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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를 통한 사람 공부

골프는 타인은 물론 당신의 인격과 성품도 드러낸다.

by Eaglecs




'샷을 하기 전에 전략을 세우고, 능력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했으며, 평정심을 잃지도, 자책감에 빠지지도 않았다면 어떤 점수로 라운드를 끝냈을지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 잭 니클라우스




나의 골프 구력은 꽤 오래되었다. 29세 무렵에 시작해서 지금 56세이니 27년이나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라운딩을 본격적으로 한 것은 10년 전 정도이고 그나마 본격적 라운딩이라고 해 봐야 격월에 1회 정도 가는 식이었다. 주말 골퍼만도 못한 빈도였다. 다만, 최근 약 5년간은 한 겨울을 제외하고 매월 최소 1회 정도 라운딩을 했는데 이것도 오로지 업무의 일환이었다. 물론 많은 라운딩 횟수도 아니다.


재직시 고객 대응 부서장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월 최소 1회 많으면 2회의 라운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내 전임자들은 발도 넓고 이런 야외 활동을 너무 좋아해서 한 달에 최소한 3~4번은 라운딩을 했었다. 40대 후반부터는 골프에 관심마저 줄었던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모습이었으나 그것을 즐기는 사람은 무료(?)로 최대한 기회를 활용하는 것이리라. 게다가 나는 집이 인천인 관계로 자주 가는 골프장이 있는 이천까지 왕복하려면 교통 체증 때문에 주말에 최소한 5~6시간 이상은 도로에서 버려야 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고객이나 회사 동료를 픽업 한 후에 구장에 도착하곤 했다. 그 후 일정을 다 마무리하고 집에 가면 빨라야 오후 5~6시였다. 주말에 꼬박 14~15시간을 밖에서 보낸 것이다. 여러 면에서 골프를 즐기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퇴직한 지금은 완전히 새벽 골프에서 해방되었다. 골프를 즐기기는 했지만 라운딩을 자주 하고 싶을 만큼의 애호가는 아니었기 때문에 별 아쉬움은 없다. 고객 담당 부서의 장이었기 때문에 골프를 같이 쳤던 동반자는 물론 고객이었다. 수백명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래도 인간 성향의 다채로움을 어느 정도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다양한 고객과 라운딩을 할 수 있었다. 오늘은 그중 한 분과의 에피소드를 통하여 당시를 회상하려고 한다.

이 고객은 연세가 지긋한 분이었다. 당시 60대 초중반으로 나보다는 열 살 이상 위였다. 이분과의 첫 라운딩에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평소대로 플레이를 했고 88타를 기록했었다. 과거에도 80대 중반에서 90대 초반, 무너져도 90대 중반은 넘어가지 않는 ‘고객 접대에 딱 좋은 실력’이었는데, 그때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어서 내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스코어가 나왔던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는 나의 라베(Life best score)는 2012년도에 기록한 77타였고, 당시에는 80대 중반 내외를 꾸준히 기록했었다. 월 1회 이하의 라운딩을 통해서 끌어낼 수 있는 최선의 스코어였다. 당시에도 라운딩을 자주할 형편이 되지 못하니 매주 골프 연습장에서라도 꾸준히 1회씩은 연습을 하였고 특히 스코어 메이킹에 중요한 숏게임을 집중 연습해서 스코어 관리가 제법 되는 수준이었었다. 그래서 그렇게 어렵다고 악명이 높은 이천 블랙스톤에서 80대 후반을 기록한 것이었다.


