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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Jul 11. 2024

문이 닫히면 다른 문이 열리고

 




176편의 글쓰기


  몇 일 전부터 지난 3개월동안 써 내려온 글들을 정리하고 있다. 3개월 동안 총 176개의 글을 썼고 회당 대략 A4용지 기준으로 5장으로 계산해도 거의 900페이지에 이른다. 글을 함축적으로 작성하는데 서툴고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썼던 경우도 적지 않아서 사족을 많이 달았기 때문에 아마도 총 1천 페이지에 가까운 분량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제 겨우 글을 쓰기 시작한 초심자의 글이라서 내용의 가벼움과 산만함은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세웠던 목표가 몇 가지 영역에 대한 나의 개인적 생각을 풀어가는 것 뿐이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내가 세운 목표대로 계속 글을 쓰고 있기는 하다. 내가 글을 계속해서 쓰고 있는 이 공간을 노래방이라고 하면 내가 음치임에도 노래를 계속하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무려 176곡이나 말이다. 


 이곳에서 나는 직장인으로서 오랜 시간 동안 겪었던 경험의 공유, 내가 생각하는 삶의 지혜, 내가 소중히 여기는 책들에 대한 소소한 감상평 등을 쓰려고 했었고 실제로 나의 글들은 그런 내용들로 상당 부분 채워졌다. 개인적인 내용들도 일부 있고, 특히 관심이 높았던 책(조셉 패런트의 '젠골프')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 아주 심도 깊게 책의 모든 내용을 빠짐없이 다시 살핀 후에 나의 생각을 덧붙여가면서 꽤 많은 글을 썼다. 


 사실 이렇게 부족한 글을 쓰면서 내가 가장 불편하게 생각한 것은 바로 '나'라는 독자였다. 많다고 할 수 만은 없는 수의 사람들이 나의 글을 읽었는데, 그중에는 좋은 말을 해 주는 분도 있었고 어떤 분은 글의 부족함을 지적해 주기도 했다. 조언의 한 형태인 '지적'을 받을 때도 뜨끔하긴 했지만 실제로 가장 뜨끔할 때는 내가 나의 글을 다시 볼 때였다. 바로 '나'라는 독자의 시선이 가장 따갑고 무서웠다. 아무리 완전 범죄를 저질러도 결국 본인은 속일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중요한 모임이 있어서 외출하려고 한껏 멋을 부리고 그 모습을 점검하기 위하여 전신 거울 앞에 섰는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매우 부자연스럽고 우스꽝스러운 몰골인 것과 같은 상황이다. 이렇게 여러번 정성을 들여서 고쳐쓰고 또 다시 써낸 후에 등록한 내 글을 나중에 다시 읽어 보니 그런 기괴한 모습으로 보였을 때가 적지 않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의 성향이 좀 뻔뻔한 편이라서 그런 부끄러움을 오래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사실 그게 내 글의 실제 모습이기 때문에 내가 아무리 꾸미려고 해도 나의 본 모습 그리고 내 글의 본 모습을 감추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명백하게 드러난 글의 부족함 그리고 미숙함을 감수하면서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어차피 난 프로가 아니다'라는 논리로 단단히 무장하고 일단 분량이라도 채우자는 욕심으로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썼다. 많이 쓰다 보면 내 맘에 드는 글도 몇 개 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얄팍하지만 합리적인 기대에서 말이다. 실제로 내가 쓴 글들은 자주 반복해서 읽었고 위에 이야기한 것처럼 글의 민낯을 다시 확인해 보고 내 글의 기괴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간혹이긴 하지만 내 맘에 드는 글도 있었다. 어차피 자기 만족을 가장 큰 목표로 한 글쓰기 였다면 나는 지난 3개월간의 시간 동안 꾸준히 글을 썼고 결과적으로 목표를 조금은 달성해 가고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쓰면 쓸수록 숙여지는 고개


 비록 몇 개월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기간 동안 글을 써내려 가면서 온 세상의 모든 작가들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책을 쓰기 위하여 수 많은 밤을 새워가면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대형 서점에 가보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책을 볼 수 있다. 신간 코너에 가보면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책들이 서로 자리를 바꿔가면서 전시된다. 


 유명한 작가들의 경우는 평생토록 엄청난 양의 책을 출간한다. '인간 시장'이라는 국내 최초의 밀리언 셀러를 쓴 김홍신 작가는 지금까지 135권 이상의 책을 냈다고 한다. 거의 1년에 2권 이상을 꾸준히 출간했다는 말이다. 책을 쓰기 위해서는 사전에 공부해야 할 내용이 엄청나다. 책의 주제와 관련된 수 많은 책을 일단 봐야 한다. 그 속에서 필요한 정보를 꺼내서 가공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목적하는 주제를 중심으로 확보한 정보를 수시로 참고하면서 자신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서 글을 써 내려 가야 할 것이다. 김홍신 작가는 그런 작업을 수 십년 동안 끊이지 않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이 최고 수준의 작가를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엄청난 프로 작가와 비교하여 나와 같은 아마추어의 글쓰기는 아이들 장난만도 못할 것이다. 겨우 작은 의자 하나를 만드는 수준의 목공을 취미로 하는 사람과 미려하고 섬세한 한옥을 건축하는 한옥 장인의 차이처럼 말이다.    


