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은 끊겼지만, 사랑은 남았다

백수 7개월 차, 퇴직금 끝으로 수입 전무… 돈 쓸 일만 생겨

by 만이

아침 8시에 울려대는 카톡이 나를 재촉한다. 그날 우리 부서원들이 취재하겠다는 기사 아이템들은 내 마우스에 의해 하나로 묶여 차장에게 전달된다. 곧바로 차장이 내 번호를 누르면 이유는 하나다. 아이템들이 전부 별로라는 것. 별로인 하루는 정신없이 시작된다. 그럼 어쩌다 좋은 하루는? 바쁜 건 매한가지다.


이렇게 살았던 나는 백수의 고요함에 젖어들고 있었다. 기자에서 홍보 분야로 전직하겠다는 다짐에도 10시쯤 느지막하게 눈을 뜬다. 오늘은 도서관을 먼저 갈지, 헬스장을 먼저 갈지 고민하다 다시 소파에 드러눕는다.


목적지만 정하면 끝나는 생각은 궤도에서 이탈해 다른 줄기로 파생된다.


가장 큰 줄기는 돈이다. 전 직장의 퇴직금이 통장에 행차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입금 문자는 7개월째 발길을 끊었다.


입금 없는 지출은 불안감을 부추기는 것도 모자라 미안함을 자극했다. 하나뿐인 조카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음에도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가 돈을 쓰지 못하게 한다. 용돈을 받아도 시원치 않을 두 분은 장성한 아들을 다시 키우는 것 같아 죄송할 따름이다.


그래서 작은 일이라도 구해야 했다. 모아둔 돈도 있고 퇴직금을 모두 써버린 건 아니지만, 미안함, 그 미안함을 덜기 위해선 나는 일이 필요했다.


때마침 고향에서 나를 괜찮게 봤던 지역 언론계 선배가 손을 내밀었다. 영업을 안 해도 되고 주요 출입처에서 기사만 쓰면 된단다. 야근이 없는 만큼 전직 준비는 퇴근 후에 하면 된다. 만약 면접을 보러 가는 데 회사에서 못 가게 한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사표를 내란다.


11년 전 같은 출입처, 다른 회사 소속으로 처음 알게 된 그는 ‘사회에서 만난 사람도 속을 털어놓을 수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한 인물이다. 가장 신뢰하는 선배인 만큼 나의 마음은 선배의 회사로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건 전직이 아니라 이직이잖아”라는 주변의 걱정으로 결정은 쉽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또 그의 회사는 내 전 직장보다 작았기에 커리어 문제도 있었다. 결국 나는 “더 고민하겠다”며 선배에게 양해를 구했다(감사하게도 선배도 이해해 줬다).


그렇게 고민하던 와중에도, 통장은 조용했고 생활은 멈추지 않았다. 특히 가장 아끼던 여름 정장의 바짓가랑이가 보기 민망하게 찢어져 또 돈 쓸 일이 생겼다.


그냥 가을 정장 입고 다니겠다는 말에 어머니는 펄쩍 뛰었다. “한여름에 땀 삐질삐질 흘리면서 다닐래?” 어머니는 기어코 나에게 여름 정장을 맞춰주려고 했고, 나는 한사코 거부했다. “나도 돈 있는데 엄마가 왜 사요.”


고집과 고집의 대결, 승자는 어머니였다. “너도 옛날에 엄마 비싼 옷 사줬잖아”라는 말과 함께. 이래서 구력은 무시하지 못하나 보다.


나는 10년 만에 어머니가 사준 옷을 받았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한 추억을 간직하기 위해 정장 영수증을 지갑에 잘 넣어놨다. 감사하다, 정말 감사하다.


어머니가 사준 정장은 전직을 향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덕분에 선배가 제안한 언론사의 입사 제의를 자연스럽게 정리했다. 이제는 가족의 사랑을 품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일요일 연재
이전 03화백수 6개월, 그놈의 자존심