블랙스톤1.jpg 이천 블랙스톤 cc의 어느 Par 3 홀 (저 물속에 몇 번 공을 보낸 적이 있다)


문제는 고객이었다. 연배가 있으셨던 그분이 내게 거리에서 밀리고 스코어에서도 밀리면서 몇 만원을 잃은 것이다. 재미로 1천원짜리 스트로크 게임을 했는데 아무래도 스코어 차이가 나니 돈을 약간 잃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당시 팀장을 맡고 있었는데 그렇게 연배가 높은 분하고 상대해본 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분은 평소에 인자하고 재미있으며 늘 업무 측면에서도 잘 도와주시던 분이었기 때문에 별생각 없이 웃고 즐겼는데 그분은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라운딩이 종료된 후에 나를 따로 부르시더니 약간 굳은 얼굴로 조용히 한 마디를 하셨다. ‘다음부터는 그러지마....’ 라고 말이다. 순간 그분의 진심이 담긴 말임을 직감했다. 아차 싶었는데 이미 늦었다. 물론 그일 때문에 이후에 업무 관련하여 불이익을 준다던지 하지는 않았다. 그정도의 인격이라면 그 위치까지 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날 그분의 ‘무거운 한 마디’를 듣고 내가 결심한 것은 일부러 스코어를 조정할 정도의 실력이 되지는 않으니 자연스럽게 못 치는 것이 좋겠고 그러려면 연습을 중단해야겠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후 연습장으로의 발길을 완전히 끊었다. 당시 내 상사는 골프를 못쳐도 고객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니 실력을 잘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었고, 실제로 고객과 게임을 해도 진검승부를 하여 골프 자체에서 느낄 수 있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고객도 느끼게 해 드리는 것이 진정한 고객 접대라는 주장을 했었다. 그런데 그게 모든 고객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약 3개월 후에 다시 그 고객과 라운딩이 잡혔다. 당연히 나는 실전 라운딩도 자주 하지 않았고, 연습마저도 전혀 하지 않았다. 거기에 전에 그런 아찔한 기억까지 뇌리에 남아 있어서인지 보기 좋게 무너져서 전에 딴 몇 만원에 이자까지 붙여서 토해내고 말았다. 라운딩이 종료된 후 이번에도 나를 따로 부르시더시 약간 미소를 머금고 한 마디 하셨다. ‘그래 이거야. 오늘 잘했어. 이제야 소임을 다 하는구먼....’. 그 이후에도 나는 연습을 하지 않았고 특히 이 고객분은 나와의 라운딩을 아주 많이 반겼었다. 내가 꾸준히 '소임'을 다 했기 때문이다.


연세가 많은 그 인자했던 고객분도 결국 평범한 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진면목을 알아보려면 그 사람과 골프를 쳐 보라는 말이 있다. 난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놀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패를 잡은 손이 떨리고 동공이 흔들리는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어떤 식으로든 드러내고야 만다. 놀음을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정체를 까발리는 것이다. 골프도 정확히 동일한 기능을 한다. 같이 플레이를 해 보면 성격이 강한지, 고집이 있는지, 배려심이 있는지, 욕심이 많은지, 소심한지, 대범한지, 계산적인지 알수 있다. 골프를 하는 사람이라면 내 말에 적지 않게 동의할 것으로 생각한다.


골프는 무엇보다 심판이 없는 경기이기 때문에 얼마나 도덕적인지 즉시 확인할 수 있다. 100%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내 경험상 상당히 일치한다. 정직하지 못한 사람은 골프도 정직하지 못하게 치는 경우가 많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자기에게 유리하게 규칙을 해석하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로컬룰을 변형하여 적용하고, 당연히 자신에게 유리하게 게임의 규칙을 정한다. '자신만의' 즐거운 놀이를 할 생각에 그의 유아기적 사고 회로가 순간 풀 가동되는 것 같다. 그 순간 만큼은 어린 아이가 되어 버리는 모양이다.


