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억에 남는 선물이 있나요?

나는 타인의 기억속에 따스한 추억으로 남고 싶습니다.

by Eaglecs

2021. 12. 27.


들어가는 글.


이 글은 약 2년 반 전에 쓴 글이다. 2024년 4월 19일에 정서하여 싣는다. 내게 따스한 친절을 배풀어 주었던 한 명의 사원을 추억하고 싶었다. 난 그 누구의 추억 속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잘 하면 몇 명이 있을 수도 있는데 사실 장담은 못하겠다. 여러분은 어떤가?


누군가의 추억이나 기억 속에 따스한 이미지로 남기는 너무 어렵다. 그래서 이 사원이 더 내 기억에 남고 이미 퇴직한 지금 시점에 더욱 그 순간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난다. 약간은 머뭇거렸지만 밝은 미소를 띤채 북홀더링을 건내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사원이 이 글을 볼 기회가 없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나의 감사함을 전해 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나마 나의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나의 글을 읽어 주시는 여러분들도 많은 분들의 기억속에 따스한 추억으로 남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모든 타인의 기억 속에 각인될 것임도 기억하기 바란다.






본문



오늘 송도 사업장 직원 중 한 여사원이 선물을 줬다. 최근 목공을 배우고 있는데 내가 책을 많이 본다고 책 볼 때 엄지 손가락에 끼우고 책이 잘 펼쳐지게 도와줄 수 있는 일종의 소형 지지대 역할을 하는 것을 만들어서 선물로 준 것이었다. 정식 명칭은 ‘북홀더링’이다. 마땅한 단어가 없어서 그대로 영문으로 이름이 고착된 것 같다. 생전 처음 보는 '도구'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서 이런 매우 의미 있는 선물을 받으니 그 기쁨이 적지 않았다. 천둥처럼 갑자기 다가왔다가 사라지는 성격의 놀랍고도 격정적인 기쁨이 아니라, 약간의 놀람과 행복감으로 시작된 작은 기쁨이 그 선물의 의미에 대한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서서히 커져가는 형식의 아름다운 기쁨이었다.


그 '독서 보조 기구'는 달을 1/3로 쪼개 놓은 듯한 형태이며, 두 개의 면이 안으로 움푹 들어간 모습을 하고 있다. 정 가운데는 엄지손가락이 들어갈 수 있도록 원형의 구멍이 뚫려 있다. 두께는 약 18mm 정도 되는 것 같고 넓이는 6~7cm, 높이는 4cm 정도이다. 물론 원목이며, 테두리가 잘 마무리 되어 있어서 착용시 손에 느껴지는 감촉이 매우 좋다. 원목이긴 하지만 나무 소재의 미세한 까끌거림을 제거하기 위하여 바니시 같은 것이 칠해져 있어서 부드러움과 동시에 색감도 좀 더 고급스럽게 나타내고 있다. 옅은 칠이어서 그런지 냄새를 맡아보니 칠의 얇은 막을 뚫고 구수한 나무 향이 느껴진다.


북홀더링.jpg



책상에 있는 책을 들고 이 독서 보조기를 엄지에 끼우고 한 번 그 감을 느껴 봤다. 일반적으로 나는 책을 손으로 들고 보지 않고 책상에 놓고 보기 때문에, 이 보조 기구를 매우 빈번히 사용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간혹 사용할 기회가 분명히 있기는 할 것이다. 사실 사용하기 보다는 그냥 눈으로 보는 것이 더 즐거울 정도로 깜찍하고 예쁜 모습이다. 이렇게 호기심에 책을 들어 올려 보조기를 손가락에 끼우다가 보조기의 아랫면에 얇은 글씨로 음각된 내 이니셜을 발견했다. C.S Lee 라는 영문 이니셜. 나만 사용하고 내게만 그 의미가 큰 내 이니셜을 손수 적어 준 것이다. 이니셜이 깊지 않은 깊이지만, 음각되어 있다는 것은 짧더라도 최소한 그 시간 동안은 선물을 받을 사람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그 소중한 기념물을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는데, 내 생각이니 내 맘대로 생각하련다.


