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개발서를 좋아하는가? 봤으면 뭐라도 해라.
들어가는 글.
나도 적지 않은 수의 자기개발서를 봤지만, 효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내가 읽은 책의 1/10만이라도 실행했다면 난 이미 엄청난 실력자 혹은 부자가 되어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행력 부족이 그 원인일 것이다. 나의 아쉬움을 달래 주는 것은, 그런 사람이 나뿐만인 것은 아닐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뿐이다. 사실 막연하지는 않을 것이다. 엄청난 실력자와 부자가 소수인 점이 그것을 증명한다.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책을 보고, 특히 직장인들은 자기개발서에 그야말로 ‘목숨’을 건다. 서점에 널려있는 수많은 종류의 그런 책들을 본 기억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정말 다양하고 많다. 어떤 것을 집어 들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을 정도로.
자기개발서는 모두에게 ‘희망 회로’를 돌리게 하는 성향도 있다. 너라면 할 수 있다. 해 보면 될거다. 방법이 틀렸으니 방법만 바꾸면 된다. 이런 내용으로 늘 더 많은 것을 갖고 싶고 더 능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물론 이것은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고 자기개발서의 원래 목적 중의 하나가 타인의 성공을 위한 안내를 하면서 자신의 성공도 함께 도모(베스트 셀러가 되서)하는 것이기 때문에 독자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기도 하다.
너무나 많은 선택지는 선택을 곤란하게 하고 그런 과정을 통하여 이루어진 선택을 실질적으로 실행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한다. 어쩌면 그래서 나나 당신이 선택한 자기개발서가 제시하는 내용을 실행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오늘도 우리는 더 나아지고 싶어한다. 이 글을 접하는 분들도 좋은 글을 통하여 만족감도 얻고 또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워지는 좀 더 나아진 ‘상태’를 경험하기 위하여 이 지겨운 글을 읽고 있지는 않을까? 혹시 아는가, 이 글을 통하여 또 다른 좋은 선택을 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지? 물론 자청과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판단과 일독은 여러분의 몫이다.
본문
나는 30대까지는 자기개발서를 비교적 많이 봤었는데, 40대 이후로는 서서히 관심이 떨어지더니 종교나 영성, 도덕, 철학, 자연, 등과 관련된 서적을 주로 보게 되었다. 그렇게 독서의 성향이 바뀐 이유는 아마도 그런 종류의 책 읽기 투자에 대한 결과값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자기 개발서를 보는 목적은 말 그대로 나를 발전시키기 위함이다. 특히 경제적으로 혹은 조직내에서의 확고한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 스스로를 발전시키고 싶은 욕망에서 그런 책들을 보는 것으로 생각한다.
나도 그래서 그런 책들을 많이 봤다. 제목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다양한 분야 그리고 작가의 책을 꽤 많이 봤고, 부동산 관련, 세금, 경력 개발, 능력 개발, 두뇌 향상, 등 많은 영역의 자기 개발 서적을 봤었다. 못해도 200권은 봤을 것이다. 그러나 내 기억에 남은 책은 많지 않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그 책들로 인하여 내가 개발되었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많은 책을 보기 보다는 좋은 책을 골라서 여러번 보는 것을 권한 적이 있는데 정작 내가 젊었을 때는 그걸 몰랐기 때문에 다독에만 욕심을 부린 것이다.
