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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연속 전쟁 꿈을 꿨다

나만 몰랐던 잠재적 스트레스

by 옹기종기

첫 번째 장면은 우리 가족이 자주 놀러가는 동네 뒷산. 익숙한 등산로가 눈앞에 펼쳐져 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등산로를 걷고 있다. 그런데 저 아래쪽에서 이상한 기운이 조금씩 몰려온다. 눈을 찡그리고 보니 군복을 입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그들의 손엔 무시무시한 기관총이 달려 있고, 허리춤엔 주렁주렁 수류탄이 매달려 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그들에게 엄마와 나는 금세 추월 당한다. 그들이 우리를 둘러싼다. 나와 엄마는 눈 깜짝할 사이 그들의 포로가 되었다.


장면이 바뀌어 우리 집 안방이다. 앞베란다 쪽에 암막 커튼을 치고 나는 깊은 잠을 자고 있다. 그런데 문득 인기척이 들려온다. 잠결에 눈을 떠 창문 쪽을 바라보니 군인 한 명이 총을 들고 창문에 매달려 집 안의 사람들을 조준하고 있다.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 군인을 공격할 거리를 찾는다. 신기하게도 내 머리맡에 권총 한 자루가 있다. 빠르게 총알을 장전하고 나는 침입자의 가슴팍에 총알 세례를 퍼붓는다. 침입자는 별다른 저항없이 픽- 고꾸라지더니 창문 밖으로 추락한다. 그 모습을 본 이후부터는 불안감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한동안 뒤척이다가 궁금한 마음에 창문 밖을 바라보니 웬걸, 이미 창밖 세상은 적군들에 의해 완전히 점령되어 있었다.


생생한 이 상황들은 영화나 소설 속의 묘사들이 아니다. 어제와 그제, 내 꿈 속에서 나온 모습들이다. 이 두 장면 말고도 수십 개의 비슷한 장면들이 내가 잠을 자는 이틀 밤동안 내 머릿 속을 미친듯이 스쳐갔다. 덕분에 난 이틀동안 꿈 속 세상이 현실인지, 현실 세상이 꿈 속인지 아리까리한 상태로 제대로 된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무나도 생생하고 기분 나쁜 '전쟁 꿈'을 꾼 것이 놀랍기도 하고 무섭기도 해서 나는 일어나자마자 네이버에 접속해 '전쟁 꿈 해석'에 대해 검색해봤다.


한 블로그의 정리에 따르면, 전쟁 꿈은 대표적인 '흉몽(凶夢)'에 해당하는 꿈으로 '집이나 직장에서 어려운 처지에 놓이고 어려움이 한동안 지속될 징조' 혹은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좋지 않은 일로 손해를 보게 될 징조'라고 한다.


전쟁에서 이기는 꿈 혹은 전쟁에서 적군을 물리치는 꿈 등은 길몽이라는 설명도 있었지만, 내가 꾼 꿈처럼 적군에게 쫓기는 꿈이나 적군에게 두려움을 떠는 꿈들은 하나같이 좋지 않은 꿈이라는 해몽만 잔뜩 있었다. 가뜩이나 너무나도 생생한 전쟁 꿈 때문에 기분이 싱숭생숭한 상태였는데, 좋지 않은 해몽까지 알게 되니 기분이 참 좋지 않았다.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일이 안 좋은 쪽으로 고꾸라질 것만 같단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요즘 직장생활, 신혼생활, 글쓰기말고도 우리 가족을 위한 중요한 일 하나를 더 추진 중에 있다. 미주알고주알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나뿐만 아니라 아내와 부모님, 크게는 장인어른, 장모님께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다. 만약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 시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도 고통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사실 요 몇 주간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 아마도 그 스트레스와 쫓기는 듯한 마음이 쌓이고 쌓여 '전쟁터 속에서 고통 받는 꿈'이라는 형태로 내 앞에 나타난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 무의식 중에 나 스스로가 정말 커다란 스트레스를 받아왔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이정도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는 정말 몰랐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한번 몰입할 때 완전히 몰입해야 한다는 생각에 나 스스로를 속여 가며 내 역량 이상의 노력과 에너지를 지난 몇 주간 들여 온 것 같다. 괜찮겠지, 괜찮겠지라는 생각에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는데, 이틀 연속 내게 찾아온 이 '전쟁 꿈'이 내 머릿 속의 스트레스가 위험 수준에 다다랐다는 사실을 강한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강렬한 전쟁 체험으로 호되게 가르쳐주었다.


앞으론 조금 늦어진다고 해도 무슨 일이든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무리하지 않으면서 진행해나가야겠다. 아무리 꿈이라도 하더라도 이젠 더 이상 기관총을 든 적군들에게 등을 보이며 쫓기고, 그들의 포로가 되어 벌벌 떠는 것을 경험하고 싶지는 않다.


내 정신과 몸의 건강만큼 중요한 것은 세상에 단 한 가지도 없다. 그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이번 전쟁 꿈을 통해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영화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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