갈수록 주변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주변으로부터 잊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매우 크다. 따라서 그 반대로 기억되는 것에 대한 기쁨과 뿌듯함은 더 클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외에는 거의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는다. 극단적 이해일 수도 있지만, 결혼식에 참석하며 혹은 축의를 하며 얼마나 진심으로 축하를 할지, 장례식에 참석하여 얼마나 진심으로 애도를 할지, 가늠할 수 없다. 축하도 하고 애도도 하지만, 좀 기계적인 절차에 따른 축하와 애도가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물론 나도 그렇다. 가능하면 진심으로 축하하고 진심으로 애도하고 싶지만, 그런 마음이 크게 들지 않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그래서 나의 축의와 부의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의 표시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다. 아쉽게도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서서히 타인에 대한 공감이 부족해져 가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점점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선물은 요즘 들어서 더 인위적으로 변했다. 선물을 함에 있어서 편리함을 추구하기 위하여 다양한 Internet platform 을 활용한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카카오를 통한 선물을 해 보거나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음료 쿠폰, 케이크, 아이스크림, 향초 램프, 등, 어지간한 선물은 카카오를 통하여 손쉽게 선물할 수 있다. 그렇게 주고받은 선물이 모두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기억에 남는 선물도 있다. 그러나 극소수라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러나 내가 받은 ‘북홀더링’과 같이 손수 만든 정성과 마음이 들어간 선물은 그것의 크기와 상관없이 깊이 가슴속에 남을 수 밖에 없다. 오늘 오전에 받은 이 나무로 된 나의 이니셜이 음각된 독서 보조기구 또한 내 가슴 속에 깊이 음각될 것이다. 과거에 모 업체로부터 비슷한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만년필이었는데, 그 뚜껑에 역시 C.S. Lee 라고 필기체로 음각 되어 있었다. 만년필이 매우 고가는 아니었지만 나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의 가치는 내게 있어서 몇 배가되었다. 그 업체에 대한 기억, 그 선물을 전해준 사람(의도가 뭐였던 간에)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다른 그 어떤 업체의 사람에 대한 기억보다 강하게 남아 있다. 그 업체와의 비즈니스측면의 성과와 상관없이 좋은 업체, 좋은 사람이라는 인상이 남아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물론 실제로도 좋은 회사이기도 하다.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2011~12년 사이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것도 일종의 선물이었다. 모시던 상사가 친구들에게 골프게임에서 돈을 몇 만원 땄다고 그걸로 나를 포함한 일부 아끼는 부하직원과 기념이 될 만한 선물을 사서 나눠 준 적이 있었다. 골프 라운드 시에 골프 공이나 골프 티 같은 것을 넣는 작은 손가방을 테일러메이드에서 샀었는데, 그때 그 가방의 우측 하단에 한자로 信義 그리고 그 밑에 영문으로 각자의 이니셜을 오버로크(Overlock, 실 박음질 글씨, 즉 휘갑치기)했었다. 회사 근처에 군 부대가 있었는데 그 앞에 소재한 군용 물품을 판매하는 업체에 가서 개당 3천원을 주고 그 작은 백에 '휘갑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대단한 기념물이라고 할 수는 없었고, 단순히 상사의 작은 승리를 기억하기 위한 한 방법이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은 손가방은 12년째 내 보스턴 백에 담겨서 소중히 사용되고 있다. 골프 라운드를 갈 때마다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뿐만 아니라 새겨진 글씨와 나의 이니셜은 비교적 에너지가 넘치고 매우 도전적이었던 그 당시의 분위기를 매번 상기시켜 준다. 그리고 더불어 그 작은 백을 선물해준 분의 미소 띤 얼굴이 떠오른다. 매우 기가 강한 분이어서 모두 어려워했었고 나 또한 그랬지만 적어도 그 가방에 얽힌 기억을 떠올릴 때면 그 분의 미소 띤 얼굴이 먼저 떠 오른다. 흰색 가로 줄무늬가 들어간 보랏빛 골프 웨어를 입은 미소 띤 둥근 얼굴이다.