실질적으로 40언저리의 나이에 내가 이룬 경제적 위치는 보잘 것 없었다. 2006년도면 내가 38세때 인데 이때 CFP를 찾아서 재무 상담을 했었다. 그 이유는 내가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벌어도' 저축되어 쌓이는 돈도 거의 없고, 그나마 그 작은 돈이라도 운용을 하여 잃지 않을지 도저히 혼자서는 대책이 서질 않기 때문이었다. 능력 밖으로 집을 사서 대출금과 이자가 나가면 남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당연히 은행 잔고는 늘 텅 비어있었고 그러한 공허감은 내게 큰 불안감과 부담감으로 다가왔었다. 아무튼 뭔가 나름 책을 많이 봤지만, 수박 겉핥기처럼 봤고, 진지하게 보지도 않았고, 실행력 또한 낮았다. 그래서 나의 재정적 상태가 건전하지 못했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전문가에 의지하기 위하여 비록 비용이 들더라도 전문 컨설팅을 받기로 한 것이고 그 때가 2006년도 였던 것이다. 그 이후 지금까지 계속 19년 동안 동일한 컨설턴트와 거래하면서 투자 활동을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은행에 넣어 두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부동산이나 직접 투자(주식, 코인, 등)를 한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이 낮은 수익을 거두는데 그쳤다. 그러나 내가 내 능력을 통하여 부동산이나 직접 투자를 했다면, 거의 돈을 잃을 확률이 90% 이상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런 측면에서 비록 수익이 상대적으로 매우 낮기는 하지만 그래도 은행 이자와 물가 상승률을 더한 것 보다 약 2~3% 정도 높은 수익을 올린 것이기 때문에 성공적인 투자였다고 생각이 된다.
나는 자연스럽게 CFP의 안내에 따라서 나름의 투자 활동을 19년 이라는 세월 동안해왔고, 동시에 나의 관심은 다른 곳으로 돌려졌다. 돈의 운용은 전문가의 손길을 이용하고 나는 나의 관심사가 있는 쪽으로 향했던 것이다. 그래서 접한 영역이 종교, 철학, 고전, 심리학, 과학 등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 중간중간에 자기 개발서를 보기는 했지만, 그걸 통해서 뭔가 해 보겠다는 생각을 하거나 실천을 한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오히려 명상, 요가 등과 관련된 책까지 보면서 마음을 다스리는 쪽을 택했는데, 어떤 면에서 보면 뭔가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했지만, 그 상태를 받아들이고 감내하기 위한 수단을 거기에서 찾았던 것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인지, 물욕도 많이 줄고, 재직시에도 조직내에서 더 높은 자리와 보수를 쟁취하겠다는 의지도 많이 감소되었었다. 물론 여전히 돈에 대해서는 불안감이 있어서 아끼고 저축하는데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기는 하지만, 뭔가를 시도하여 큰 부를 이루고 물질적 성공을 거둬서 어떻게 하겠다는 생각은 상당히 옅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나름 나이를 먹어가면서 더 그런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 이젠 50대 후반으로 접어들었으니 반올림하면 60이다. 메스컴에서 매일 떠드는 100세 시대를 고려하면 여전히 40여년이나 남았다. 하지만, 현실적인 평균 수명, 특히 건강 수명을 고려하면 현실적으로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80세 정도가 최대치가 아닐까 한다. 80세도 정말 극단적으로 긍정적인 시각의 건강 수명이다. 내 생각엔 75세 정도까지만이라도 건강을 유지하면서 하루 2시간 정도 산책하고 당구라도 칠 수 있다면 정말 천수를 누리는 것이 아닐까 한다. 따라서 매우 긍정적으로 봐도 2024년 지금 기준으로 내겐 최대 20~25년의 시간이 남은 것이다. 그럼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를 생각하면 되고, 그 시간 동안 내 에너지가 되어줄 것을 준비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준비한 그것을 효과적으로 운용할 계획을 세워서 실행하면 되는 것이다.
에너지는 물질적 그리고 정신적 에너지로 나뉜다. 돈과 건강한 몸 그리고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 4% rule에 따르면, 4%가 1년 생활비라고 했을 때 은퇴시 10억이 있다면 원금의 4%인 4천만원을 1년 생활비로 쓸 수 있다. 나는 소비성향이 높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일군 비교적 적은 규모의 금융 자산을 통해서도 남은 25년 동안 재정적으로 큰 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생각된다.
