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삶의 의미를 생각해 보자. 왜 우리는 이번 삶을 살고있을까?
초안 작성 2021. 12. 14. / 2024. 04.12 보완 작성
들어가는 말.
이번 글의 주제는 많은 분들께 낯설 것 같다. 일반적이지 않을 뿐더러 일부 종교인의 경우 강한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바로 Reincarnation, 즉 환생을 일부 거론하기 있기 때문이다. 그쪽에 전문성이 부족한 내가 아는 한도 내에서 나의 생각과 의견을 펼친 것이니 너무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분들도 ‘인생 이회차’라는 말을 여기저기서 들어봤을 것이다. 나이와 경력에 비하여 어떤 분야에 너무 능숙하여 꼭 이전 삶에서 했던 일을 다시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줄 정도로 잘 하는 사람을 볼 때 ‘인생 이회차’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은 환생을 기본 전제로 한 단어이다.
이밖에도 많은 말속에서 환생 문화가 우리 삶 깊숙이 뿌리박혀 있음을 알 수 있다. ‘돌아가신다’도 마찬가지다. 저 어떤 다른 곳에 계시다가 출생을 했고, 그후 자신의 삶을 살다가 숨이 끊어지면 ‘돌아가셨다’고 한다. 역시 환생의 은유가 포함된 언어적 표현이다.
이 글에서 환생에 대하여 깊게 다루는 것 같지만, 사실 그건 아니고(지식이 별로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도 없다) 그저 우리가 지금 살아 내고 있는 이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지에 대한 생각을 함께 해보자는 것이다. 이왕 사는 것 일회차든 이회차든 의미있게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2nd life에 대한 인식이 있는 것만으로도 지금의 삶에 대하여 반성하게 된다. 반성을 한다는 것은 뭔가 내 삶을 개선시킬 가능성과 의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 만으로도 환생에 대한 이해와 수용은 지금의 삶에 도움이 되는 기능을 한다.
여러분은 몇 회차 삶을 살고 있는가? 당연히 나는 내가 몇 회차 삶을 살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그러나 내가 학생때부터 상당히 고리타분한 생각을 해 왔고, 희안하리 만치 참을성이 많으며 가급적 욕심을 통제하면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마음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최소한 일이회차는 아닌 것 같다. 과거의 삶에서 이꼴저꼴 많이 봤기 때문에 이해도가 높은 것은 아닐까? 그냥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
아무튼 몇 회차인지는 모르지만 과거생부터 현재까지 조금씩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영혼이 지금의 내 육체를 운행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여러분도 한 번 생각해 보길. 자신의 영혼은 얼마나 성숙된 영혼일지를. 그걸 어떻게 아냐고?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적으로 생각해 보면 대충 답이 나오지 않을까? 남의 눈은 속여도 자신의 가슴을 속일 수 없다.
그리고, 양해를 먼저 구해야겠다. 이번에도 간단하게 쓰는 것에 실패했다. 길고 복잡하고 지루하다. 여러분의 5분이 아니라 10분을 할애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조금 궁금할 테니 오늘은 큰 맘먹고 10분만 사용하여 나의 글과 함께 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본문
지금 내가 이 육체를 입고 살고 있는 나의 이번 삶은 과연 내 영혼에게 있어서 몇 번째일까? 매우 궁금하다. 많은 학자들이 삶은 반복된다고 한다. 많은 종교도 그렇게 이야기하곤 한다. 그리고 그 반복의 빈도는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잦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그걸 증명할 수는 없지만 난 그걸 부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나는 대부분의 여러분들과 마찬가지로 내 전생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세상에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하는데, 지면이나 TV를 통해서는 봤지만 실제로는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이 실존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는 데에는 강한 믿음이 있다. 어떤 교수가 이야기한 것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에 따르면 만약 삶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면 지금의 현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한다.
