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준비, 액션 그리고 반응
14. 자포자기는 스스로를 지키려는 방어 본능이다 (p243 ~ p249)
'사보타주'는 어떤 계획이나 임무를 방해하는 행위다. 은밀한 간섭을 통해 방해하는 행위를 뜻한다. 따라서 셀프 사보타주, 즉 자포자기는 무의미한 짓이다. 우리는 무엇을 판단하고, 결정하고, 처신할 때 언뜻 보기에 자포자기한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약간의 오해가 있다. 자포자기처럼 보이는 행동은 실제로는 자신을 지키려는 저항이다. 대체 무엇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겠다는 것인가? 스트레스와 걱정과 불안감이다. 편안함을 주는 익숙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않겠다는 몸부림이다.
우리는 게임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자존심에 상처를 입는다. 이런 파국을 피하기 위해, 게임이 불리하게 전개될 때 우리는 중도에 포기하거나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무관심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은연중에 이런 변화를 합리화 시킨다. '내가 전력을 다해 시도했다면 실패하지 않았을 거야. 물론 패한 것이 기분 나쁘기는 하지만 자존심을 상하는 것보다는 훨씬나아.'
긴장된 상황에서 필요 이상으로 어려운 샷을 하려는 것도 자포자기한 행위다. 달리 말하면, 능력에 걸맞지 않게 위험을 무릅쓰는 짓이다. 그럼 실패하더라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샷이었다고 하면서 상황에 대해 책임을 돌릴 수 있다. 그래야 잘못된 결정이었을 뿐 실력이 없어 실패한 것은 아니라고 합리화할 수 있는 것이다.
자포자기한 행동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첫 단계는 그런 행동을 인식하는 것이다. 몸의 반응을 살펴보고 생각의 흐름을 점검한다.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걱정의 수위가 당면한 샷의 난이도에 적합한 것인지도 점검한다. 당면한 상황이 긴장을 야기하고 자포자기한 행동을 유도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당신이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다음 단계로, 당신의 욕구를 점검한다. 그 샷을 이겨 내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끼는가? 아니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가? 그래서 차라리 무관심해지고 싶은가? 당신이 선택한 샷은 위험을 무릅쓴 과대망상인가? 이런 반응들은 자포자기한 심정을 간접적으로 증명해 준다. 이런 징후가 인식될 때 당신은 치유책을 모색할 수 있다. 주어진 상황을 다른 방향에서 생각해 보라. 1.5미터 퍼팅을 있는 그대로 생각하라. 당신이 반드시 성공해서 버디를 기록해야 할 퍼팅이 아니라, 공과 1.5미터의 풀밭 그리고 홀컵으로 이루어진 공간일 뿐이라고 생각하다. 평소의 절차, 즉 결과보다 과정에 초점을 맞춰라. 심호흡으로 심신을 안정시키고 무게 중심을 찾아라. 생각의 파도 아래로 잠수하고 당면한 샷에 온 정신을 집중하라.
자기 합리화의 과정
어떤 행동이나 결정이 나중에 긍정적이지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낼 때 그런 행동과 결정이 불가피했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심리적 방어 매커니즘이 작동된다. 이와같이 기대이하의 결과에 대하여 그럴듯한 이유를 찾는 것이 자기 합리화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합리화에 매우 익숙하다. 물론 나도 그렇다.
자기 합리화는 이미 일어나버려서 되물리 불가한 상황을 '깔끔하게 포기'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식으로 기대 이하의 결과로부터 발생하는 부정성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약간의 순기능도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자기 합리화는 부정적인 영향이 더 클 것이다. 특히 자기 합리화를 통하여 실수를 인정하지 않게되면서 앞으로도 계속하여 같은 실수를 반복할 가능성을 상존하게 만들고, 그런 문제는 향후 더 큰 사단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자기 합리화도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하더라도 가능한 선에서 객관화된 자기 합리화가 필요하다.
자기 합리화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 본능이다. 이런 관점에서 자기 합리화는 걱정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버린 자신에게 심리적 피난처를 제공해 주는 방식으로 그런 상황을 억지로 외면하는 것과 같다. 어떤 면에서는 일종의 망상에 가깝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결국 아쉽게도 실상 혹은 현실에 대한 외면의 대가는 걱정스러운 상황의 빈번한 재발이라는 형태로 다시 자기 합리화를 한 사람에게 나타나곤 한다.
우리는 나쁜 결과가 나올 경우 왜 그럴 수 밖에 없었고, 내가 그런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은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는다. 객관적 시선으로 철저하게 그 상황을 분석하여 합리적으로 판단한다면 그건 자기 합리화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꽤 많은 사람들은 객관적이 아닌 자기 중심적인 관점에서 분석하여 주관적으로 판단한다.
사실 자기 합리화만 하면 양반이다. 최악은 자신의 행동과 선택으로 인하여 발생한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타인에게 무작정 떠넘기는 경우이다. 다들 그런 사람을 몇 명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자들의 앞뒤가 맞지 않는 주장을 듣다보면 납득은 커녕 분노가 차오르곤 했던 기억이 새삼 난다. 그런자들은 자기 합리화라는 수단을 통하여 자신의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긴다. 심지어 책임을 떠넘기면서도 자신이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자기 합리화가 대범하고 뻔뻔하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어떤 불리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그와 관련된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이와같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본능적 행위이기는 하지만 결국 간사하고 저열한 행위일 뿐이다. 그들은 책임 떠넘기기와 같은 자기 합리화를 반복하면서 '계속하여 반복된 실수'를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능하면 그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떨어져서 지내기를 권한다.