심지어 갈수록 나의 금융 지식과 대응력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투자 수익률은 적어도 현상 유지는 가능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즉 가진 자산은 감소 보다는 소폭이라도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물론 내 국민 연금도 또 하나의 자금 원천이다. 이렇게 보유 현금 자산, 국민 연금, 아내의 공적 연금 등 3중 해자가 있기 때문에 큰 비용이 수반되는 건강 측면의 문제만 최소화 한다면 재정적 안정도는 꽤 견고한 편이다.
소위 부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빌어먹을 정도도 아닌것이다. 큰 부자가 되지 않더라도 나름 정신적으로 안정되어 있어서 불필요한 욕망이 최소화되었고, 자존감도 꽤 있기 때문에 큰 부자를 보더라도 그렇게 부럽다, 저렇게 되어야겠다 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 편이다. 일종의 자체적 정신 승리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아무튼, 안정적 은퇴 이후의 삶을 위한 건강한 몸과 건강한 정신 에너지 측면에서도 평균 이상은 유지하고 있다고 본다. 사실 평균 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내가 통상적 기준에서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기준에서는 큰 모자람이 없는 재정적 대비가 되어있고, 건강도 유지 중이며 정신적으로도 비교적 건전하고 건강하기 때문에, 최근 10여년 정도는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면서 다양한 관심 분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내 삶을 채워가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서 자기 개발서를 봐도 그냥 좋은 기운을 받았을 뿐 딱히 그래서 나도 뭔가 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역행자'라는 책을 보고는 충격과 동시에 큰 공감을 받았다. 베스트 셀러가 된지 꽤 되었기 때문에 내가 뒷북을 치는 것이긴 하다. 아무튼 그 책속에서 저자는 실질적으로 내가 오랜 기간 주로 ‘생각’해 오던 것을 상당 부분 이야기하고 있기도 하여 더 놀랐고, 이보다 더 놀란 것은 나는 대부분 머리 속으로는 자청과 동조화되어 있지만, 단 하나, 즉 행위만은 별로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모든 책은 호불호가 갈린다. 내가 이 책의 모든 부분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실행력에 대해서만은 전적으로 동의함을 밝힌다)
자청은 실행 위주의 삶을 살았다. 뭔가 머리속에 들어와서 이해가 되면 즉시 실행하며 실패하면 그 실패를 딛고 성공으로 다시 향했다. 나는 머리속에 넣기만 하고 실행은 많이 하지 않았다. 다만, 하루 2시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2년간 하라는 자청의 22 법칙에 대하여는 상당부분 유사하게 실행을 한 것 같다.
재직시 직위상 책을 볼 시간이 많아서 이기도 했겠지만, 달리 다른 취미(게임, 외출 등)가 없기 때문에 책을 많이 봐서 하루 2시간 이상은 책을 봤다. 퇴직을 한 요즘은 오히려 읽기 보다는 쓰기에 시간을 쓰기 때문에 읽는 시간이 줄었다. 과거에 필사도 많이 했었고, 지금처럼 뭔가에 대하여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었다. 그렇게 많은 글을 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합치면 책 한 권은 될 분량이다. 물론 책으로 낼 내용이 될 수는 없고, 분량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서 많은 성취를 이루었지만 그것이 나의 재정적 성공을 촉발하는 실질적 촉매제는 되지 못하였다. 굳이 도움을 받은 부분을 말하자면, 독서와 공부 그리고 글쓰기를 통해서 문제 해결 능력이 향상되어 회사에서 일은 잘했던 것 같다. 이를 통하여 진급도 누락없이 하였고, 그에 준하여 급여도 올랐다. 임원이 되기 바로 전 단계에서 특수한 이유로 인하여 길이 막혔고 결과적으로 스스로 퇴직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그 전까지는 무리 없이 착착 올라갔고, 그 배경에는 나의 성실함도 있었지만, 실질적인 업무 수행 능력 그리고 특히 문제 해결 능력이 주요 요인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하루 2시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2년 이상 하라는 22법칙을 통하여 조직에서 인정받았고 어느 정도 성장은 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게는 더 이상의 '조직' 내에서의 실질적 진전은 없었다. 그래서 말년에 약 3~4년간 정체 상태에서 현실을 종종 불평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 나의 한계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더 이상의 진전이 없음에 대한 불만은 거의 없었는데, 이것은 장기간의 독서에서 얻어진 '정신 근육'이 그런 충격을 거의 대부분 흡수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 ‘역행자’ 라는 책을 보면서 크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내 머리와 가슴 속에 나도 뭔가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분명히 다시 들었다. 