즉, 삶이 정말 일회성으로 태어나서 살다 죽으면 끝이 나 버리는 이벤트라면 우리 인간이 이 삶에 그토록 열정을 다하여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냥 죽으면 그뿐인데 왜 열심히 살고, 착하게 살고, 좋은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그냥 즐기며 내 멋대로 한 평생 잘 놀다가 이 일회성 이벤트를 끝내면 되지 않는가? 내 말이 아니다. 어느 교수의 말이다. 그래서 더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우리가 영원히 살 것처럼 열심히 혹은 치열하게 산다. 물질을 모으는 측면에서 특히 더 그렇지만, 마치 나중에 복을 받기 위해서 혹은 향후 내게 어떤 여파를 미치게 할 수도 있을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행실을 조심하기도 한다. 아무튼 대부분 열심히 뭔가 하여 재물이던 뭐든 만들고 이루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물질 외적으로도 발전하고 성숙하고 성장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많은 것 같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을 얻거나, 인류 발전, 혹은 개인의 발전을 위하여 연구하고 공부하고 어떤 성과물을 내려고 분투하는 사람들도 많다. 어떤 측면에서는 힘든 고통을 감내하면서 뭔가를 만들어 내려고 그야말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를 예로 들면, 그렇게 아주 열심히 사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중간 이상 정도는 되는 것 같다. 늘 책임을 다하여 가족을 지키려고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고 근검 절약하며 저축을 한다. 회사에서 일을 할 때에도 가급적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하여 열심히 하는 편이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나는 어려운 환경에 처한 사람을 보면 내가 나서서 적극적 혹은 실질적으로 도와주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그래도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마음속으로 그 사람의 사정이 나아지기를 비는 경우가 많다. 회사에서는 후배 사원들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조언도 자주 하는 편인데, 그것은 편애에 따른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원들 모두가 노력한 만큼 좋은 성과를 얻고 성장도 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는데, 그래도 나쁜 놈 쪽에 속하기 보다는 약간은 좋은 놈 쪽에 속하는 편이 아닐까 자평하고 있다. 일단 범죄 전과도 없고 폭력적이지도 않고 사기를 치는 등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니 통상적 관점에서 나쁜 놈이 아닌 것은 거의 확실하다.
내가 이렇게 사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다음 생에서 뭔가에 대한 대가를 치르지 않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다만, 그래도 좋은 쪽에 서서 이번 삶을 영위하는 것이 좀 더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제까지 생을 반복하여 살아오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거쳤고, 그 과정 속에서 그래도 좋은 쪽에 서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 그러한 인식이 내 영혼 속에 함께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사람은 삶을 살아가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해 간다. 영혼이 성장해 가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다. 영혼이라는 단어의 문화적 뉘앙스 때문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겠는데 영어로 하면 영혼은 Soul 혹은 Spirit이 적당한 표현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다들 들어 봤겠지만 “그건 영혼 없는 대답이야” 라는 표현 속에 녹아있는 영혼의 의미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영혼이 담긴 대답’ 이라하면 내 (영혼의) 의도, 진심, 진정한 의지, 진정한 뜻 등을 내포하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영혼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고 인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이렇게 ‘영혼’이 성숙되어 가면서 삶을 이어가다가 어느 날 그 영혼을 입고 있는 몸이 그냥 죽어 버리고, 그것이 우리 삶의 끝 (혹은 내 영혼의 종말) 이라면 좀 맥락이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 치열하게 그리고 열심히 성장과 발전을 위하여 살아왔는데 어느 한 순간에 그간 쌓아온 모든 경험과 발전된 모습이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한 순간에 암전되고 완전한 무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난 영혼의 존재를 믿는다. 단순한 정신, 혼, 귀신, 영혼, 등 어떤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몸이라는 육체 속에 깃들어서 한평생을 같이 살아가다가 몸이 수명을 다하면 그 몸을 벗고 다른 어떤 곳으로 가 있다가 다시 또 다른 몸으로 깃드는 방식으로 영원한 삶을 이어가는 하나의 방식이 있다고 믿고 있다. 관련된 많은 서적이 있다. 현대가 과학의 시대이기 때문에 뭔가 구체적으로 실증하지 않으면 믿지 않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고 나도 그런 측면이 있다. 그래서 그냥 무당이나 점장이 같은 영역 말고, 학문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공신력(?)이 있는 정신 분석학자, 의사, 과학자 등이 경험하고 연구하여 저술한 책들도 다수 접했었는데 거기에서도 거의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영혼의 삶의 패턴이 존재함의 타당성이 주장되고 있었다.
