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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aglecs Jul 12. 2024

축척의 시대




세계화


 세계화가 시작된 정확한 시점을 정하기는 어렵다. 옛날부터 범선을 타고 대양을 누비면서 세계를 탐험했기 때문에 세계화의 본격적인 출발을 특정 시점으로 한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콜럼부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발을 딛였을 때를 그 기점으로 잡아도 특별한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아니면 13세기에 이미 아시아를 탐험한 이탈리아의 마르코 폴로의 여정을 세계화의 시작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외에도 무수한 인물들이 세계를 여행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세계화의 기점을 한 시점으로 특정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규모 면에서도 그런 종류의 '세계화 활동' 상당히 국지적이었기 때문에 '세계화'라는 말을 붙이기도 좀 불충분한 점이 없지 않을 것 같다. 드넓은 지구의 특정 영역에서 일어난 제한적 문명의 만남은 사실 전 지구적 세계화라고 표현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세계화'라는 말은 그 자체의 의미를 파해쳐 보면 '여러 나라를 이해하고 서로 통합하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영어로는 Globalization으로 표현되는 세계화는 그 의미를 어떤 관점에서 투영하느냐에 따라서 꽤 다채롭게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에는 세계화가 하나의 문명이 단지 새로운 세상에 접촉하면서 다른 문명과 충돌하고 결과적으로 일종의 융합이 일어나는 상황을 함축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지구라는 행성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가 서로 섞이는 모습이 바로 세계화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세계화는 이렇게 문명의 충돌이자 융합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에 있었던 탐험과 발견은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볼 때 특정 지역에 한정된 탐험이었다고 하는 것이 맞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과거에 있었던 이종 문화의 충돌은 진정한 세계화라고 하기는 어렵고 단지 복수의 문화 교류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할지도 모르겠다. 




준세계화


 사실 세계화를 이야기 하려면 산업 혁명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산업 혁명이 시작되면서 다양한 변화가 촉진되었고 그로 인하여 진정한 세계화의 물꼬가 트였기 때문이다. 기존의 단순한 현존하는 태양 에너지에 대한 의존을 벗어나서 증기, 전기 그리고 석탄과 석유 에너지라는 다른 형태의 에너지이자 문화 변동의 촉매제가 인류의 손에 들어온 이후 비로서 진정한 변화의 싹이 틀 수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덕분에 문명의 진화에 엄청난 속도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상상할 수 없이 더 빠른 시간에 모든 것들의 이동이 가능해졌다. 물자의 이동은 물론이고 정보 그리고 문화의 이동 속도는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 참고로 여기서 이야기 한 태양 에너지는 지금 사용되는 형식인 태양열 전지판을 통하여 에너지를 얻는 따위의 에너지는 아니다. 모든 생명이 근본적으로 태양으로부터 오는 에너지를 토대로 생명을 이어간다는 관점일 뿐이다. 태양이 없이는 식물도 동물도 존재할 수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일차적 관점의 태양 에너지를 의미한 것이다. 


 원시적인 태양 에너지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의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가 폭 넓게 사용된 그때 비로서 본격적인 축척의 시대가 열렸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때에 비로서 완벽한 세계화는 아니지만 거의 '준세계화'가 시작되었다. 의미상 '축척'은 지도에서 보는 거리와 지상에서의 실제 거리와의 비율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내가 말하는 축척은 거리와 시간 그리고 공간의 실질적 단축 혹은 축소를 의미한다. 18세기에 유럽에서 미국으로 갈 때에는 대략 40일 정도의 오랜 기간을 소모해야만 했다. 풍향과 해류에 따라서 더 짧을 수도 혹은 더 길 수도 있었다. 그 시대에 대륙을 이동할 때 사용한 표현은 단순한 '시간'이 아니라 '기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다양한 에너지원이 발견되고 그 에너지를 활용하여 동력을 만들어서 비행기라는 이동 수단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대륙을 가로지르는데 필요한 시간은 과거와 비교하여 수 십분의 일로 줄어 들게 되었다. 지금 영국에서 미국까지 가는 비행 시간은 8시간 남짓이다. 시간이 줄어든 만큼 영국과 미국의 지리적 거리도 그만큼 축척된 것이다. 지구의 크기는 그대로지만 사람이 시간적으로 느끼는 지구의 크기는 이런 식으로 작아져갔다.  