그래서 지금 이런 종류의 글을 브런치라는 통로를 활용하여 쓰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이 글을 써서 뭔가 이루어내겠다는 구체적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뭐라도 하면서 발동을 다시 걸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소중한 인생을 어떤 조직에서 30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조직의 문을 나선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더이상 내 시간을 그저 떠나 보내기만하는 것은 의미가 별로 없는 '시간의 소비 활동'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나 스스로를 돕고 싶고, 내 가족을 잘 지원해 주고 싶다. 그와 더불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돕고 싶다. 그러려면 내가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그런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뭔가를 하지 않아 왔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뭔가를 가져야 그것을 줄 수도 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랑을 줄 수 없다. 즉, 사랑할 수 있어야 사랑을 줄 수 있다. 돈이 있어야 돈을 줄 수 있고, 경험이 있어야 그 경험치를 나눠줄 수 있다. 따라서, 난 뭔가를 더 가져야 하고 그런 기회를 만들 줄 알아야 하다. 최근 몇 년간 은퇴후에 뭘 할지 고민만 했었다. 그 "뭘 할지"의 후보로는 기껏해야 텃밭 가꾸기, 집 고치기, 책 보기, 여행하기 등 밖에 없었다. 그야말로 정적이고 나 스스로의 만족 이외에는 거의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타인의 입장에서) 것들 뿐이었다. 꼭 뭔가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새로운 것을 시도해야 한다라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타인을 이롭게 하고 뭔가 지원해 주는 일'을 하려면 뭔가 생산적인 것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인데, 이런 측면에서 좀 더 깊게 생각하는 기회를 이 '역행자' 라는 책이 내게 주었던 것 같다.
책에 언급된 '크몽'도 이미 예전에 내가 검색하여 인지하고 있는 플랫폼이고, 책을 본다던지, 글을 쓴다던지 하는 것도 이미 내가 했거나 하고 있거나 하는 일들이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내가 하지 않은 유일한 것은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실행이다. 사실 실행이 가장 중요한데 그걸 하지 않았으니 전부 하지 않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좋게 생각한다면, 난 이미 자청의 생각과 상당히 일치되어 있으니 이젠 그 중에서 뭔가 조취를 좀 더 적극적으로 취하면 된다는 것이다.
뭘 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매우 강하게 든다. 그 첫 단추를 나도 모르는 새에 얼마전부터 본격적으로 글쓰기라는 형식으로 끼운 것 같다. 내 글을 누가 볼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의 생각의 자취를 남긴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으니 만족한다. 내 글의 성격상 잘 읽히지 않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선호하는 내용이 되기는 어려울 것인데, 이런 부분은 좀 더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나 혼자만 주절주절 대는 것보다는 만약 그 내용이 의미가 있다면 한 명이라도 같이 공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니 말이다. 아쉽게도 지금까지의 내 글은 ‘나만의 주절거림’에 불과하다. 이점은 부끄럽지만 어쩔 수 없다. 내 수준에 맞는 글이 생산되는 것은 어쩔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난 내가 속했었던 조직에서 어떤 면에서는 분명한 '역행자' 였다. 이미 진정한 역행자가 되기 위한 충분한 조건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행동하면 된다. 이제 내가 가진 큰 장점을 활용할 때가 온 것 같다. 심지어 지금은 조직에 소속되어 있지도 않기 때문에 인내심만 있으면 된다. 꾸준히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행동하는 것. 이것은 인내심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난 인내심이 꽤 강한 편이다. 해 보자. 뭐든. 일단 글을 계속 써볼 생각이다.