 여담인데 내가 재직했던 회사에서는 특정 직급으로 진급할 때 논문을 제출해야 했다. 2~3년 정도 그런 제도가 적용되었고 내가 진급할 시기가 그 사이에 걸렸기 때문에 당시 나도 주제를 정해서 논문을 써야 했다. 그때 약 80장 정도로 논문을 준비했던 기억이 난다. 회사에서 요구하는 분량은 5장이었지만, 논문을 제대로 쓰려면 상당한 분량의 정보 확인이 필요하고 그에 기초한 글쓰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단 다양한 각도로 글을 작성한 후에 나중에 가지를 쳐내 가면서 최종적으로 5장으로 핵심적인 내용만 추려서 제출했었다. 그때도 거의 3개월 이상은 작업을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책을 쓰는 것과 단순한 논문을 쓰는 것을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책을 쓰기 위하여 엄청난 양의 정보를 확보하고 그것에 대하여 공부하는 작가들의 노고가 이와 비슷할 것 같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하여 수 십권의 책을 보기 때문에 절대로 과장이 아닐 것이다. 


 글을 쓰고 그리고 결국 책을 내는 작업의 고단함을 간접적으로 미미하게나마 느꼈기 때문에 나도 글을 쓰면 쓸수록 겸허해질 수 밖에 없었다. 알아서 스스로 겸손해지는 것을 느낄 정도이다. 그냥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각과 경험을 과감하게 내 보이려는 작업을 멈추지 않고 계속 하고 있는 나라는 사람은 과감한 것인지 뻔뻔한 것인지 나도 헷갈린다. 욕심일 수도 있고 무식함일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글을 써 오고 있는 나는 단순하게 내 성격대로 자유롭게 나를 드러내는 작업을 한 것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간혹 내 글 속에서 나의 오만함과 고집이 여전히 발견될 때면 진땀이 나곤 한다. 진정한 겸손함을 갖기 위해서는 아직도 한 참 먼길을 가야 할 것 같다. 

      



내게 주는 선물 - 나만의 책


 나는 최근 몇 날 동안 지금까지 써온 글들 중에서 총 30편 내외의 글을 추출하여 4개의 장으로 나누는 작업을 하고 있다. 최종적인 브런치 북의 형태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나도 알 수 없지만 타인의 평을 떠나서 비록 아무런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없는 형태로 세상에 나오더라도 너무 기쁠 것 같다. 아마도 나는 그 속에서 내가 살아온 나의 삶 혹은 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이런 경험은 과거에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던 경험이다. 새로운 것을 하려면 그 전에 하던 것을 완전히 종료해야 하는 모양이다. 물론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글을 써서 이와 같은 작업을 하지 못할 것도 없지만,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직장 생활을 일단 끝내고 나왔다. 회사의 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직장을 떠나면 눈앞이 캄캄하고 또 '회사 밖은 너무 춥다'는 말도 하지만 사실 나의 경우는 전혀 그런 느낌은 없었다. 그냥 내 손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고 이내 조용히 회사의 문을 닫았을 뿐이다. 


 나와 보니 여기 저기 다시 문열고 들어갈 곳이 보였다. 밖은 광할한 공간이고 난 그 속에서 한 점일 뿐일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그 많은 문 중에서 일단 나는 글을 쓰기 위한 공간으로 이어진 문을 열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공간에서 내 마음대로 생각을 펼치면서 내 시간을 즐기고 있는 중인 것이다. 아마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문을 열기 위하여 책을 쓰던 공간을 나설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나는 이 공간에서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을 계속해서 만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제품 176개를 생산해서 그중 입맛에 맞는 30여개를 추려서 이제 막 포장을 하려는 것이니 말이다. 어떤 식으로 포장을 해도 그 포장이 나의 본질을 감추거나 속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생산한 것, 즉 나의 글은 바로 나의 모습 그대로일 것이기 때문이다. 포장을 다시 잘 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한편 한편 읽다 보니 손 봐야 할 곳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포장을 다 해서 내보일 때가 기대가 되기도 하고 긴장이 되기도 한다. 호박에 줄을 긋는 작업일 수도 있겠지만 괜찮다. 호박에 줄을 그어서 수박으로 팔려는 목적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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