즉, 내가 당장 죽어버리면, 내 육체가 죽은 것이지 ‘나’ 라는 본체, 다시 말해서, 영적 본체까지 죽는 것은 아닌 것이다. Cloud에 있는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PC를 예로 들면, 그 PC가 노후되어 수명을 다하거나 어떤 중대한 손상을 입어서 못쓰게 되어 완전 폐기 되어도 Cloud에 있는 운영 체제는 여전히 멀쩡하게 존재한다. 그 죽어버린 PC가 가동되는 동안 저장하고 처리한 정보는 Cloud에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도 하고 말이다. Cloud가 영적 본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육체가 죽으면 영혼을 포함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예전에는 내 뇌가 내 정신을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책들을 보다 보니, 나는 그냥 어떤 공간을 폭넓게 차지하고 있는 하나의 특정한 에너지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즉 지금 내가 여기서 타이핑을 하고 있지만, 이 육체가 나 자신을 100% 표현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나는 이 육체를 포괄하는 일정 영역에 서리어있는 어떤 기운(에너지)이 아닐까 한다. 더 들어가면 나도 머리가 아프니 이만 하겠다.
이런 분야에는 전문성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정확한 표현을 하지 못하는 것이 좀 답답한데, 할 수 없다. 아무튼, 이렇게 나는 이번 삶을 살고 있다. 내가 계획한 삶의 경로대로 살고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난 내 영혼이 살기로 한 육체를 빌어서 그리고 그 육체를 통하여 뭔가를 이루어내 가면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생각이 좀 특이했던 것 같다. 어린아이의 생각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성숙된 어른의 생각도 있었던 것 같다. 순전히 먹은 나이를 기준만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을 하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건 바로 당시에는 전생의 기운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 현생의 어린 영혼에 일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번 삶은 약 53년간 지속되고 있다. 이번 삶에서 나는 무엇을 이루려고 이 행성에 왔을까? 지금까지 내가 이룬 것을 한번 나열해 보면 내가 무엇을 해 내었고, 그것이 과연 내가 이번 삶에서 이루려고 했던 것인지 약간은 가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일단 나는 대가족(7남매)의 막내로 태어나서 북적이는 가정 속에서 자랐다. 이건 내가 이룬 것은 아니고 경험한 것이다. 특별할 것이 없는 경험인데, 당시 내가 어렸던 시점에는 그런 대 가족들이 많았었다. 그리고 초등학교 6년간 그냥 평범한 아이로 자랐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불우하지는 않았지만, 결코 풍족한 생활을 하지는 못했다. 고생이라고 하기엔 좀 부족하고, 넉넉하다고 하기엔 많이 부족한 환경이었다. 중간 이하 정도가 될 것 같다. 말수가 적지만 그래도 상냥한 아버지, 엄하고 단정하시지만 매우 근검절약하는 어머니 밑에서 그 시기를 보냈다. 부모의 사랑을 별로 느끼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애정 결핍이라고 볼 수도 없는 그냥 평범한 아이의 삶을 살았다.
중학교에 가서도 3년을 그야말로 평범 그 자체로 채웠다. 거의 기억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뭘 했는지 모르는 시기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걷거나 버스를 타고 다녔고, 하굣길에 분식점에서 핫도그를 편히 사 먹을 수 없는 형편이었던 것만 기억이 난다. 공부는 못했다기 보다 안 한 편이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몰랐고, 시키는 사람도 없었다. 딱 한 번 초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어머니가 내가 반에서 중간 정도 밖에 성적이 나오지 않으니 우등상 받으면 2천원을 용돈으로 주겠다고 하신 적이 있었다. 답답해서 그냥 하실 말씀이었을 것이다. 내 기억에 초등 4학년인가 5학년이었다. 당시 물가를 기준으로 2천원이면 초등학생에게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그래서 난 공부했고 당연히 평균 90점이상을 받았고 당시 반에서 4등을 했던 기억이 난다. 한 반에 65~70명 정도였고 거기서 맨날 25등 30등 하던 아이가 단숨에 4등을 한 것으로 선생님도 친구들도 놀랬었다. 그리고 어머니도 놀랬다.
