펴서 결점 없는 결과물을 보고받는 것을 선호하고 또 어떤 사람은 보고서 혹은 어떤 업무 관련 문서에 약간의 형식상 허점이 있더라도 핵심적인 내용에 중대한 오류만 없다면 일정보다 매우 빠른 보고를 선호한다. 결과적으로는 후자가 더 좋다는 것이 내 의견이자 결론인데, 그것은 내가 전적으로 후자 쪽이기 때문이다. 원래 업무의 폭이 넓고 행동이 빠르면 실수를 하게 마련이다. 그 실수의 대가가 빠른 보고라는 결과물의 성취이고, 그와 같이 빠른 FTSOL의 결과물을 받은 리더는 그 ‘몇 안 되는’ 실수를 잡아내고 더불어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그 결과물에 추가하여 그 결과물을 한 층 더좋게 만드는데 기여 할수 있게 된다. 일찍 보고를 받은 덕에 아직 기한이 많이 남았으므로 여유있게 보완을 해 가면서 deadline에 충분히 앞서서 질 좋은 결과물을 완성할 수 있게 된다. 보고를 받은 그 리더의 더 높고 깊은 안목이 보고서에 추가로 베이기 때문에 그 결과물의 질은 올라가지 않을 수가 없다. 결론은 성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전자와 같이 완벽한 결과물을 단번에 받지만, 그 리더의 생각과 의견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 최종 보고서가 완성된다면? 이 말은 그 리더는 필요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왜 괜히 절차만 하나 더 만들어서 시간을 끌고 비용(그 사람의 인건비)을 낭비하는가? 그냥 보고서 작성자가 직접 하면 되지 않을까? 난 전자와 후자에 해당하는 모든 상사들을 경험했다. 운이 좋게도 주로 후자 쪽이 약간 많았던 것 같고, 그런 유형의 리더와 일을 할 때 좀 더 좋은 결과값을 얻었고, 일도 재미있었고 배움은 비교할 수 없이 더 많았던 기억이 난다.


전자와 같은 타입의 보고를 원하는 리더의 경우엔 보고하기가 불편하고 두려웠다. 사실을 말하자면 그냥 그런 사람과 일하기가 싫었고 그런 일을 하려고 자리를 지킬 수 밖에 없는 나 스스로가 부끄럽기까지 했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실수를 용납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상사는 사람을 대단히 수동적으로 만든다. 점 하나 잘못 찍은 것, 철자 실수가 난 것, 줄이 맞지 않은 것과 같은 부분에 대한 '모욕적 언사를 곁들인' 지적은 간혹 심한 인격 모독으로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내용에 집중해야 하는데 형식에 더 얽매이게 되곤 했던 기억이 난다.


곰팡이가 슬어 버린 빵에 살짝 잼을 발라서 그 썩어 버린 부위를 가리는 것처럼 형식을 완성해 놓으면 빵에 곰팡이가 슬어도(즉 보고 내용이 좀 허술하고 질이 떨어져도) 그냥 먹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하면 좀 너무 과한 표현인가? 약간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 빵을 맛나게 먹는 사람을 본 적이 있기도 하다. 물론 잼은 내가 바르지 않았다.


생산성 그리고 보편 가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의식행위에 가까운 부분에 대한 집요한 집착은 완벽한 업무와는 거리가 멀다. 심지어 배우는 것도 없다. 물론 난 이 말이 농담이었기를 바라는데, 그게 뭐냐 하면 “난 정말 보고서를 받아서 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바로 전달만 할 수 있는 그런 보고서를 받고 싶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자기가 없어도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인지를 알기는 한 건지 의문이다. 그냥 생각만 했었으면 좋았을 말인데 말이다. 나도 그런적이 없었는지 이제 돌아보니 완벽하게 떳떳하지는 못한 느낌에 진땀이 난다. 사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생각은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부끄럽다.


이런 유형의 상사에게 있어서 본인의 관점에서 꼼꼼하지 못한 ‘게으른 사람’은 쉽게 용납이 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내가 나를 게으르다고 생각할 뿐이지, 나 이외의 사람들은 내가 게으르기는커녕 ‘부지런함의 화신’ 쯤으로 나를 생각하고 있다. 별명이 SOL인데 게으름은 가당치도 않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하면 뭔가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 매 순간 휩싸여 있다. 하지 않는 것을 하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일이다. 하지 않는 것이 왜 하는 것이냐는 물음이 있을 수도 있는데 이건 존재와도 관련해서 설명될 수 있다. 그냥 있는 것(존재하는 것)이 뭐란 말인가? 그냥 있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한순간을 존재한다는 것은 매우 소중하고 귀한 경험이다. 그렇게 존재하고 싶어서 그 존재 이외의 일은 하지 않고자 가능하면 뭐든 줄이고 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냥 존재하는 상태는 뭔가를 하는 것인가 하지 않는 것인가? 일단 ‘한다’는 것을 동작이나 활동을 의미하고 ‘존재’는 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다는 이미지를 갖는다. 그러나 가만히 존재하고 있어도 생명은 유지되고 에너지는 몸속에서 돈다. 그 존재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뭔가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그냥 존재의 상태로 있는 것도 뭘 하는 것인데,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일 뿐이다. 즉 외부에서 볼 때 가장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존재이고 따라서 이것은 하지 않는 것을 하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이해하겠는가? 이 궤변일 수도 있는 관점을?