골프에 있어서도 능력에 걸맞지 않는 샷을 한 후에 매우 높은 확률로 예상된 '좋지 않은 결과'가 나왔을 때 자기 합리화는 거의 자동적으로 실행된다. 공을 최소한 230미터는 보내야 안전하게 벙커를 넘겨서 제일 유리한 위치로 공을 보낼 수 있는 홀의 드라이버 티샷을 평범한 보기 플레이어 수준의 아마추어 골퍼가 성공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나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나는 그 홀만 가면 거의 열에 아홉은 230미터를 보내려고 도전을 한다. 그 이유는 과거에 성공한 적이 두번 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홀을 경험한 회수가 20번은 족히 넘으니 내가 그 티샷에서 성공할 확율은 10%이하이다. 문제는 그 홀의 티박스에만 서면 현실적인 나의 성공 확율을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때의 올바른 결정은 2nd 샷에 약간 불리하더라도 벙커 왼편의 넓은 페어웨이를 겨냥하는 것이다. 이는 너무도 당연한데 나는 거의 대부분 달성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도전을 하곤 했다. 그리고 90%의 확률로 실패했다. 단순히 능력에 걸맞지 않은 샷을 한 것이다. 이런 샷을 할 경우 나는 거의 언제나 자기 합리화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맞 바람이 문제라고 한 적도 있었고, 아주 살짝 덜 맞아서 1미터 덜 날아가서 벙커로 들어갔다고도 이야기 했었다. 그런데 사실 그 홀에서 내가 선택했어야 할 티샷은 페어웨이 왼편으로 200미터를 보내는 것이어야 했다. 자신이 했던 샷 중에서 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실상을 외면하지 않을 때 이런 실수의 반복 재생은 감소할 것이다. 나도 다시는 그 홀에서 '그 따위' 샷을 할 생각은 이제 없다.
망상의 샷
사실 로우 핸디캡 골퍼 중에서도 페이드와 드로우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난 그렇게 자유롭게 샷을 구사하는 아마추어는 그 동안 딱 1명 밖에 본적이 없다. 그는 그냥 싱글 골퍼가 아니라 스크래치 골퍼였다. 본인은 핸디캡을 3정도로 소개했었다. 연령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스윙 폼은 연식을 무시할 수 없는 푸근한 모습이었지만, 매우 견고하고 일관된 스윙을 했었다. 그는 홀의 구조를 고려하여 거의 마음대로 페이드와 드로우를 구사했었다. 물론 제대로 걸리지 않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십중팔구는 의도한 샷을 만들어 냈었다. 아마추어라면 꿈과 같은 수준의 실력자였다.
그런 분과 몇 번의 라운드를 하고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도 할 수 있다는 망상이 생겼다. 대부분의 아마추어처럼 나도 구질은 페이드성이다. 좋게 말해서 페이드이지 슬라이스가 맞는 표현일 것이다. 물론 악성 슬라이스로 매번 우측으로 크게 휘는 공을 날려서 공을 잃어 버리는 정도는 아니고 한 라운드에 몇 번 정도 그런 샷이 나온다. 그리고 나머지는 약한 슬라이스와 스트레이트성 구질을 보인다. 이런 '실상'인데도 불구하고 수준에 맞지 않는 샷을 시도하는 경우가 가끔있다. 되지도 않을 드로우 샷을 시도하기도 하고 파3에서는 매번 아이언샷을 페이드로 시도한다. 아무리 후하게 줘도 성공률은 20%이하다. 나머지 80% 중에서 10% 정도는 헤저드로 가거나 오비가 되고 70%는 나의 의도와 상관이 없는 방향으로 가거나 정확한 타격을 하지 못하여 공이 짧아지곤 한다. 나와 비슷한 수준의 평범한 아마추어들도 아마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페이드와 드로우를 구사하려는 것은 이렇게 망상과 다르지 않다. 너무도 낮은 성공률임에도 불구하고 하는 도전은 도전 자체로는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결과는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한 두번 정도는 과감한 도전을 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는 현실적인 자신의 상태(실력 수준)를 고려하여 샷을 하는 것이 좋다. 그런데 그렇게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샷을 매번 도전한다면 이건 어쩌면 경기를 나도 모르게 포기한 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뻔히 질것을 알면서도 도전하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않다. 다른 좋은 옵션이 있었는데 망상에 빠져서 되지도 않을 도전을 한 것이니 말이다.
골프 경기 중에 '망상'에서 즉시 헤어 나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렇지만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조셉 패런트가 제시한 방법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인식'이다. 두번째로 자신의 욕구를 점검하라는 말도 하는데, 결국 욕구를 점검하는 것도 자신의 상태에 대한 인식이기 때문에 결국 '자신에 대한 인식'을 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결국 그런 '망상'에서 헤어나오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말 내가 높은 확률로 성공할 수 있는 샷이 무엇인지를 최대한 객관적인 시선으로 살피는 '인식 작업'을 하는 습관을 들이면 '되지도 않을 터무니 없는 도전'을 하는 빈도는 줄어들 것이다. 나 역시 거의 동일한 '인식 작업'을 계속하려고 노력중이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효과는 있었다. '인식 작업'이라고 애매하게 표현했지만, 달리 말하면 그냥 내가 해서 성공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선택을 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꽤 많은 사람들은 성공했으면 하는 가능성이 매우 낮은 상상의 샷을 시도하면서 매번 패배의 쓴 잔을 들이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