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자라면 왜 피우는지 이유를 생각해 보자.
나는 20대 초반에 담배를 피우기 시작하여 32세가 된 2000년 2월 29일 화요일에 완전히 끊었다. 그후 25년간 단 한번도 내 폐속에 자력으로 담배 연기를 흡입한 적이 없다. 담배를 끊은 사람은 너무 독하니 상종도 말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나다. 내가 담배를 끊은 방식은 Cold Turkey 방식이다. 이 방식은 중독된 대상을 다른 요소 없이 단 번에 끊는 방법이다. Cold turkey 방식은 중독성이 있는 물질, 즉 마약이든 담배든 그 중독을 어떤 보조제나 약물도 없이 한 번에 끊어 버리는 방식을 말한다. 다른 어떤 수단의 힘에 의지하여 중독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자신의 의지에 따라서 중독에서 빠져 나오는 방식이기 때문에 제일 효과가 좋지만 동시에 제일 어려운 방식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공률은 극히 낮을 수 밖에 없다.
일반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금연 클리닉의 금연 성공율은 6개월 금연 기준으로 약 30%전후라고 한다. 금연을 시도한 후 6개월 정도 경과하면 70%가 금연에 실패하고 다시 담배를 손에 잡는다는 말이다. 나머지 30% 중 상당수도 수 년 후까지 금연을 지속할 확률은 극히 낮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난 현재 기준으로 약 25년간 금연중이다. 이번 생의 남은 기간 동안 내가 다시 담배를 피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100% 장담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거의 그럴 것 같다. 25년이나 끊었으면서도 감히 완전히 장담하지 못하는 것은 담배의 중독성이 그만큼 지독함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독이라는 것은 정말 집요하다. 쉽게 그 손아귀에서 완벽하게 벋어날 수 있는 만만한 놈이 아니다. 2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가끔 꿈속에서 담배를 피운다. 그리고 꿈속에서조차 화들짝 놀란다. 그 오랜 세월을 참았는데 결국 내가 졌다는 생각에 참담함을 느낀다. 그런 꿈에서 깨어나면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도 내가 벗어나질 못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25년이 지난 지금까지 난 여전히 금연 중이다.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지만 난 태생적으로 기관지가 약한 편이다. 이 문제가 나를 금연으로 이끌었고 25년이 지난 현재까지 금연을 유지하게 만든 주요 요인 중의 하나이다. 물론 그 외에도 다른 매우 중요한 계기도 있었다. 1999년 12월에 딸아이가 태어나서 나와 한지붕 아래에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담배를 피워도 아파트 베란다에서 피웠지만 결국 연기와 재는 집안으로 들어올 수 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나의 온 몸과 옷에서 역한 냄새가 짙게 베일 수 밖에 없었는데 이런 모든 일들이 싫어졌다. 담배보다는 딸아이가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담배를 즐길 때는 담배 냄새가 커피 냄새같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을 할 정도로 그 향을 구수하게 느꼈었는데 당연히 그건 내가 흡연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은 전혀 담배 냄새에서 구수함을 느낄 수 없다.
단정적으로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끊었으니 남이야 알바 아니라는 뜻이 아니라 담배도 결국 선택의 문제라는 말이다. 어떤 이유에서건 꼭 담배가 필요한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그들의 권리도 당연히 지켜줘야 한다. 같은 방식으로 그 권리를 요구하는 흡연자들은 당연히 비흡연자의 담배 연기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도 이해하고 지켜줘야 한다.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법에 따라서 지정된 장소에서만 피우면 된다. 그러나 그걸 지키지 않는 흡연자는 여전히 자주 눈에 띈다. 그런 애연가를 볼 때면 얼마나 피우고 싶으면 그랬겠냐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회와의 약속은 좀 지켜줬으면 좋겠다는 아쉬운 생각을 하게 된다.