너무 놀라서 인지 2천원을 주지 않으셨다. 당시 나는 어린 마음에 공부 그 자체보다 내게 큰 결핍이었던 용돈을 받으려고 공부를 한 것뿐이었고, 그 결과물을 가져왔는데 약속을 지키지 않으신 것이었다. 그래서 그 후 공부에 대한 관심은 또 없어졌다. 왜 공부를 해야하는지 그 목적과 의미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순한 욕심에 공부를 단기간 했었는데 그 결과가 인정받지 못하니 그런 행위에서 더이상 중요성을 느낄 수 없었던 것이다. 어른들이여. 아이들과 약속을 하면 꼭 지켜야 한다. 그래서 함부로 약속하면 안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난 어려서부터 목적에 많이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내 두뇌를 사용했고, 그 결과에 대한 보답을 받지 못하자 더 이상 그 목적은 유효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내 인생의 방향이 설정되어 버린 것 같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평범 그 자체였다. 역시 난 목적이 없었다. 나 자신의 능력을 믿지도 않았다. 내게 격려의 말을 해 준 사람도 거의 없었고 인생의 비전을 이야기해 준 사람도 없었고, 그런 내용이 담긴 책도 우리 집엔 없었다. 비약하자면 난 그냥 머리가 달린 한 생명체에 불과했다. 부모님도 배움이 길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자식들이 직장이나 잡고 대충 먹고 살면 된다는 생각을 지배적으로 갖고 계셨지, 어떤 진로를 선택해서 어떤 전공을 하여 무엇을 하면 좋겠다는 안내를 해 주실 정도는 전혀 되지 못하였다. 그냥 걱정을 하셨고, 성적이 낮으면 분노를 가끔 하실 뿐이었다. 그냥 맡겨 놓고 자식들이 알아서 잘 하길 기대하셨던 것 같다. 물론 우리집만 그런 것이 아니고 당시 우리집 정도 수준의 재성 상태인 부모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았을까?
그러나 난 당시 알아서 잘 할 정도로 명석하거나 약삭빠르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냥 철이 덜 든 상태로 고등학교 기간을 대부분 허송 세월로 보낸 것 같다. 그러나 고3 학기 초에 대학 진학을 못하면(왜 대학에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 없이) 직업 훈련원에 가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고3 한 해 동안 암기과목만 죽어라 공부하여 인천 용현동에 있는 4년제 사립 대학교에 진학했다. 이런 것을 보면 두뇌가 나쁜 것 같지는 않다. IQ는 평범한 수준 (118로 기억한다)이었지만, 상당히 잘 외우는 편이었다. 공부를 제대로 하는 방법도 몰랐기 때문에 무식하게 책을 통째로 외웠다.
대학에 가서도 정신 못 차리고 1학년 내내 당구장에서 살고 학점은 1.75점을 받았다. 2학년이 되서야 약간 정신을 차리고 이렇게 살면 졸업 후 취업을 못할 것이라는 것을 자각하고 학점을 따기 위하여 공부를 했다. 군대에서도 향후 제대 후 복학 및 취업을 하려면 영어가 필요하여 공부를 했고, 제대 후 복학하여 학점 따고 영어 공부를 해서 취직을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데 집중하면서 내 삶의 소중한 시간을 사용했다. 그리고 취업을 했다.
이렇게 내가 아무리 잘 봐 주려고 해도 나의 대학 시절도 평범 그 자체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질 않는다. 졸업 하는 그해 바로 취업을 하였고 한 직장에서 27년간 일을 하고 있다.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부장, 파트장, 팀장, 그리고 종국에는 부문장까지 올라가서 이젠 회사의 내 분야에서 더 올라갈 곳이 없는 지점까지 올라갔다. 이젠 내려갈 일만 남았다(그래서 얼마 전에 내려왔다. 결국 금년에 횟수로 30년을 채우고 퇴직했다). 평범함 그 자체(조직에서 제법 중요한 나사였지만 린치핀은 아닌)로 내 삶을 53년간 채워 왔고,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하고 있다. 이런 삶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가 있을까?
