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준비, 액션 그리고 반응
11. 파도를 멈출 수 없다면 파도 타는 법을 배워라 (p236 ~ p237)
'파도를 멈출 수는 없겠지만 누구나 파도 타는 법은 배울 수 있다. 파도와 맞서 싸우면서 번번이 패하는 사람과 파도 타는 법을 배우려는 사람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똑같은 파도지만 그로부터 얻는 경험은 완전히 다르다.' - 외젤 텐진.
게임 중에 불평을 일삼고 동료와 말다툼을 벌인다면 초조한 감정의 파도가 당신에게 밀려올 것이다. 그런 감정의 파도를 좋지 않은 징조로 받아들일 때 자신감도 줄어든다. 감정의 파도와 맞서 싸우려 한다면 결국에는 기진맥진하게 될 것이다. 감정의 파도와 맞서 싸우려는 것은 파도를 멈추겠다는 어리석은 짓과 다를 바 없다.
감정의 파도에 몸을 싣고 즐기는 법을 배워라. 왜 그렇게 초조한 감정이 생기는가? 당신이 내뱉는 불평 때문이다. 최고의 골퍼들도 큰 경기에서는 예민해진다. 그러나 서퍼가 파도의 힘을 이용하듯이 그들은 감정의 에너지를 이용한다. 그들은 그런 느낌을 즐긴다.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초조해할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가? 가슴이 두근대는 초조함은 재앙을 예고하는 조짐이 아니라, 모든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이란 설렘이다. 그렇게 받아들일 때면 세상은 완전히 달라진다.
내려 놓기
정신과 의사이자 영적인 스승이기도 한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에 따르면 감정을 억누르는 데에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감정도 어떤 '氣'이다. 따라서 어떤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에너지 혹은 氣를 억제하거나 없애려면 그것을 상쇄시킬 수 있는 다른 힘이 필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타당성을 갖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감정, 특히 부정적 감정을 누르기 위해서도 또다른 힘이 동원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부정성을 대체하는 감정은 분노나 화 혹은 비탄 같은 감정인 경우가 많다. 어떤 점에 대하여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을 경우 그 일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그 부정적 결과가 결국 나타나면 분노하고 화가 나고 결국 비탄에 빠지지 않는가? 부정성은 없어졌지만 그보다 나을 것이 없는 다른 하위 수준의 감정에너지로 부정성이 대체된 것 뿐이다. 감정의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내려 놓기 혹은 놓아 버림이라는 태도이다. 부정적 감정을 포기한 후에 관조하게되면 그 부정성과 상대하던 에너지가 더이상 불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그동안 부정성을 억누르던 에너지가 풀려나면서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되게 된다. '포기'라는 말은 항복(Surrender)이고 이는 곳 '놓아 주기'이다. 그는 이러한 '놓아 주기'야 말로 더 높은 수준으로 우리의 의식을 이끌어 준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할 때에야 비로서 우리의 마음속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는 애착이나 고민거리를 놓아버릴 수 있고 결과적으로 스트레스까지 경감시킬 수 있다.
'감정의 파도에 몸을 싣고 즐기는 법을 배우라'는 조셉 패런트의 말은 내게 '놓아 버리라'는 말로 들린다. 물속에서 몸이 뜨게하려면 몸에서 힘을 빼야 한다.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면 몸은 물 속으로 가라앉을 수 밖에 없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걱정과 같은 부정성에 포획되어 몸과 정신이 동시에 긴장이 되면서 마음은 위축되고 몸도 위축되고 결국 몸은 저 밑으로 가라 앉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물에서 허우적대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스스로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몸과 마음에서 긴장을 최대한 제거하고 몸을 가볍게 움직이면서 물살을 가볍게 손과 발로 휘젓는 것 뿐이다. 이것이 바로 물살에 몸을 맡긴 것이고, 내려 놓은 것이다.
큰 파도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다양한 파도를 만난다. 여기서 말하는 파도는 다양한 도전적 상황을 말한다. 위기일 수도 있고 기회가 될 수도 있는 온갖 도전적인 순간을 겪으면서 삶을 살아내야 한다. 어떤 이는 그가 만난 파도를 겨우겨우 헤쳐나가다가 안타깝게 더이상 힘을 내지 못하고 파도에 휩쓸려 버린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아무리 큰 파도를 만나도 대부분 유유히 파도를 타고 넘어간다. 가장 최악은 파도가 아니라 아주 잔잔하고 얕은 물 속에서 물놀이를 하고 있으면서도 목숨에 위협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아주 작은 '물살'에도 불안하고 두려움을 느낀다.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과도한 부정성을 합리적인 의심이라고 부르면서 스스로를 변호하기도 한다.
파도는 '문제'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엄청나게 거대한 문제도 겪어야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겪는 문제들은 사실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니다. 물론 개인별로 자신의 문제를 받아들이는 방식에 따라서 어떤 사람은 작은 문제를 크게 인식하고 어떤 사람은 큰 문제도 작게 인식할 것이다. 이렇게 문제를 보는 시각에 따라서 문제의 크기에 대한 인식의 왜곡이 발생할 수 있다. 작은 문제를 크게 인식하는 사람은 문제 자체의 힘에 눌리는 성향이라고 할 수 있고, 큰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작게 보는 사람은 문제를 제3자의 입장에서 관조하는 시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큰 문제를 작게 본다는 것은 큰 문제의 중요성을 무시한다는 것이 아니라 비록 큰 문제라도 어디까지나 문제의 일종이고 따라서 해결할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긍정성을 갖고 그 문제를 대한다는 의미이다.
이때 어느 쪽이 더 문제 해결에 유리할지는 명확하다. 당연히 후자가 대부분의 경우 유리하다. 후자는 '내려 놓기'에 익숙한 사람이다. 그는 문제가 생기면 즉시 완벽한 답을 찾기 위하여 긴장하고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 대한 감정부터 놓아 버린다. 그에게 있어서 문제는 어디까지나 문제일 뿐이다. 따라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걸 냉철하게 관찰하는 것이 우선이지 문제의 위력에 압도되는 것이 우선이 될 수는 없다. 그렇게 감정 요소를 먼저 놓아 버리면 의외로 해결책을 쉽게 찾아낼 수 있다.
자신이 '비교적 가볍지 않은 문제 해결'을 한적이 최소한 몇 번은 있을 것이다. 지금 그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를 회상해 보기 바란다. 나의 경우는 거의 언제나 '내려 놓기'가 문제 해결 작업의 첫 번째 단계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가 겪는 문제는 의외로 그렇게 중대한 경우가 많지 않다. 이렇게 일단 '중요성'부터 제거하고 나면 문제에 대한 '내려 놓기'는 한 층 쉬워진다.
조셉 패런트가 이야기했듯이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초조해할 이유가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가?' 골프 경기 혹은 게임을 하는 중에 겪게 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매번 억눌리고 영향 받기 때문에 초조해 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그럴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을 먼저 머리속에 깊게 박아 놔야 한다.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초조함과 신경질'은 긍정성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심리적 상태가 아닌가? 막상 그런 상황에 닥치면 평정을 유지하기 어렵긴 하다. 처음부터 그렇게 될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상황이 올 때마다 '내려 놓기'를 상기하면서 평정심을 유지하려는 노력을 하다보면 결국 서서히 '감정의 파도'에 몸을 맡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습관을 지속하다 보면 아무리 '큰 파도'가 와도 두려움과 공포와 같은 부정성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