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무엇보다 정부는 흡연자들의 지속적 흡연을 그렇게 싫어하지도 않는다. 막대한 세수원인 담배인삼 공사가 운영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꽤 많은 수의 담배 재배 농가들도 수입이 필요하다. 그래서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금연을 권장은 하지만 절대로 금지를 하지는 않는다. 정말 국민들의 건강이 염려되었다면 마약류 처럼 금지하면 된다. 수많은 이권이 걸려있고 수많은 애연가들의 반발 때문에 담배 제조 및 판매를 금지하는 것은 사실 현실성도 없다. 아직 완전히 입법화 되지는 않았지만 영국의 경우는 완전한 비 흡연 세대를 만들기 위한 법을 추진 중이다. 특정 시점부터 14세 이하의 청소년 시절부터 평생 담배를 살 수 없게하는 금연 정책을 마련중이라고 한다. 아마도 현실화 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나라의 경우 앞서 언급한 담배 인삼공사로부터의 세수는 실로 막대하다. 담배로 인한 사회적 비용 발생보다 세수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이다. 어떤 것을 선택하는 것이 세금 확보에 유리할지는 뻔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KT&G가 매우 안정적인 배당주라는 사실이 담배 산업의 수익성이 막대하다는 것을 명확히 증명해 준다. 흡연자들은 이 사실을 거의 다 알고 있다. 그래도 끊기가 어렵다. 중독되었기 때문이다. 중독은 뭔가에 과하게 몰두하는 것을 의미한다. 과한 것은 무엇이든 좋지 않다. 특히 담배는 더욱 그렇다. 당신이 과도한 흡연자라면 당신이 피우는 담배는 더 이상 기호품이 아니라 중독의 통로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과하다면 그건 취미나 기호가 아니다. 중독일 뿐이다.
10년 이상 흡연자였던 나의 경험에 따르면 내가 담배를 피운 이유는 결코 맛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단순하게 무리에 끼고 싶었고 멋있게 보이고도 싶었다는 것이 이유의 전부다. 친구들이 다수 흡연자여서 그들 틈에 끼기 위하여 대학생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봐도 맛있는 담배를 피운 기억은 없다. 매운 담배 연기가 폐속으로 밀려들어갈 때 느껴지는 기관지의 따스함과 담배 특유의 향이 전부였다. 흡연은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멋있어 보기기도 했다. 특히 클린트이스트우드가 우수에 젖은 눈으로 담배를 입에 문 모습은 정말 멋졌다. 당연히 대부분의 흡연자(남성의 경우)는 이런 모습을 연출하기 불가능한 외모였다. 아무튼 위 이유로 피웠고 나도 10년 이상 중독되어있었다.
혹시 담배를 피우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안정되는 느낌을 받는 것이 흡연의 효과라고 믿는다면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일단 나는 담배를 피우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한 적도 없고 담배를 피우면서 아이디어가 떠오른 적도 없다. 내 생각에는 담배를 피우는 시간 동안 여유를 갖고 뭔가 다시 생각할 기회를 얻을 수 있고 따라서 긴장도 해소되고 아이디어가 떠오를 시간을 버는 것이지 담배가 내 긴장을 풀어주고 나에게 어떤 생각이 떠오르게 한 것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폐속에 신선한 공기 이외의 유독성 기체가 들어가면 몸에 부정적인 스트레스를 줄 수 밖에 없고 이것은 긴장의 해소가 아니라 긴장의 강화를 초래한다. 여러 연구 논문 등의 자료를 인용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담배를 피우는 시간 동안에 혹시라도 어떤 착상이 떠오르면 그게 담배 덕이라고 믿는다. 우리가 모두 속은 것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흡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낼 만큼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몰입한 사람이 단순히 흡연자였던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담배에게 책임을 지울 수도 없지만, 이렇게 공을 돌려서도 안된다.
나의 아버지는 골초셨는데 뇌경색으로 돌아가셨다. 담배도 혈관에 해롭지만 담배만큼 해로운 것이 스트레스일 것이다. 그리고 담배와 함께 술을 많이 드셨기 때문에 병의 진전이 더 빨랐을 것이다. 나는 담배를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몸에 좋지 않은 담배라도 적절한 선에서 즐기면 심각한 질병에서 완벽하게 피할 수는 없더라도 너무 이른 죽음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으로 생각한다. 무엇이든 적절하지 않고 과한 것이 꼭 문제가 된다.
여기서 진짜 문제는 '적절한 선'의 매우 애매한 기준이다. 어떤이는 한 갑이 적정선이고 또다른 이는 하루 두 갑이 적정선 일 것이다. 아무튼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는 대게 과도한 흡연자이고, 알콜로 인한 사망도 역시 상당한 과음이 문제일 것이다. 둘 다 과도한 것이 문제다. 나의 친한 회사 동료이자 선배였던 한 분도 과도한 흡연자였다. 하루 2갑 이상을 피워댔다. 그는 날씬한 몸매로 운동도 잘 했었다. 그러나 그분도 도를 넘어선 오랜 기간 동안의 흡연량으로 결국 폐암이 발병하여 조기 사망에 이를 수 밖에 없었다. 주변에 이런 사례가 드물지 않게 있을 것이다.
