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괜찮은 척’ 안 해도 돼

by 만이

그동안 10번 중 7번은 서류 전형을 통과했다. 이것만 보면, 경력상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은데 최종 합격의 문턱을 넘지 못하니…답답했다.


운도 따라야 취업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소서를 다시 썼다. 늘 자소서를 손봤지만, 비슷한 질문엔 기업명만 바꿔 넣었던 게 사실이다. 무엇보다 백수라 시간이 많았고 예전 자소서를 그대로 쓰면 왠지 불운이 따라올 것 같았다.


그렇게 퇴사 후 스물다섯 번째 원서가 완성됐다. 그리고 내 손을 떠난 원서는 홍보 분야의 채용 공고를 낸 기업에 무사히 도착했다.


이번에도 나는 서류의 문턱을 넘었다. 어머니가 사준 정장에 가장 좋아하는 넥타이를 매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9개월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여러 차례 면접을 봤지만, 면접관 앞에서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약간의 긴장 속에서 면접을 치렀다.


특별히 좋은 꿈을 꾸지도, 기분 좋은 일도 없었던 그저 평범한 하루였다.


면접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루틴은 나를 버티게 했다. 도서관에선 두 개의 자소서를 추가로 작성해 제출했고 헬스장에선 주 5회 운동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그날도 루틴을 지키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런데 도서관에 갈 필요가 없어졌다. 마지막으로 면접을 본 곳에서 합격 문자를 받은 것이다. 이 사실을 안 어머니는 내 등을 양손으로 치면서 “잘 됐다”라고 연신 말했고 가족 단톡방에는 축하한다는 글이 쇄도했다.


내 방에서 다시 문자를 읽고 또 읽었다.


합격이다. 진짜 합격이다.


그러나 내 심장은 조용했다.


기자 일을 그만두기 전에는 ‘다른 일을 할 수만 있다면’이라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고 다녔다. 퇴사 이후에는 ‘취업만 되면’이라는 전제를 마음에 뒀다.


그렇게 바라고 바랐던 목표, 취업에 성공하니, 기쁨보단 허망함이 마음에 스쳤다. 간절함 대신 성취감이 내 마음을 차지한 게 어색했던 것일까?


친구에게 이 감정을 털어놨다. 친구는 껄껄 웃었다.


“이제 괜찮은 척 안 해도 되잖아?”


무슨 말이지?


“잘 지내는지 묻는 선후배 안부가 부담스러웠다며. 근데 이제는 진짜 잘 지낸다고 얘기할 수 있잖아”


아 그렇지. 이제는 ‘괜찮은 척’ 안 해도 되는구나.


그제야 나는 빙그레 웃었다. 다른 직장인들처럼 출근하고 퇴근하는 일상, 그 삶이 나에게 다시 찾아왔다.

이제 감정의 주인은 지난 9개월간의 절박함, 찰나의 허망함과 성취감도 아니었다. 새로운 일에 대한 설렘이 마음에 비집고 들어왔다.


반가워. 11년 전, 내 첫 사회생활 때처럼, 우리 잘해보자. <끝>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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