그러나 기억하자. 우리는 뭔가 계속하려고 이 세상에 온 것은 아니다. 관찰하기 위해서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에너지를 소모하며 뭔가 만들고 파괴하기 보다 상황을 관찰하는 관찰자가 되기 위하여 이 행성에 온 것일 수도 있다. 말이 이상한 곳으로 흐르는 것 같은데, 아무튼, 난 게으르고 싶고, 실제로 게으른데,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그런 게으른 사람이다.


오늘 게으름과 관련하여 무엇을 했는지 되돌이켜 생각해 보자. 내가 생각하는 그 ‘게으름’이다. 뭔가를 하지 않기 위하여 결국 그 뭔가를 매우 효율적으로 만든 것 말이다. 아쉽게도 없다. 그간 너무 효율화를 많이 해서 더 게을러 질 수 있는 아이템을 찾지 못한 하루가 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아침에 출근하여 독서를 했고 정말 ‘쓸데 없지만 시간이 잘 가는’ Youtube 시청을 약 30분 정도 하였다. 그리고 업무 시간을 지금까지 약 6시간 보내면서 업무와 관련된 메일을 약 50통 받았고 6통을 보냈다. 실무진들이 주고 받는 메일에 비하여 현격히 적은 숫자의 메일이다. 좋게 해석하면 내 휘하의 관리자들 그리고 그 밑의 중추적 역할을 하는 사원들이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도와줘야 할 사항이 거의 생기지 않고 있는 것이고, 이것은 결국 내가 이 조직을 맡으면서 기획한 매우 효과적인 관리자의 구성을 성공적으로 완료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물로 판단된다.


물론 그 외에 다른 요인도 있겠지만, 결국 제일 중요한 사람의 관리가 제대로 되었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들이 내가 할 일의 대부분을 없애 주었다. 실제로 제일 좋은 리더십은 MBA, 즉 Management by Absence 라고 생각한다. 파타고니아 창업자인 이본 쉬나드가 언급한 용어인데, 바로 그가 1년에 절반은 회사를 비우는데도 회사는 제대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인용한 표현이다. 개인적으로 매우 마음에 드는 표현이다. 부재의 경영. 자동으로 가동되는 시스템이 구축된 조직이라는 것이고, 하위 리더에게 권한이 위임되어 있고, 그 하위 리더는 위임 받은 권한을 망설임 없이 사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 관리하고 감독하고 감시해야 질서가 유지되는 조직은 매우 취약한 조직이다. 최고의 효과를 낼 수 없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진정한 리더는 본인의 부재가 느껴지지 않는 조직을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게 내가 꿈꾸는 모습이기도 하다. 내가 없어도 되면 회사에서는 나를 해고할 것이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원래 회사는 들어오면 나가는 것이니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특히 그렇게 완벽하게 기능하는 효율적 조직을 완성한 리더를 해고할 만큼 멍청한 CEO는 그리 많지 않기 때문에 내가 그런 이유로 해고를 당할 가능성은 없지는 않지만 그리 높지도 못하다. 만약 그 낮은 가능성이 실현이 되도 난 후회가 없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최상 수준의 리더십을 발휘해 보고 이곳을 나가기 때문이다. 삶은 자기 만족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아마 때가 돼서 나가게 되는 것이니 받아들이면 된다.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몸담고 있었던 제조팀에서도 총 650명에 달하는 직원을 이끌면서 강조한 것 그리고 내가 몸소 지킨 것이 신뢰의 리더십, 책임의 리더십 이였다. 언어의 유희 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타 부서에서 일하다가 불현듯 전혀 경험이 없는 제조 현장에 와서 팀장을 맡으면서 역시 겪은 적 없는 대규모의 인원인 총 650명에 달하는 조직원을 잘 이끌기 위해서는 그 조직에서 요구하는 업무상의 탁월한 전문성이 아니라, 누가 훌륭하고 능력 있는 하위 리더인지 잘 보고, 선발하여 활용하고, 또 기존의 역량이 미치지 못하는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지를 찾고, 그게 안되면 과감하게 교체하는 용병술이 바로 제일 필요한 전문성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차의 성능이 아무리 좋아도 운전자의 능력이 떨어지면 ‘초보운전, 아이가 없으니 저부터 구해주세요’ 뭐 이런 스티커를 붙이고 다녀야 한다. 운전자의 능력이 뛰어나면 안전한 운전은 물론이고 연비도 아끼고 차량의 상태에 대한 파악도 잘 하기 때문에 차량을 더 오래 좋은 컨디션으로 운행할 가능성이 대폭 올라가게 된다. 기업이 차라면 리더는 운전자이다.