 우리 나라도 마찬가지다. 1970년 7월 7일에 경부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15시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지금은 차로 이동해도 4~5시간이면 되고 KTX를 타면 2시간 15분이면 간다. 비행기는 더 빠르다. 단순하게 계산해도 KTX의 경우 15시간이 2시간 15분으로 단축된 것이기 때문에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는 최소한 1/6로 줄어든 것과 마찬가지다. 거리의 축척이 일어난 것이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가는 것은 적게 잡아도 1/100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와 같은 축척의 시대는 달리 말하면 준세계화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진정한 세계화


 앞으로 또 어떤 식의 변화가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이 순간이야 말로 우리는 진정한 세계화를 경험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전통적인 관점의 세계화는 특정 지역에 한정되었기 때문에 국소적인 면이 강했고, 단순하게 거리와 시간을 단축한 세계화는 진정한 세계화와는 한 보 떨어져 있는 준세계화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러나 바로 지금 이 시대는 그야 말로 진정한 세계화가 이루어진 시대라고 보는 것이 꽤 합리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계화의 사전적 의미는 앞서 정리했듯이 '여러 나라를 이해하고 서로 통합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이라면 이전에 서술된 세계화 그리고 준세계화도 세계화는 맞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수준의 세계화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매우 독특한 점이 있다. 바로 동시성이다.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우리는 거의 동시에 정보의 공유가 가능해졌다. 세계화 그리고 준세계화의 시대에는 상상 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때에도 정보의 공유는 가능했지만 결코 거의 동시에 정보를 공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동시에 거의 모든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 정보라는 비물질적 형태의 동시성의 확보가 가장 큰 특징이지만 그에 못지 않은 것이 물질적 형태의 동시성도 이미 상당 부분 확보했다는 것이 실질적으로 지금 이시대를 완벽한 세계화의 시대라고 주장하는 근거이기도 하다. 기술 발전에 힘 입은 물류 혁신에 따라서 당일 혹은 늦어도 몇 일이면 바로 특정 물건의 이동 및 확보가 가능하다. 우리는 바로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나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진정한 세계화의 시대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일본에 있는 딸아이에게 물건을 국제 택배로 보냈다. 의류 15점, 립스틱, 로션 2통, 스킨 3통, 양말 20켤레, 신발 2 켤레 그리고 라면 30봉지. 집에서 휴대폰으로 우체국 국제 배송을 예약하고 집 근처 우체국으로 가서 불과 10분만에 위 언급한 물품을 포장하여 국제 택배 신청을 마쳤다. 접수 한 후 열 시간 정도가 경과한 지금 이미 그 택배 상자는 국제 우편 물류 센터에 도착했고 내일 15시 비행기로 일본으로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몇 일 후면 딸아이의 손에 쥐어질 것이 분명하다. 이런 모든 과정은 실시간으로 한국에 있는 아내 그리고 일본에 있는 딸에게 SNS로 공유되었다. 진정한 세계화의 특성인 '동시성'은 이렇게 우리 주변에서 쉽게 확인된다.


 전 지구적 세계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우리는 진정한 축척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걸 인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는 택배가 하루 이틀 정도 지연된다고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기 바란다. 그 어떤 시대에도 지금과 같은 축척의 묘미를 향유하지 못했다. 황제든 왕이든 아니면 뉴욕의 범죄 수괴였던 알카포네든 그 누구도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축척의 향연을 경험하지 못했다. 


 우리는 이미 진정한 축척의 시대에 살고 있다. 당연한 듯이 여겼던 부분이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는 영역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세계화, 준세계화, 진정한 세계화와 같은 무거운 소 제목을 달았지만 지금까지 서술한 내용은 별로 특별할 것은 없다. 바로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현상을 기술한 것 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현상 속에서 살지만 현상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고 그렇게 하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번쯤은 당연한 현상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오늘 딸아이의 국제 택배를 보내면서 세계화를 생각한 것은 좀 너무 한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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