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준비, 액션 그리고 반응
12. 아직도 그 생각인가? (p238 ~ p240)
두 수도자가 숲길을 걷고 있었다. 조그만 시내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한 젊은 여인을 만났다. 한 수도자가 그녀를 등에 업고 시내를 건너기로 했다. 그녀는 수도자의 등에 업혔고, 그들 모두가 시내를 건넜다. 시내를 건넌 후 수도자는 젊은 여인을 등에서 내려 주었다. 두 수도자는 계속 길을 재촉했다.
중략.
한참을 걸어가다가 마침내 그가 걸음을 멈추며 소리쳤다.
'어쩌자고 그런 짓을 한 건가?'
'그런 짓이라니?'
'어떻게 여자를 등에 업을 생각을 했냐고?'
'아, 그 여자? 시내를 건넌 후에 내려 주었잖아. 자네는 아직까지 그 여자를 등에 업고 있었나?'
골치 아픈 일이 사라진 후에도 끝없이 반추하는 우리의 성향을 그대로 꼬집어 주는 일화다. 우리는 한 가지 일을 두고 오랫동안 마음을 졸인다. 이미 끝난 일을 걱정하면서 당면한 문제에 정신을 집중하지 못한다. 골퍼들이 첫 홀에서 실수를 하면, 그 실수를 머릿속에서 과감히 지워 버리지 못하고, 그 후로도 몇 홀 동안 허둥대는 모습을 보인다. 그 결과로 경기력이 떨어지는 것은 새삼스레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불운은 되도록 빨리 잊는 것이 낫다. 한 홀을 마치고 스코어 카드에 성적을 기록한 후에는 그것으로 끝이다. 이미 끝난 홀에서 무엇을 더 해보겠다는 것인가! 그 홀은 잊고 다음 홀에 정신을 집중하라. 앞 홀에 대한 생각이 잔상처럼 머릿속에 남아 있으면 '파도를 멈출 수 없다면 파도 타는 법을 배워라'에서 말한 대로 생각에 매몰되지 않도록 주의하라.
지난 홀에 대한 생각이 습관적으로 떠오른다면 '그릇 속의 조약돌을 헤아려라'에서 소개한 것처럼, 목적의식과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자각을 결합시킨 방법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능력을 섣불리 판단하거나 비난하지 말고, 앞선 실수에 대한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표시를 하는 방법이다. 이런 생각들이 줄어들기 시작할 때 당신은 중요한 샷, 즉 눈앞의 샷에만 정신을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불운을 잊는 방법
조셉 패런트가 제시한 불운을 빨리 잊는 방법은 실질적으로 매우 효과가 크다. 잔상처럼 남아 있는 나쁜 샷 경험은 '내려 놓기'를 통하여 극복할 수 있다. 문제는 '내려 놓기'가 그렇게 만만하지 않은 작업이라는 것 뿐일 것이다. 사실 불운을 완전히 잊기는 불가능하다. 불운을 분명히 겪었지만 그 경험에 얼마나 부정적으로 휘둘리지 않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과거의 부정적 경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늘 부정적인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반면 어떤 사람은 과거에 부정적 경험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런 경험이 없었던 것처럼 당당하고 대범하게 또 다른 시작을 한다.
전자의 경우 부정적 에너지 장에서 탈출하지 못한 것이고, 후자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탈출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부정적 에너지 장에서 탈출을 한 것일 뿐이지 그 부정적 에너지는 그의 주변 어딘가에 늘 존재하고 있고, 따라서 그는 다시 그 부정적 에너지 장에 끌려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불운과 같은 부정적 경험은 사실 영원히 우리 기억 속에 박제된다. 다만 우리에게 그 '악의 기운'과도 같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기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삶을 살아갈 에너지가 남아 있을 뿐이다.
내게도 헤어나오기 어려운 부정적 경험, 즉 불운의 경험이 꽤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물질적인 측면의 '불운'은 특히 오래 그 잔상이 지워지지 않는다. 주식 투자를 했는데 내가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올라가는 경험을 많이 했을 것이다. 당신도 그런가? 나도 그렇다. 특히 적지 않은 규모의 투자를 한 경우 손해의 범위가 어지간한 직장인의 연봉에 이르는 경우도 주변에서 많이 봤다. 그런 사람들은 '불운'을 잊으려고 노력하겠지만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사실 실력이지 불운만은 아닐 것이다). 최악의 경우 그 부정적 경험에서 나오는 너무도 강한 '불운의 에너지'에 압도당하여 한강으로 향하는 사람도 있다. 주식 대폭락의 시기에는 늘 그런 뉴스가 종종 방영되곤 한다.
