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준비, 액션 그리고 반응
13. 이것도 지나갈 것이다 (p240 ~ p243)
우리에게 닥치는 사건은 언제나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덧없는 것이다.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것도 바로 변화의 필요성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이런 가르침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일시성이라는 물리적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런 현상에 대한 인간의 반응 때문이다.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리를 인정하지 않을 때, 변화는 고통의 원인으로 발전한다. 따라서 실패한 샷에 지나치게 반응하면서 고통을 자초하는 것이다. 핸디캡에 걸맞는 샷의 실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권세는 십 년을 가지 못한다'라는 속담처럼, 골프는 우리 능력의 덧없음을 완벽하게 증언해 주는 메신저라 할 수 있다. 라운드를 끝내고 '성공했어!'라고 소리치며 득의양양하지만, 다음날에는 몸 둘 바를 모를 정도로 당혹스럽게 만드는 스포츠가 바로 골프다. 평온의 기도를 약간 바꾸어 보았다. 이 기도문이 골프의 부침을 감정적으로 이겨 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내 능력이 닿는 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옵소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인내심을 주옵소서.
이 둘의 차이를 깨닫게 해 줄 지혜를 내게 주옵소서.
색즉시공 (色卽是空)
반야심경에 나오는 불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로 유명한 것이 '색즉시공'이다. 모든 현상은 공(空), 즉 텅 비어있다는 의미이다. 모든 현상이 한 순간의 멈춤도 없이 계속 변하고 따라서 궁극적인 독립적 실체는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모든 것은 일시적일 뿐이며 영원한 것은 없다는 가르침이다. 이와같이 불교의 空 사상은 만물이 실체가 없고, 따라서 실체가 있는 고정 불변의 존재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핵물리학자인 Ernest Rutherford가 20세기 초에 수행한 골드 포일 실험(금박실험)에서는 원자의 대부분이 빈 공간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실제로 수소원자의 경우 99.9999999999996%가 빈 공간인 것으로 밝혀졌기도 하며 이는 수소 원자 하나가 지구크기라고 가정하면 중심의 양성자는 불과 200미터 지름의 크기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나머지는 몽땅 비어있는 공간이다. 당연히 인간의 세포도 원자 수준으로 살펴보면 거의 다 비어있다. 실체처럼 느껴지는 인간의 육체도 결국 비어있다는 사실은 놀랍기도 하고 믿어지지 않기도 하다. 알버트 아인슈타인도 '현실은 단순히 지속적인 환상일 뿐이다'라고 말하면서 불교의 '공' 사상과 일맥상통하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도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지금의 현실은 환상이 것이 맞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어제 내가 실존하고 있었다는 증명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물론 어제 찍어 놓은 영상이 있다면 그 영상에 찍힌 시간 그리고 영상에 담긴 나의 모습을 보고 그게 어제의 나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실체는 전혀 만질 수가 없다. 영상에 담긴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촉각으로 느낄 수 있는 어제의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나의 생각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런 관점에서 어제의 나는 환상속의 나일 뿐이다. 그리고 오늘의 '나'를 만약 내일 또 다른 영상에서 보게 될 경우 그 '나'역시 환상속의 '나'이기 때문에 바로 지금의 '나'도 환상속의 '나'와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참으로 덧없는 삶이다. 그렇지만 덧없는 삶이라고 하여 우리의 삶을 의미없는 순간만으로 채워서는 안되겠다. 덧없다는 말의 '덧'은 영원함을 의미한다. 따라서 덧없다는 영원하지 않고 변함이 많다는 의미일 뿐이지 허무하고 허전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변하니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말고 매 순간을 즐기면서 최선을 다하여 삶을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바로 집착으로부터의 해방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로부터 해당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골프 샷의 실수에 대해서도 일희일비하면서 집착하는데 다른 면에서는 얼마나 더 집착이 심할지는 말할 것도 없다. 직위, 돈, 권력, 음식 등등 집착할 거리는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다. 물론 나도 집착하는 것이 있긴 하다.
권불십년 (權不十年)
권불십년 화무십일홍 (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은 진시황과 관련된 고사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십 년 가는 권세 없고 열흘 동안 내내 싱싱하게 아름다움을 유지하는 꽃이 없듯이 지금 누리고 있는 권세 그리고 영화도 머지않아 끝이 날 것이니 자중하고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라는 말이다.
실제로 정치 권력의 경우는 꽤 오래 지속되기도 하지만 대부분 10년 전후로 기세가 꺾이고 뒷방으로 밀려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외적으로 수 십년간 권력을 유지하는 독재자도 있지만 일반화할 정도로 많은 수는 아니다. 물론 수 십년간 유지한다고 해도 결국 그 기세도 기울게 마련이다.
보통사람들은 대다수가 경제 활동을 위하여 어떤 회사나 단체에 소속되는 경우가 많다. 인구의 대부분이 정치인이나 특수직이 아닌 일반적인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 중에서도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을 반드시 가슴에 새겨야 할 사람들이 많다. 고직급 직장인을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온갖 횡포를 부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대부분 위로 올라간 사람들이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것을 보면 꽤 많은 사람들이 권불십년 화무십일홍이라는 말을 무시하고 권력으로부터 나오는 위력 행사에 깊게 도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재미있는 것은 입으로는 '권불십년' 이라고 주절대면서 정작 그런 사람이 오히려 더 권력에 집착고 위력 행사에 거리낌이 없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내로남불'인 경우 말이다. 아마도 인간의 본성과 사회적 환경 등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저열한 본성'이 아닐까 한다. 본성은 개선이 되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잘 안바뀌는 것 같다. 특히 본성은 권력이나 힘을 가졌을 때 비로서 표출되기 때문에 권력이나 힘이 없을 때의 성품을 그 사람의 진정한 본성이나 성품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권력과 힘이 없으면 수용적이고 친절하며 착할 수 밖에 없다. 그래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본성이 공격적이고 탐욕스럽고 양심불량일지라도 거의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힘이 생기면 본성ㅇ을 마음껏 발산을 해도 자신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에 드디어 진정한 자신을 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위로 올라가더니 변했다' 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 그는 변한 것이 아니라 드디어 본성이 나온 것이다.
골프와 '권불십년'은 궤를 같이하기 어려운 말이긴 한데 억지로 꿰어 맞추자면 젊었을 때의 긴 드라이버 샷 거리 그리고 멋지고 힘찬 스윙을 잊지 못하고 무리한 샷을 하는 경우를 예를 들수는 있을 것 같다. 이미 나이가 들고 노쇠해진 상황에서 옛날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샷을 하면 그 결과는 뻔할 것 같다. 상상속의 멋진 샷을 얻기는 커녕 재수 없으면 몸까지 상하게 된다. 그런 샷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났음을 인식하고 내가 나의 주어진 체력과 유연성 한도 내에서 할 수 있는 '역량에 맞는'샷을 하는 것이 현실적일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인정하는 인내심을 주옵소서.' 라는 평온의 기도는 골퍼에게 꼭 필요할 것 같다. 외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