내 삶 속에서 어떤 거창한 의미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이 다 이렇게 사니까 말이다. 아니 일반적이지 만도 않다. 왜냐하면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대 다수가 중간에 도태되는데 나는 그래도 일반 직장인이 갈 수 있는 거의 끝까지 간 것과 다를 바 없으니 일반적인 사람들 중에서는 꽤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 온 것이 된다. 이러쿵저러쿵 탈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내 휘하에 2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고 난 그들의 수장 자리에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나의 이런 삶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아니 삶에는 꼭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행성에서 살수 있는 육체를 입고 53년이라는 시간을 그냥 아무런 의미도 없이 보내기만 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물론 내 삶의 중간중간에 어려움도 있었다. 유년기는 풍족하지 못하였고, 중고등학교 시절도 역시 풍족하지 못하여 주눅이 좀 들어서 살았던 것 같다.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고, 특히 제대 후 대학교 3학년때는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1년간 정말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당시 군대가 더 편했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힘이 들었었다. 직장 생활의 경우 타 직장을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내가 더 힘들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은데, 객관적으로 봐도 나의 직장 생활은 비교적 평탄했다. 나쁜 선배, 부족한 선배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나를 좋게 평가해 주는 사람이 더 많기도 했다. 그러니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나름의 큰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이자리까지 왔고 살아남지 않았는가? 이 또한 곧 끝나겠지만 지금까지의 성적을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나의 직장 생활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그만큼 돈을 많이 벌지 못했기 때문에 비긴 셈이긴 한다. 27년간 회사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근무 시간만 따지면 40년을 근무한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긴 시간 나의 소중한 삶을 바친 것에 비하면 그 대가가 좋은 것은 아니다. 따라서 나의 직장 생활 또한 그냥저냥 중간 수준이 아닌가 한다.
난 이렇게 내 삶을 지금까지 무색무취로 꾸려왔다. 화려함과는 완벽히 동떨어진 모습이다. 평범, 평이, 특색 없음, 등으로만 표현될 수 있는 삶을 살아 온 것이다. 굳이 이런 삶을 살려고 내 영혼이 다시 환생할 필요가 있었을까?
환생을 하려면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어떤 의미 있는 일로 조금이나마 나의 시간을 채웠어야 하지 않을까? 난 과연 어떤 의미 있는 일을 했고, 행동을 했을까? 학교생활에서는 별로 한 것이 없는 것 같고, 회사 생활을 하면서 몇 가지 타인을 위한 일을 한 것이 있기는 하다. 대가를 위해서가 아닌 순수하게 도움을 주기 위하여 한 일들이 좀 있긴 하다.
현장에서 일하는 똑똑한 사원에게 기회를 줘서 그 사원이 회사에서 크게 인정받고 성장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줬다. 수차례 면담도 하면서 기운을 북돋아 줬고 그 결과 그 사원, 그의 아내 그리고 아이들의 삶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그 사원의 성장은 곧 그 가족에게 혜택으로 돌아가니 그 가족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 말이다. 아무튼 단편적인 사례이긴 한데, 나머지 사례도 거의 다 이런 경우이다. 능력도 있고, 역량도 있고 사람도 좋은 경우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면 도와서 그 사람이 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였다. A, B, C, D군, E, F, G 양 등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6~7명 이상이 되고 내가 모르는 상태에서 영향받은 사람도 일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진심으로 그들이 잘 되길 바랬다. 그리고 다 잘 되었다. 내게 회사생활에서 남은 가장 큰 보람 중의 하나가 이거다.
그리고 리더로써 책임을 마다한 적이 없고 사원들에게 책임을 물은 적도 없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그나마 잘 한 일이었다. 이게 옳다는 것이 아니라 내 리더십의 특성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다른 리더들이 지지 않으려고 하는 책임을 좀 과도하게 지는 경우가 생기고 그것은 내가 회사 내에서 견고한 입지를 유지하는데 악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세상에 그냥 되는 것은 없다. 내가 뭔가 보호하려면 나도 뭔가 내어 놓아야 한다. 나는 나 자신을 내 놓는 심정으로 내 사람들을 보고하고 싶었다. 단 한 톨의 후회도 없다.
굳이 내가 지금까지의 삶에서 남을 위하여 의미 있는 일을 했다면 이 정도의 일밖에는 없다. 그렇다면 이게 내가 이번 삶을 사는 이유가 될까? 꼭 이것 만은 아닐 것이다. 내 아내도 있고, 딸아이와 관련된 것도 있지 않을까?