신의 백.jpg


이렇게 나를 기억할 수 있게 해 주는 선물(물품)들은 내 손에서 떠나 보내기가 쉽지가 않다. 내가 이 세상에 없을 때면, 그런 물품들도 곧 없어질 것이다. 그게 아쉽지는 않다. 아무튼 그때까지는 나랑 함께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바라 건데 내 이니셜이 박힌 물품은 그게 선물이든 내가 구입을 하는 것이든 좀 작은 것이면 좋겠다. 그래야 많은 물건을 보유하기 싫어하는 내 성향에 맞으니까.


그런 측면에서 오늘 받은 선물은 매우 적합하다. 내 이니셜이 박힌 선물이나 물건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그 목록에 오늘 하나 더 추가된 것이다. 그 작지만 절대로 작지 않은 선물을 해준 사원에게 감사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일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예절도 바르고, 외모가 예쁘기까지 한 사람이 마음도 예쁘면 너무 온갓 복이 한 사람에게 몰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 아, 그리고 키도 상당히 크다. 게다가 미소를 늘 띠고 있어서 본래 타고난 미모의 수준이 배가되어 더 아름답게 보인다. 역시 사람은 가진 것만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맞는 말 같다. 많은 장점과 선함을 보유하고 있으니 오늘 이렇게 정성과 사랑과 따듯함과 배려가 듬뿍 담긴 고귀한 선물을 한 것이 아닐까? 실제로 그 값진 ‘선물’을 직접 받은 내가 그렇다면 그런 것이다.


주변 사람이 모두 시샘할 수 있는 외모와 내면을 갖고 있는 그 친구는 작지만 절대 작지 않은 선행과 아름다운 마음 씀씀이를 보여주면서 '본인에게 집중적으로 몰린 복' 때문에 불가피하게 겪을 수도 있는 '불복'을 물리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친구는 고귀한 선물과 함께 그보다 더 고귀한 삶의 지혜까지 내게 알려 준 것 같다. 배려와 사랑과 이해와 작은 관심 그리고 진심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말이다. 내 삶 만이 아니다. 나의 삶과 타인의 삶을 모두 포함한 '우리의 삶'이다.






나가는 글


현대인 중에서 이런 종류의 '정성만이 담긴 선물'을 선호하지 않는 분들 또한 많다는 것을 인정한다. 나도 몇 명 알고 있다. 그중 한 명은 같은 집에 살고 있다. 그들은 말한다. 정성과 성의, 감사와 사랑 그리고 친절과 따듯한 배려의 마음을 꼭 그렇게 저렴한 방법으로 밖에 담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도 말이다. 그말도 맞다.


나는 들어가는 글에서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모든 타인의 기억 속에 각인될 것' 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좀 더 배려하는 행동, 타인의 입장에 공감하는 행동을 할 것을 권했다. 그리고 동시에 어떤 선물을 하던, 말을 하던, 행동을 하던, 타인의 기억속에 따스한 이미지로 남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내게 선물을 준 그 사원은 내게 영원히 따스한 이미지로 남을 것이다.

선물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다. 그냥 서로 다른 것이지 어느 것은 옳고 다른 어느 것은 그른 것은 아니지 않을까? 다만, 일반적으로는 사람들은 정성이 간소하지만은 않은 특별한 형태로 담겨진 선물을 좋아한다. 따로 예를 들지 않아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난 지금도 내가 받은 이런 선물이 몇 배는 더 귀하다. '몇 배'라고 했다. 몇 십배나 몇 백배는 아니다. 이 역시 추가 설명을 하지 않아도 이해했을 것으로 믿는다.


(부연 : 그 사원의 선물은 다르다. 몇 백배 가치의 다른 것을 줘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 내 기억에 너무 강력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청의 역행자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