담배는 단 한대를 피워도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담배 외에도 우리가 겪는 '담배 만큼 유해한' 다양한 호흡기 질환 유발 환경이 존재한다. 황사, 미세먼지, 그리고 요리할 때 발생하는 엄청난 유해 물질이 그것이다. 특히 집에서 하는 요리에서 발생하는 유해 물질은 시중에서 저렴하게 구매가 가능한 미세먼지 측정기를 사용해 보면 금방 확인이 가능하다. 그래서 집에서 요리를 많이 하는 주부가 담배를 피우지 않아도 폐암 사망률이 높은 것이다. 이런 요인이 있으니 담배만 유죄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아니다. 아무리 그래도 담배만큼 폐에 해로운 요소는 흔하지 않다. 죽음은 대부분 단 하나의 원인으로만 오지는 않는다. 여러 요인이 겹쳐서 인체에 종합적인 스트레스를 주는데 그런 스트레스가 장기간 지속되면 인체 중에서 가장 약해진 영역이 탈이 나는 것이고 그게 병으로 이어지고, 최악의 경우 죽음으로 우리를 이끌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 요인들 중에서 황사나 미세먼지는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리고 요리도 먹고 살아야 하니 부득이한 면이 없지 않다. 그런데 담배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다.
결국 이 글은 금연을 촉구하는 글인가? 아니다. 당신 맘대로 하라는 것이다. 청소년이 아니고 성인이면 올바른 사리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내가 금연 하라고 해서 할 것도 아니고 하지 말라고 해서 안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 글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말은 '다만 과유 불급을 알고 적당한 선에서 즐기고, 담배로 인하여 발생하는 책임에 대하여 생각은 하라' 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 보다도 당신이 흡연자라면 왜 흡연을 하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나의 흡연 이유는 앞서 밝혔듯이 그 어떠한 긍정적 이유도 없었다. 무리에 끼고 싶었고 멋져 보이고 싶은 일차원적 이유였을 뿐이다. 나만 이렇고 다른 분들은 아닐 가능성이 높겠지만, 만약 나처럼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흡연중이라면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을 권한다.
그리고 당신이 독신이라면 크게 상관은 없다. 당신 몸에서 냄새가 나도 개의치 않으면 될 것이고 심한 흡연으로 병이 걸리면 혼자 죽으면 된다. 외롭겠지만 어쩌겠는가? 물론 고독사로 장기 방치되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는 취해 놓기를 바란다. 그러나 당신에게 사랑하고 책임져야 할 가족 특히 아이가 있다면 그들의 생활 환경과 미래도 생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담배는 어디까지나 중독성이 강한 기호식품이다. 당신의 환영 받지 못하는 기호식품 때문에 가족에게 해가 되면 좀 줄이는 것이 맞다. 사랑하는 당신 아내와 당신의 자녀가 단순한 기호식품에조차 밀리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이 말이 명백히 옳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도하게' 흡연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애써서 본인의 책임을 외면하려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금연 성공률은 3% 수준이라고 한다. 나머지 97%는 어떤 이유에서건 실패한다. 성공한 3%에 당신이 포함되길 바란다. 금연은 선택이다. 그러나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 선택에 따른 결과가 자신에게만 국한된 영향을 줄 경우는 문제가 크지 않다. 결국 나만 책임지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신의 선택이 가족에도 영향을 끼친다면 결과의 범위는 너무 커진다. 져야할 책임은 더 커진다. 이점을 다시 생각해 보길 권한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금연에 성공했을까?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 그리고 내 건강 걱정이 금연 성공에 기여한 부분도 매우 크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인간의 본능인 승리에 대한 욕구이다. 하루하루 금연 기간이 늘어날수록 포기하기가 너무 아까웠다. 정말 어이없는 이유로 들릴수도 있는데 정말이다. 손해보기 싫어하는 낮은 수준의 내 정서가 역설적으로 나의 금연 성공에 일정부분 기여를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의 흡연 욕구와 이유는 그리 고상하지 못했다. 흡연 욕구가 고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고상하지만은 못한 인간의 본능인 손해보지 않고 이기려는 욕구로 금연을 이겨냈으니 말이다. 以夷制夷일지도 모른다. 오랑케로 오랑케를 무찌른 것과 비슷하다.
당신이 흡연자라면 왜 피우는지 먼저 이유를 솔직하게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래야 대응 방식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걸 당신이 찾아야 한다. 원인을 알지 못하면 해결할 방법은 찾기가 거의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