삶은 고해라고 한다. 이 지구는 고해의 성전이기도 하다. 삶을 살아 내는 동안 온갖 어려움과 곤란함 그리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삶을 꾸려야 하기 때문이다. 현 지구상에서 그래도 비교적 안락하고 편안한 곳에서 삶을 꾸리고 있는 입장에서도 그 삶이 고해이니 다른 곳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어떤 면에서 보면 약 50년간 나름의 고생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면서 영적인 성장을 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이번 삶의 목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인지 약 5년 전 정도부터 영성 관련된 책을 주로 많이 보고 있다. 삶의 의미, 왜 이번 삶을 이곳에서 살고 있으며, 다음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래서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지 그 단서를 찾기 위한 시험 무대가 이번 회차 나의 삶일 수도 있겠다.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글을 써 놓고 보니 약간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왜 이 삶을 살고 있는지 좀 더 이해해 볼 수 있도록 더 다양한 책을 보고 생각도 깊게 해 봐야겠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만약 여기까지 나와 함께 했다면 정말 깊은 존경을 보낸다. 단언컨데 여러분들은 나와 전생에 연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조악한 필력을 감내하면서 이렇게 시간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하고 전혀 도움도 되지 않는 내용이라서 실망하고 있는 독자께는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이번 생에서 겪어야 할 고난 하나를 이 글을 읽음으로서 퉁치신 것이라고 말이다. 뭐든 총량이 있지 않은가?
끝
나가는 글.
나는 우리가 삶을 계속하여 반복한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삶에도 전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그런 관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이번 삶을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데 도움을 주고 동시에 또 있을지 모를 우리를 다음생에도 도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밑져야 본전이다.
만약 생이 반복된다면, 이번 생에도 우리가 해야 할 숙제가 있을 것이다. 그게 뭔지 모르지만, 아마도 지금 당신이 하고있는 일들, 특히 가족과 주변인들을 위하여 하고있는 일들도 그 숙제중의 일부가 아닐까? 그러니까 이번 삶에서 그런 일들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숙제의 본질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숙제는 해야 하고, 하지 않으면 혼이 나거나 언젠간 다시 해서 제출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이 이번 삶의 과제, 목표 그리고 숙제를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속에서 이번 삶에 당신이 찾아야 할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는 스스로 찾아야 할 것이다. 나도 지금까지 계속 찾고 있었다. 최근에 찾은 것이 하나 있는데 그건 내가 경험한 것을 배울 필요가 있는 젊은이들에게 성심을 다하여 가감 없이 나의 경험과 배움의 결실을 전달하여 그들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것이다.
왜 나의 큰 숙제를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내 숙제를 하기 위해서는 내가 50여년의 삶을 살지 않고, 특정 조직에서 매우 도전적이고 특별한 경험을 오래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경험이 필요했던 것이다. 맞다. 내 숙제를 하기 위해서는 말이다. 그래서 50년 넘는 시간동안 삶을 살아 냈고 30여년간 특정 조직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던 것이다. 그 경험이 없었다면 위에 언급한 ‘사원들의 성장을 위해서 도움을 준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숙제도 있는데 그건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아직 열심히 하는 중이라서 말이다.
이렇게 누구나 이번 생의 목표 혹은 숙제가 있다. 그런데 그게 뭔지 알아내려면 꽤 시간이 걸린다. 통상적으로 말이다. 그래서 지금 여러분이 만약 이 삶의 가치와 의미 그리고 삶을 살아 내면서 내가 정말 어떤 가치를 만들고 전달해야 할지 이해할 수 없다면, 대부분은 아직 때가 아니라서가 아닐까?
따라서 현실이 어렵고 힘들어도 그걸 돌파해 내면 뭔가 가치가 생길 것이고 내가 나의 힘으로 의미와 가치가있는 일들을 나중에 분명히 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든 거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일단 하고 보는 것이다. 나쁜일이 아니라면 일단 계속 해라. 그럼 서서히 안개가 사그라들면서 희미하게 삶의 의미가 보일 것이다. 어떻게 장담하냐고? 내가 경험했기 때문이다. 믿어 보라. 믿질 것 없다. 지금 하는 일 잘해서 밑질 것이 있을리가 없지 않을까?
** 아래 두 권의 책을 추천한다. 2nd life에 대하여 궁금한 분들은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