반면 그런 손해를 봤더라도 털고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물론 견딜만한 손실이었기 때문일 것이지만, 아무튼 결과적으로 큰 손해를 감수하고 또 다른 시작을 하기 위하여 단호하게 '불운의 에너지 장'을 뚫고 나온다. 그는 그의 불운을 잊었을까? 그럴리가 없을 것 같다. 그의 불운, 그의 부정적 경험은 그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다만 그는 그런 불운에 집착하지 않고 포기(내려 놓기)한 후에 다시 시작했을 뿐일 것이다. 이런 사람은 절대로 '한강'으로 가지 않는다. 나도 한강에는 가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한강이 먼 것도 내가 한강에 가지 않은 이유중의 하나이긴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불운과 같은 부정적 상황을 단지 삶에서 겪어야만 하는 단순한 한 양상으로 취급한다. 살면서 어떻게 매번 좋은 일만 있을 수 있냐 말이다. 사실 기억을 되돌려 보면 불운한 기억 뿐만 아니라 행운의 순간 또한 꽤 많았을 것이다. 불운한 기억을 곱씹으면 불운이 불려오고, 행운 혹은 행운까지는 아니라도 그냥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와 비슷한 성질의 기운이 불려올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는 아이에겐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지 않고,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나의 불운을 대하는 방식은 위와 같다. 어차피 잊혀지지 않기 때문에 잊으려고 하지 않고 그냥 '내려 놓기'를 선택한다. 불운이라는 것은 어찌되었든지간에 완료된 상태이다. 끝난 일이다. 거기에 또다시 얽매여서 감정적으로 휘둘려봤자 얻을 것은 또다른 형태의 불운의 기운 밖에는 없을 것이다. '내려 놓지'않을 그 어떤 이유도 없다. 불운을 잊기 위해서는 먼저 불운은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부터 인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게 '내려 놓기'일 것이다.
전반 3홀은 연습
골프에 있어서 골치 아픈 일을 끝없이 반추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에 하나는 골치 아픈 일을 애초에 만들지 않는 것이다. 반추할 것이 없으니 정신을 흩트러트릴 만한 이유가 사라질 것이 아닌가? 물론 매우 어렵다. 프로 골퍼도 실수를 하는 마당에 일반적인 하이 핸디캡 골퍼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을 정도로 골치 아픈 실수의 빈도가 높기 때문이다.
원천적으로 방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것은 몰라도 '일어나지 않아도 될 골치 아픈 일'을 우리 스스로가 먼저 허용하는 습관은 버리는 것이 어떨까? 아마도 대부분의 아마추어들은 '전반 3홀은 연습' 이라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들었을 뿐만 아니라 매 라운드 마다 '전반 3홀은 연습'이라고 외치면서 4명이 공범이 되어 스스로 면죄부를 발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이 핸디캡 아마추어 골퍼라면 서로 밝게 웃으면 '올 파!'를 외치면서 두 번째 홀로 이동한 기억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런 습관은 자기 면죄부 발행의 행위이며 일단 실패를 기본 조건으로 셋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초반 3홀의 기억이 나머지 15홀 동안 이어진다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실제로 전반에 잘 맞다가도 후반에 그렇지 못할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초반 몇 홀에서 우리 몸에 기억되고 우리 눈에 담겨지는 우리가 만들어 내는 샷들의 이미지는 나머지 홀들에 꽤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 중요한 홀들이 초기 3홀인데 애초에 시작부터 '전반 3홀은 연습'이라고 스스로 면죄부를 발행하면 향후 하게될 '후회'를 기본 옵션으로 장착하고 게임을 시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초반에 연습한다는 마음으로 공을 치면 '실전은 연습처럼, 연습은 실전처럼'에서 의미하는 것같이 실전 게임을 편안한 마음으로 하게되어 더 좋은 게임을 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경험에 따르면 특히 하이 핸디캡 골퍼의 경우는 그렇지가 않은 편이었다. 특히 첫 홀은 더블파를 해도 모두의 동의하에 파로 적어주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자신이 더블파를 한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아마도 18홀을 끝낸 후에 보는 스코어 카드는 이전 라운드에서 크게 발전한 결과를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더 나쁜 것은 매번 그런식으로 면죄부를 발행하면서 게임을 하면 자신의 진짜 실력을 알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초반 3홀은 자기들끼리 작당을해서 스코어를 줄이고, 나머지 15홀 동안에는 캐디가 또 점수를 빼준다. 그것도 모잘라서 멀리건은 또 얼마나 남발하는가. 이런 습관들이 결국은 우리들의 골치 아픈 경험(나쁜 샷)을 더욱 더 깊게 고착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하게 된다. 그리고 고착화된 부정적 샷 경험은 계속 골퍼에게 영향을 끼치고 영향 받은 골퍼는 계속 그런 일을 곱씹게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골치아픈 일은 반추할 수 밖에 없으니 가능하면 그런 일의 발생 빈도 자체를 줄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작은 경기 초반에 스스로에게 발행하는 면죄부부터 없애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멀리건도 완전 초보가 아니라면 사용을 지양하는 것을 권한다. 나쁜 샷을 만든 후에 다시 치는 멀리건 샷이 좋아진 경우도 사실 별로 없지 않은가? 괜히 하나 더 쳐서 공만 잃어 버린 경험이 다들 있을 것 같다. 물론 나도 그런 기억이 있었음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