반면에 정직하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몸에 베인 사람들은 정확히 그 반대로 행한다. 상대방에게 유리하게 규칙을 해석하고 자신은 가능하면 모든 규칙을 지키려고 한다. 로컬룰도 동반자를 위하여 최대한 적용하고 자신은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면 PGA 룰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단돈 1천원짜리 스트로크 게임이라도 하수의 입장을 고려하여 충분한 핸디를 제공한다. 심지어 핸디를 제공해도 하수가 돈을 잃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럴 때에는 서슴없이 자금을 대여해 준다. 물론 대여한 돈은 회수도 하지 않는다. 순수히 동반자와의 시간 그리고 그와의 플레이에 대한 기억이 그의 주 관심사이지 몇 만원을 땄고 내 스코어가 몇 타이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런 유형의 골퍼는 나이의 적고 많음을 떠나서 그냥 '성숙된 어른'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이런 유형의 골퍼와 라운딩을 할 때는 말할 것도 없이 마음이 편하고 골프가 즐겁다. 그렇다고 하여 그가 배려한 대로 룰을 마음대로 해석하여 스코어를 조정하고 부당한 핸디를 받지는 않지만, 아무튼 그런 ‘세심한 배려와 공감’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특히 그 배려를 해 주는 사람이 갑의 위치에 있는 경우엔 그 ‘갑’이 더 존경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반면 앞서 기술한 유형의 골퍼와 게임을 할 때는 사실 재미가 반감된다.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과 놀이를 할 때 한 아이가 자기 맘대로 규칙을 바꾸기도 하고 어기기도 하면서 혼자만 즐기면 그 놀이가 재미있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론 고객을 상대하기 위한 라운딩이 순수한 놀이가 되기는 어렵다. 따라서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에 따라서 골프는 즐거울 수도 있도 재미가 없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골퍼가 사실 크게 비 도덕적인 행위를 한 것은 아니고 애교로 봐 줄수 있는 수준의 ‘고집 부리기’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내가 접대를 하는 ‘을’의 입장이라도 돈 잃고 기분 좋을 수는 없을 것 같다. 특히 공정하지 않은 방식을 통하여 내 게임이 영향 받았다는 생각을 하면 말이다. 누구든 영원히 '갑'일 수도 없고 끝없이 '을'일 수도 없기에 가능하면 유아기적 태보보다는 '성숙한 어른'의 태도를 갖는 것이 좋겠다. 사실 골프는 '어른들'이 주로하지 않는가?


골프도 결국 사람이 하는 여러 행위중에 하나이다. 따라서 그 행위 속에서 사람은 자신의 본질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우리는 그래서 골프를 통해서 사람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한 말을 길게 풀어쓴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애피소드를 곁들이다 보니 약간 길어졌다. 위에 사례를 든 ‘어르신’ 말고도 젊은 ‘고객’들도 본인의 고매하지 못한 ‘본성’을 드러낸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럼 당신은 어떤가? 라는 질문이 내 귀에 들려온다. 사실 나도 아주 고귀한 성품은 아니다. 그러나 점수를 속이거나 나에게 유리하게 룰을 해석하여 이득을 취하지는 않는다. 사실 가장 최근까지의 라운딩에서 내 역할은 계속하여 ‘을’이었기 때문에 나는 착한 골프를 칠 수 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착한데에는 많은 이유가 있다. 정말 착한 경우가 일단 많을 것이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또 다른 ‘착한 사람’은 그들이 착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통상 힘이 약한 사람들이 착하다. 착하지 않으면 안되는 조건이기 때문이다. 신입 사원들은 대부분 착하다. 안 착하면 안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결혼전 한참 데이트할 때 남자 친구는 늘 착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야 내 여자로 만들 가능성이 올라간다. 너무 이분법적으로 설명한 부분도 없지 않지만, 요점은 ‘을’은 대부분 착해야 하는 입장임을 설명한 것이다. (결혼에 대해서는 남자가 '을'이라는 의미는 아니니 오해없기를 바란다)


이제 난 ‘을’도 아니고 ‘갑’도 아니다. 언제고 지인들과 골프를 칠 날이 올 것이다. 그때 나의 진짜 모습이 나올 것 같다. 나도 몰랐던 나의 본성 말이다.



블랙스톤 2.jpg 이천 블랙스톤 cc 어느 Par 5 홀 (저 물속에도 몇 번 공을 보낸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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