그러나 많은 리더들이 이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한 채 자기 혼자, 자력으로, 자기의 능력으로 판단하고 결정하여 성과를 내려고 하고 심지어 성과의 결과마저 독식하려고 한다. 물론 경청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지만, 결국 자기 결정대로 하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은 듣는 척만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런 본인 스스로를 모든 일의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아가 특히 강하기 때문에 하위 리더들의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하곤 한다. 너무 부지런해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멍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자신의 역량과 현실을 모르는 것은 멍청한 것이다. 물론 자신을 안다고 말하는 것 또한 멍청한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주제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차별적인 발언이 아님을 먼저 이야기한다. 키가 160cm 인데 거울을 보고 180cm로 생각하는 것과 같다. 자신의 키를 인정해야 한다. 키 높이 구두(능력에 맞지 않는 지위)를 신어도 진짜키가 늘어나지는 않는다.


아무튼, 전혀 새로운 곳에 뚝 떨어진 리더가 어떻게 그 부서의 세세한 일들에 대하여 제일 많이 알 수가 있겠는가? 불가한 일이다. 그래서 위임을 해야 하는 것이고, 좀 더 큰 시야에서 조언을 해 주고, 그 결과값에 대하여 리더로서 책임을 지는 것이 옳은 길이 아닐까 한다. 비록 부서원의 판단에 따라서 일을 진행했더라도 내가 승인했으면 그 결과값은 내 책임이다.


나의 이러한 성향은 사실 게으름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서두에 이야기했듯이 문제를 가장 빨리 해결해야 내가 편할 수 있다. 내가 보는 관점에서 새로운 곳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1차적으로 간섭하지 않는 것이고, 2번째로 존중해 주는 것이고, 3번째로 그 책임을 내가 지는 것이고, 4번째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것이다. 특히 신뢰는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당신을 믿습니다. 매우 아름다운 말이지만 천근의 무게로 우리 어깨를 짓누르는 대단히 무겁고 중한 말이다. 믿음을 받고 그 믿음을 배신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내 생각에 99%)은 그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다. 그걸 해 내기 위하여 200% 이상의 노력을 하면서 해결책을 찾고 시간을 투입한다.


무작정 말도 안 되는 일을 그냥 믿는다고 말하면서 해내라는 것과는 다르다. 평소에 하는 일들을 잘 해낼 것이라는 기초적인 믿음에 대한 말이다. 왜 이것이 중요하냐 하면, 모든 결과값은 거기에 이르는 과정의 합이기 때문이다. 각 과정이 바로 우리가 평소에 하는 일이다. 따라서 평소에 하는 일만 잘하면 결과값은 다르지 않게 된다. 평소에 공부를 해야 성적이 나오고, 평소에 식단 관리해야 체중 관리가 되고 평소에 잘 처신 해야 나중에 화를 면하듯이 평소에 우리가 과정에 충실하다면 나중에는 목표한 값을 얻지 못할 가능성은 매우 낮은 것이다. 따라서 평소에 하는 일들에 대한 무한 신뢰는 과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내가 줄 것은 그것 밖에 없다. 그러면 내 조직은 자동으로 기능하게 되며 나중에 시일이 경과하면 성과라는 결과값을 도출해 낼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99%의 확률로 말이다. 1%는 실패할 수 있다. 그때는 책임을 지면 되는데, 그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은 매우 낮다. 따라서 성공할 99%에 거는 것은 내 입장에서 지극히 당연한 것이며, 결국 그렇게 하면 난 다시 게을러 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말이 되지 않나?





나가는 글


본인이 너무 바쁘다고 생각하는가? 하고 있는 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효율이 떨어져서 바쁜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 않는 것을 하자. 이게 무슨 말인지는 이 글을 다 봤다면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들어가는 글도 짧았고, 나가는 글도 오늘은 짧게 하려고 한다. 나의 게으름에 비하여 본문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오늘도 복잡한 세상을 살아야가야할 나의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다. 진정으로 게을러지기위해서는 그에 앞서 부지런해야 한다. 지금 게을러도 될 시기일지 아니면 부지런해야할 시기인지는 본인이 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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