끝
나가는 글.
내가 재직하던 회사에서 팀장으로 진급했을 때 내가 결심하고 결정한 가장 중요한 2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팀원을 보호하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팀원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있는 것을 찾아서 하자였다. 즉, 보호하고 돕는 것이 나의 중요한 결심이었다. 업무적으로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고 기존의 방식과 제도를 바꿔서 혁신을 하는 등의 일반적 접근 방식은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나는 급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리더가 아니라 완만한 발전을 추구하는 리더였기 때문이다. 그 완만한 발전 조차도 회사의 발전만큼 팀원들의 발전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였다. 팀원에게 도움을 줄 수있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내 기준으로 '팀원을 보호하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팀원에 대한 신뢰 그리고 팀원이 만들어 낸 결과에 대하여 책임을 져주는 것이다. 신뢰는 팀원에게 오히려 더 강력한 동기를 부여함과 동시에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게 하여 결과적으로 리더가 책임질 일을 만드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책임질 일이 생기면 책임을 지면 된다. 그게 나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었으니까.
두 번째로 '팀원에게 어떤 식으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은 그 종류와 폭이 너무 다양하여 사례를 들기가 쉽지는 않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내가 무슨일을 하면 팀원에게 도움이 될까?' 라는 생각을 지배적으로 많이 했다. 가장 쉬운 것은 팀원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만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불필요한 회의를 없애고, 주어진 예산 집행을 과도하게 통제하는 식으로 업무 진행을 방해하지 않았다. 관리자들은 예산을 본능적으로 줄이려고 한다. 자신에 대한 평가 기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 일들도 찾아서 하려고 노력했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공유하여 그들이 미래의 실수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도왔고, 한국 기업문화에서 흔히 겪는 '제대로 쉴 수 없는 연차'를 무조건 쉬도록 지침을 전달하고 성과를 점검했다. 이렇게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기는 꽤 어렵다. 그런데 상대방이 싫어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는 비교적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냥 내가 싫은 것은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된다.
너무 길게 돌아왔는데, 난 이곳에서도 나의 독자들, 특히 젊은 직장인들(내가 주로 이야기할 대상으로 삼고 싶은)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 내가 남을 경제적으로 도울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고 제한이 따르기 때문에(퇴직을 해서 정기 급여가 없다), 비록 그 효과를 짐작할 수는 없지만, 이런 나만의 글쓰기를 통하여 그들이 간접 경험을 하면서 뭔가 하나라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고 있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다양하게 있지만, '그들을 10원어치라도 돕고 싶다'는 것도 그 이유중의 하나이다. 그 젊은이들이 좀 더 좋은 선택을 하고, 그것을 실행하면 그들의 삶이 나아질 가능성이 높고 그건 결국 우리 사회도 1원어치 정도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나의 역량을 통하여 누군가가 나아질 가능성 그리고 그 개선의 정도는 아주 미미할 것이다. 그러면 어떤가? 내가 적어도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미미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나의 존재의 가치는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곳에서 내가 목적하는 대상을 위하여 글을 쓰는 작업을 통하여 그들을 가능한 선에서 계속 도울 것이다. 동시에 그 글을 쓰는 작업은 바로 나 자신을 위해서 이기도 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그 글쓰기 작업이 내게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도 지금 머리속에 떠오르는 뭔가 있을 것이다. 했어야 했던 그 무엇 말이다. 잘 마음을 정리해 보시고, 그것을 '실행하는 선택'을 해보라. 그러면 굳이 역행자 라는 책을 사서 볼 필요도 없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